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 2코스(광치기 해변-온평 포구)
제주 올레 2코스는 성산 광치기 해변에서 출발하여 식산봉,고성, 대수산봉, 혼인지를 지나 온평리 바닷가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제주 올레 코스는 서귀포시 시흥리를 기점으로 코스가 시작되어 동남쪽 방향으로 섬을 한바퀴 돌아 제주시 종달리에서 끝난다. 이 길은 조선시대 제주 목사가 부임해서 관할지역을 순력하는 경로와 동일하다.
제주 올레길 걷기를 위해 코로나 와중에도 제주행 항공기에 올라탔다. 비행기 탑승객들은 모두 마스크를 쓴 채 출발해서 도착할 때까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제주 공항에서 성산으로 향하는 급행 버스 안에서도 사람들은 마스크를 쓴 채 죽은 듯 앉아 있었다. 버스는 제주 시내를 벗어나 산간 지역으로 돌입했으나 답답하다 보니 차창 가의 풍경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성산읍 숙소에서 짐을 풀고 올레 2코스 시작점인 광치기 해변으로 바로 나갔다. 도로변에는 여기저기 유채꽃이 환하게 피어 있었다. 코로나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많은 관광객이 따뜻한 봄기운을 맞으러 해변에 나와 있었다.
2코스 시작점에서 스탬프를 찍고 걷기 시작하자 왼쪽으로는 성산일출봉이 오른쪽으로 섭지코지가 눈에 들어왔다. 광치기 해변 모래사장은 금빛이 아니라 약간 검은 색을 띠고 있었다. 바닷가 바위는 이끼가 끼어 녹색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멀리 푸른 하늘과 파란 바다 색깔이 배경이 되어 다양한 색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올레길 리본을 어렵게 찾아 바다 쪽이 아닌 내륙 마을 쪽으로 향했다. 성산읍 고성리를 가로질러 가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동마트 앞 올레 중간 스탬프 지점에 순식간에 도착했다.
원래 성산일출봉 쪽으로 둑방길을 따라 식산봉을 찍고 돌아와야 하는데 일출봉 쪽은 1코스에서 지나온 길이라 생각하고 그냥 내륙에 보이는 오름을 향하다 보니 중간 지점에 일찍 도달한 것이다,
결국 식산봉으로 돌아가지 않고 대수산봉을 향해 계속 걸었다. 민가에 들어서니 비교적 넓은 유채밭이 있어 아무런 부담 없이 사진을 찍었다.
한참 민가를 지나다 보니 나무 정자의 쉼터가 있고 쉼터 옆에는 한라봉을 파는 무인 매매대가 있었다. 두 봉지를 사서 정자에서 일행과 같이 나눠 먹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저기에 감귤 농장이 보였다. 지난해 11월 말 올레길에는 감귤 수확 시기였는데 3월 봄에는 천리향과 한라봉을 수확하는 시기였다.
한라봉을 맛있게 먹고 다시 걸으니 대수산봉 입구에서 올레 간세가 길을 안내해주고 있다.
표고 137m인 대수산봉은 예전에는 제주의 본격적인 목마장 발상지인 방목지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울창한 숲이 우거져 있다. 대수산봉은 수산(水山) 마을의 본디 이름인 물뫼를 인연으로 해서 큰물뫼 오름이라고도 불린다. 큰 길 건너편에는 소수산봉이 위치하고 있다.
소나무·삼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산길은 좁았고 정상에 오르는 길은 상당히 가팔랐다. 10여 분 정도 올라가자 대수산봉 정상이 나왔다. 정상에 오르니 모두 탄성을 자아냈다.
왼쪽으로 성산일출봉, 오른쪽으로 섭지코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띄엄띄엄 노란색 유채밭과 파란 무밭이 깔려 있고 에메랄드 바다 색깔은 마치 물감을 풀어 놓은 듯했다. 멀리 섭지코지 해변에는 윈드서핑 하는 서퍼들의 모습을 보니 코로나 때문에 답답했던 마음이 잠시나마 뚫리는 듯했다.
정상에 서 있으니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에 봄 내음마저 밀려 들어와 기분이 더욱 좋았다. 제주도 사람들이 오름을 사랑하는 이유를 다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 높지 않은 오름 정상에 올라서 주변 들판과 바다를 한눈에 바라보면 내면의 번뇌와 시름을 잠시나마 덜 수 있을 것 같다.
대수산봉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은 오솔길로 침엽수로 덮여 있어 삼림욕 하기에 좋았다. 산속에서 나와 걷고 있지만 민가는 거의 보이지 않고 여기저기 무밭이 널려 있다. 사람들이 무를 수확하기도 하고 수확이 끝난 밭에는 무가 널브러져 있다.
