제주올레 5코스(남원포구-쇠소깍)
서귀포 시내에서 201버스를 타고 남원 포구 입구에서 내렸다. 버스 정류장에서 조금 걷다 보니 남원 포구가 한눈에 들어왔다. 올래 안내 센터에서 5코스 시작 스탬프를 찍고 걷기 시작했다.
남원 포구는 태풍이 지나간 뒤라 고요하고 잠잠했다. 포구의 아치 다리와 빨간색 등대가 이색적이었다. 검은색의 현무암 해안가 위에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놓인 다리와 빨간 등대로 어우러진 포구는 멀리서 보니 한 폭의 그림 같았다.
해안 도로에 펼쳐진 벽에는 마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경구와 명문구가 새겨져 있다. 유명 인사들의 말을 인용하거나 자신이 생각한 말을 직접 옮긴 것들이다. 남원을 사랑하는 마을 주민들이 길을 걷는 사람들의 행복을 기원하기 위해 문화의 거리를 조성했다고 한다. 주민들의 따뜻한 마음을 읽을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
해안 도로가 끝나자 낮은 해변 언덕이 나왔다. 해안 언덕에 곰솔 등 아열대 나무로 덮인 큰엉 산책로이다. 엉이라는 이름은 바닷가나 절벽 등에 뚫린 바위 그늘(언덕이라는 제주도의 방언이다. 푸른 바다를 옆에 끼고 있는 큰엉 산책로는 찰싹거리는 파도 소리와 시원한 바닷바람으로 걷기에 좋은 숲길이다.
큰엉길은 15~20미터 높이의 절벽 언덕길이 1.5킬로미터에 달한다고 한다. 큰엉길 해안 절벽에는 여러 가지 모습의 바위들이 솟아 있다. 바위 모습에 따라 후두암ㆍ유두암ㆍ인디언추장머리 다양한 이름이 부쳐져 있으나 먼 거리에서 암석만을 보고서 형상을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숲길을 걷다 보니 한반도 지형을 보여 주는 형상이 나타났다. 나무들이 태풍에 꺾여서 그런지 이전에 사전에서 봤던 것과 달리 한반도 형상이 아주 뚜렷하지는 않았다.
큰엉길을 지나니 바닷가로 내려가는 길이 나오고 조그만 언덕길로 올라섰다.
큰 대나무도 있고 작은 시누 대도 있는 대나무 숲길이다. 대나무 숲길을 나자 돌담을 끼고 올레길이 이어졌다. 숲길, 바닷길, 대나무길, 돌담길 다양한 길을 건너니 지루하지 않아 좋았다.
다시 해변 길인 바당 올레길이 나왔다. 바위와 돌로 조정된 바당 올레길은 제주 화산섬 특유의 현무암이 깔린 검은색 일색이었다. 산을 오를 때 보는 날카로운 돌과 달리 바닷갈 돌길은 매끈해 걷기 힘들지 않았다. 이 길은 해병대원들이 주변의 몽당돌들을 가져와 조성했다고 한다.
감귤밭을 지나 민가로 난 길에 접어드니 위미 동백나무 군락지가 나왔다. 마을로 시집온 현병춘 할머니가 어렵게 장만한 돈으로 마을 황무지를 사들여 한라산의 동백 씨앗을 따서 이곳에 뿌린 것이 오늘에 이르러 울창한 동백나무 숲을 이뤘다고 한다. 황무지를 가꾸기 위한 할머니의 끈질긴 집념과 열정 때문에 후세 사람들은 우거진 동백나무 숲을 보면서 큰 위안을 얻고 있는 셈이다.
다시 바닷길을 걷자 여러 섬이 보였다. 멀리 지귀도ㆍ섶섬ㆍ문섬이다. 제주도 부속 섬으로 마라도ㆍ우도ㆍ가파도ㆍ비양도만 떠오르는데 서귀포 앞바다에는 이름도 예쁜 작은 섬들이 여러 개 있다.
민가로 이어지는 길로 들어서니 도로변에 기암괴석이 조각처럼 우뚝 서 있었다. 마치 제주시의 용두암처럼 용머리를 한 괴석이 하늘로 치솟은 모습이다. 이름도 생소한 조매머들코지이다, 코지는 해안가 돌출 지형을 말하는데 조배는 밤나무 종류의 이름이고 머들은 돌무더기 둔덕을 뜻한다고 한다.
