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 14 코스(저지- 한림)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14코스 올레길은 저지 오름을 끼고 들판으로 향한다. 이른 아침이라 올레길 주변은 한적하고 고요했다. 올레길에 장학굿물 습지라는 안내판이 나왔으나 땅이 메말라 못 바닥에 물기를 볼 수 없었다.
동쪽 하늘을 보니 한라산이 태양 바로 아래 솟아있다. 붉은빛이 한라산을 감싸고 있어 장엄하기 그지없었다. 붉은 태양 아래 장엄한 한라산의 정기를 느껴보라고 지인들에게 카톡으로 사진을 보냈다.
저지 마을 들판에도 보리·양파·양배추 등 각종 작물이 잘 자라고 있었다. 유채꽃인지 배추꽃인지 모르겠지만 노란 꽃이 들판을 수놓았다.
올레길 돌담 안 펜션 마당에는 대형 모조 TV 패널 판을 설치해 텅 빈 패널 판에 멋진 주변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이른 아침이라 올레길을 걷는 사람은 없고 밭에서 일하는 농부들을 볼 수 있었다. 대파밭에서 농부들이 아침을 먹고 있었다. 궁금증이 발동해서 양파와 대파 수확 시기가 잘 구별되지 않는다고 한 농부에게 물어보니 양파는 일 년 중 5월에 한 번 수확하고 대파는 수시로 수확한다고 알려주었다.
올레길에 「오시록헌 농로」라는 다소 생경한 간새 안내판이 나왔다. 오시록헌은 아늑하다는 의미의 제주말이다. 발길을 걷는 느낌이 오시록해서 오시록헌 농로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땅바닥에 작은 현무암 돌이 깔려 있지만 길이 펑펑해 걷기가 편했다.
올레길은 벌판으로 이어지지만, 이따금 숲길로 연결되어 있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원래는 사람이 다니지 않은 숲길이지만 도보객들을 위해 길을 낸 것 같다. 그리 크지 않은 잡목과 돌담 그리고 푸른 하늘과 구름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냈다.
오늘은 날씨가 좋은 데다 올레길이 내륙으로 이어져 한라산을 계속 볼 수 있었다. 걷다가 조금 힘이 들면 수시로 한라산을 보고 걸으니 피곤할 줄 모르고 걸을 수 있었다. 맑은 하늘에 구름이 펼쳐져 있고 넓은 벌판에는 숲이 어울려져 있는 멋진 풍경을 보고 연신 사진을 찍었다.
「굴렁진 숲길」이라는 안내판이 나왔다. 제주도에서 굴렁지라는 말은 움푹 팬 지형을 뜻한다. 숲길 바닥은 검은 현무암이 깔린 곶자왈 지역이다. 오래전 용암이 스쳐 간 지역으로 여기저기 움푹 파인 지형과 조그마한 동굴이 보였다.
올레길은 제주환경시설관리소 정문을 돌아서 포장도로로 이어진다. 제주도에서 쓰레기나 폐기물 처리하는 환경시설은 인적이 드문 숲이나 벌판에 설치해 간판을 보지 않으면 어떤 시설인지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포장도로가 끝나면서 올레길은 무명천 산책길로 이어진다. 무명천은 비교적 폭이 넓은 편이나 제주의 다른 천과 마찬가지로 건천이다. 무명천 안에는 물 대신 하얀 들꽃이 피어 있었다. 무명천은 이름 그대로 특이점은 없지만 천을 따라 이어진 올레길은 흙길이어서 걷기에 편했다.
올레길 주변에 새로 지은 타운하우스와 주택들이 평화롭게 들어서 있다. 올레길은 무명천 산책로가 끝나면서 해안가로 이어진다. 바다가 가까워지자 여기저기 밭에 선인장이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월령리는 우리나라 최대 선인장 자생지이자 재배지이다. 해안가에 도달하니 바다 색깔이 너무 아름다워 그냥 지나치기 싫어 해안에 바로 붙어 있는 카페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선인장 보라색 열매를 갈아 만든 백년초 주스를 주문했다. 선인장 주스는 시럽을 넣어서인지 달콤해 먹을 만했다.
카페 사장님에게 경치 좋은 곳에 살아 좋으시겠다고 하니 의외로 아니라는 대답을 들었다. 혼자서 카페를 운영하다 보니 늘 매여 있어 힘들다는 신세타령을 늘어놓으면서 오히려 은퇴하고 나서 올레길은 걷는 도보객들이 부럽다고 말했다.
월령리 해안 목재 데크 도로를 따라 올레길이 이어진다. 해안가에도 선인장이 지천으로 깔려 있다. 내륙 밭에서 사람들이 재배하는 선인장과 달리 해안가 선인장은 자생적으로 군락을 이루고 있다.