포장도로가 나와 걷다 보니 한옥이 보였다. 혼인지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단지 안에는 결혼식장이 들어서 있었다. 단지 안 의자에서 잠시 쉬고 난 후 올레 리본을 따라 걸으니 조그만 동굴과 연못이 보였다.
삼성혈에서 태어난 탐라의 시조 고(高)·양(良)·부(夫) 3 신인(神人)이 동쪽 바닷가에 떠밀려온 함에서 나온 벽랑국 세 공주를 맞이하여 각각 배필을 삼아 이들과 혼례를 올렸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작은 동굴은 3 신인이 3 공주와 첫날밤을 보낸 곳이라고 한다.
신화와 전설이 풍부히 깃든 제주이지만 탐라 시조가 얽혀 있는 혼인지를 제주 올레길에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혼인지에서 나와 걷다 보니 큰 도로가 나왔다. 대로 가에는 혼인지 마을 안내 간판이 큼직하게 들어서 있다. 도로를 건너 온평 포구로 가니 민가에서도 혼인지 마을을 상징하는 돌 조형물이 여기저기 있어 눈길을 끌었다.
민간 좁은 골목을 지나는데 화물차 기사 아저씨가 우리를 일부러 불러 세워 천혜향을 건네줬다. 지난해 가을 8코스 올레길에서 만난 감귤 농장 주인이 배낭 가득히 귤을 담아줘 올레길 내내 먹었던 좋은 기억이 되살아났다.
코로나 때문에 외지인 방문을 꺼리는 분위기이지만 인심 좋은 아저씨는 비싼 천혜향을 우리에게 주는 호의를 마다하지 않았다.
해안도로가 나오자 해안가로 검은 돌담이 쭉 늘어 서 있는 온평 환해장성이 보였다. 환해장성은 고려 때 삼별초 군이 쌓은 석성으로 300여 리에 달한다고 한다. 최근에 보수해서 반뜻하게 서 있지만, 온평 포구 쪽으로 걷다 보니 석성은 돌무더기로 바뀌었다.
마침내 2코스 종점인 온평 포구에 도착했다.
온평 포구는 제주의 다른 포구와 주변 풍경이 달라 보였다. 방파제 위에는 혼인지 마을 전설과 관련해 신인과 공주의 인물상과 돼지와 망아지 등 동물 석상이 서 있었다. 바닷가 한쪽에는 제주 전통 배인 뗏목 모양의 태우가 보였다.
현무암 바위 사이로 물이 고여 있는 용천수 주변은 쉼터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공원 안쪽 바닥에 깔려 있는 지압 돌 판을 한 바퀴 돌고 나니 피로가 다소 풀렸다.
2코스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대수산봉 정상이었다. 높지 않은 정상에 오르니 육지와 바다가 모두 한눈에 들어와 탁 트인 느낌을 받았다. 지상으로만 난 길을 쭉 걷다 보면 올레길이 지겨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리 높지 않은 오름에 올라 탁 트인 전망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도보객들에게 큰 활력소가 된다.
혼인지 마을과 온평 포구는 이전에 가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는 곳이지만,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행정 구역상으로 서귀포시에 속하지만, 관광자원이 풍부한 남쪽 서귀포 주변과 달리 온평 포구 주변은 세인들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그러다 보니 이곳 사람들은 혼인지 전설을 끌어들여 나름대로 동네 알리기에 더욱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지도를 찾아보니 온평리 주변은 제주 2공항 건설 후보 예정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올레길 가는 길에 공항 건설 관련 찬성이나 반대 현수막은 볼 수 없어 개발을 놓고 주민들의 심중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공항 개발에 대해 분명히 찬성과 반대 양쪽으로 팽팽히 맞서겠지만 필요 이상으로 무분별하게 개발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주의 자연은 우리 후손들에게 대대로 전해주어야 하는 유산이기 때문이다.
오래전 제주 공항 건설 여파로 인해 여러 마을이 없어져 버렸고 공항 개발 당시 활기를 띠었던 공항 주변 지역은 다른 지역의 개발 열기로 인해 활기를 잃은 지 오래되었다.
사람들은 편리성을 이유로 자연을 훼손하지만, 어느 순간 그곳을 버리고 다른 것을 개발하는 데 열을 올린다.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 욕망 때문에 자연은 계속 훼손되고 한 번 훼손된 자연은 영영 복원되지 않은 악순환만 되풀이되고 있다.
제주 올레길을 걷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연 보호주의자가 되어버렸다.
(2020년 3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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