지나가는 주민에게 지형 유래에 관해 물어보니 괴석은 인공석이 아니라 자연석이라고 애써 강조했다. 그러고 보니 이 지형은 일반 평지가 아니라 산으로 연결되는 지형으로 아마 화산 폭발 시 용암이 흘러나와 바닷가 근처에서 급히 식게 되어 형성된 것 같다.
마을 주민들이 세운 기념비를 보니 애초 이곳에는 높이 70척이 넘는 기암괴석들이 하늘로 비상하는 용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 풍수가 조선인 석공을 꾀어 한라산 정기를 띠고 있는 기암을 폭발했다고 한다. 일제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자연에도 만행을 자행해 제주도 구석구석에 그 흔적을 남겨 놓고 있다.
조매머들코지를 돌아서니 위미항이 눈에 들어왔다. 부두가 마을 안쪽으로 자리 잡고 있어 포근한 느낌을 준다. 위미항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과 오고 가는 정기 여객선이 기항하는 큰 부두였으나 지금은 소형 어선만이 기항하는 조그만 포구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올레길은 바닷길에서 나와 민가와 차도를 따라 이어지다가 다시 해변 길이 나왔다. 해양 소공원이 나오고 해안 길이 이어졌다.
올레길은 민가로 들어섰다가 해안 길로 다시 이어지면서 검은 돌 현무암이 널리 펴져 있는 지형이 나왔다. 넘빌레라고 부른 이곳에는 바로 검은 돌이 깔린 해변과 함께 넓디넓은 바다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여기저기에 카페와 식당들이 들어서 있다.
넘빌레길을 걷다 보니 공천 포구가 눈에 들어왔다. 마을 주민 한 분에게 점심 먹을 곳을 추천해달라고 하니 쉼팡식당을 소개해줬다. 민박을 겸한 식당은 허름했으나 보말 칼국수 맛이 기가 막혔다, 주인아줌마가 내온 칼국수에는 인근 바다에서 잡은 보말이 그릇 밑에 잔뜩 깔렸다. 밑반찬으로 나온 고사리나물은 삶지 않고 마른 고사리를 간장에 넣어 장아찌처럼 만들어 짭짜름한 맛이 별미였다,
공천포를 지나니 조그만 포구인 망장포가 나왔고 다시 바닷가 숲길로 들어섰다.
작은 오름인 예촌망을 지나니 차도가 나았다. 차도를 따라 민가로 들어서니 여기저기 감귤밭이 나왔다.
서귀포 지역 대표적 귤 산지인 효돈 마을이다. 감귤 발 사이 도로를 걷다 보니 5코스 종점인 쇠소깍 다리 앞에 도착했다.
오늘은 태풍 뒤라 바람이 없고 구름이 낀 날씨라 걷기에 좋은 날이었다. 올레 5코스는 해안 길을 따라 작은 포구를 자주 만나는 아기자기한 코스였다. 큰엉길은 해안 절벽에서 기암괴석과 밀려오는 파도를 보면서 탁 트인 바다를 만끽할 수 있는 좋은 곳이다.
5코스는 난대림 숲길, 바닷길, 대나무 숲길, 동백나무 숲길, 돌담길 다양한 길을 건너니 지루하지 않아 좋았다. 검은 몽당 돌로 조성한 바당올레길은 전혀 불편하지 않았고 푸른 바닷가와 어울려 아름다웠다. 올레길을 걷다 보니 틈틈이 포구와 마을을 만나 주민들을 만날 수 있고 주민들이 사는 모습을 살짝 살펴볼 수 있었다.
나는 오늘 올레길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오늘도 아무 생각 없이 걷기에 집중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뒤에 오는 일행들과 거리가 벌어져 점심도 따로 먹었다.
올레길을 걷는다는 것은 결국 혼자서기인 것 같다. 일행이 같이 왔지만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목표 지점을 향해 혼자 걷는 데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은 혼자이면서도 함께 가는 길이지만 함께 가면서도 혼자 가는 길이라는 체험자의 이야기가 새삼 떠올랐다.
올레길도 결코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헤쳐나가야 하는 길이다. 우리의 삶도 친지와 주변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것이지만 결국 혼자서 자기 삶을 헤쳐나가야 한다. 회사 퇴직 후 스스로 잘 살 수 있을까. 이번 올레길의 화두로 떠올랐다.
(2019.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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