월령리 선인장 군락은 국내 유일의 선인장 야생 군락지로 선인장 씨앗이 멕시코에서 북서풍 해류를 타고 이곳까지 밀려와 모래땅이나 바위틈에 기착한 것이다. 선인장은 6~7월이면 노란 꽃이 피고 11월에는 보라색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해안가 올레길을 걸으니 왼쪽으로 비양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월령리에서 14코스 종점인 한림항까지는 내내 비양도를 눈에 담고 걷게 된다. 비양도는 가파도와 마라도와 달리 제주 본토와 가까워 더욱 친근감이 들었다.
올레길은 하얀 모래밭과 비취색 바다를 지닌 금능해수욕장에 이른다. 금능해수욕장과 협재해수욕장은 바로 붙어 있다. 하얀 모래와 비취색 바닷물이 파란 하늘에 어울려 해변을 눈부시게 만들어 주고 있다. 협재해수욕장을 몇 번 온 적이 있지만, 이전에 금능해수욕장을 전혀 알지 못했고 그래서 와본 적도 없었다.
풍경이 아름다워서인지 4월 말에도 금능해수욕장을 찾는 사람이 많았다. 모두 푸른 바다와 녹색 비양도를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찍고 있었다. 금능해수욕장 끝자락에는 야자수가 늘어서 멋진 숲을 이루고 있었다. 야자수 숲 아래 여기저기에 텐트가 쳐져 있어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협재해수욕장으로 가는 길목에는 보랏빛 야생화가 소담스럽게 피어 있었다.
협재해수욕장은 다가오는 여름을 대비해 모래가 쓸려나가지 않도록 모래밭 위에 그물망을 쳐놓았다. 협재해수욕장에도 많은 사람이 멋진 풍광을 즐기고 있었다.
금능해수욕장과 협재해수욕장은 수심이 얕고 경사가 완만해서 어린아이들을 동반한 관광객들도 많았다. 협재해수욕장 주변 민가는 온통 식당으로 둘러싸여 있다, 유명 식당에는 줄을 서서 대기하는 모습이 보일 정도로 활기를 띠고 있었다.
협재해수욕장을 지나자 바로 옹포포구로 이어진다. 옹포포구는 항아리와 닮아 이름이 지어진 포구로 이전에 명월 포구로 불렸다. 포구 한쪽에서 마을 사람들이 바다에서 채취한 물미역을 비닐 포장지에 담고 있었다.
포구에는 마치 지석묘처럼 돌기둥으로 세워진 쉼터와 용천수가 솟아나는 바른물 샘터가 보였다.
옹포포구는 고려 시대 삼별초 항쟁과 묵호의 난 때 상륙전을 치른 전적이기도 하다. 삼별초 이문경 장군은 1270년 선봉군을 이끌고 이 속으로 상륙하여 처음으로 제주를 점거했다. 1374년 최영 장군은 목호의난을 제압하기 위해 314척의 전선에 2만 5천 명의 대군을 이끌고 상륙한 곳이기도 또한 옹포포구이다.
올레길에 다시 나서니 보랏빛 야생화가 해변 들판을 수놓았다. 멀리 한림읍이 보이고 올레길은 해안 도로로 연결된다. 해안 도로 한쪽에는 건설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깨끗한 빌라 건물이 빈집으로 남아있었다. 바닷가에 위치하고 왜관이 아름다운 건물이 쓰이지 않아 안타깝기만 했다.
제주 올레길을 걷다 보면 폐허가 된 건물이나 공사가 중단된 시설을 종종 볼 수 있다. 올레길에서 본 가장 큰 흉물은 올레길 8코스 대평포구 인근에 폐허처럼 남은 제주에레스트시티 빌리지 단지였다.
올레길은 민가를 끼고 가다가 해안 포장도로를 만난다. 도로변에 명월포 전적지라는 안내석이 보였다. 안내석에는 명월포 삼별초 항쟁과 목호의 난 때 해상 상륙전을 치른 전적지라는 내용이 실려 있다. 옹포포구 옛 이름이 명월 포구라는 것을 모르고 순간적으로 다른 포구인가 헷갈렸다. 명월포구 이름도 괜찮은데 옹포포구로 이름을 바꾼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으나 알 수가 없었다.
올레길은 포장도로를 따라 한림항으로 이어진다. 차량 통행이 잦은 편이지만 비양도를 마스코트로 삼아 걸으니 지루하지 않았다 비양도는 우도처럼 본토와 가까워 사람들이 자주 찾은 곳이다.
14코스 종점인 한림항 내 비양도 선착장 앞에서 걷기를 마쳤다.
(2023년 4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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