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여행 2 - 치앙라이 사원들
왓 프라탓 도이스텝 사원 방문 후 점심을 먹고 치앙라이로 향했다. 치앙마이에서 치앙라이까지 거리는 약 200km에 이르지만 도로 사정으로 인해 4시간이 걸린다고 간다.
치앙마이에서 벗어나니 주변은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따금 평야 지대와 마을을 볼 수 있지만 산림 지대가 더 많았다. 너른 평야 지대에는 벼와 작물이 심겨 있으나 더운 날씨 때문인지 일하는 농부는 보이지 않았다. 태국에서는 쌀농사를 이모작‧삼모작까지 할 수 있는 데다 과일과 작물 재배가 수월해 농촌에서는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다고 한다.
버스가 편도 1차선 도로를 따라 굽이굽이 고갯길을 오르니 속도를 내지 못했다. 차가 덜컹거리면서 순간적으로 잠이 들었는데 휴게소라고 해서 차에서 내렸다.
고속도로에 있는 휴게소는 아니지만, 휴게소는 깨끗했고, 식당‧카페는 물론 고급 의류까지 파는 매장도 있었다. 아무래도 관광객들의 왕래가 잦은 지역이라 나름대로 시설을 잘 갖춰 놓고 있는 것 같았다.
버스가 이제 산악지대보다 평야 지대를 주로 달리자 민가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여기저기 강이 흐르고 넓은 초원도 눈에 띄었다.
우리 버스는 먼저 왓 롱 쿤 백색 사원에 도착했다. 왓 롱 쿤 사원은 멀리서도 하얀 은빛을 띠고 있어 햇빛에 눈이 부셨다. 그동안 태국에서 봤던 사원은 대체로 황금색 사원이었는데 한적한 시골에 특이하게 백색 사원이 있다는 게 왠지 낯설어 보였다.
백색 사원은 태국의 건축가인 찰름차이 코싯피팟이 1,997년 짓기 시작한 사원으로 2,040년을 완공을 목표로 아직도 공사가 진행 중이다.
가이드는 사원에 들어가자마자 황금색 건물로 우리를 안내했다. 사원이 온통 은빛 흰색 일체인데 이 건물만 황금색이어서 의아스럽기만 했다. 건물 외관은 물론 내부 장식도 황금색으로 치장되어 있어 화려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건물이 화장실이라고 해서 모두가 놀라워했다.
가이드 말에 따르면 백색 사원을 찾은 중국인들이 너무 시끄럽고 지저분해 사원 안에 있는 금빛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하고 외부 화장실만 사용하도록 규제한다고 한다.
실제로 그러는지 확인하기 어렵지만, 태국의 가장 중요한 외국 관광객인 중국인들이 소란스러움 때문에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니 그저 웃을 일만 아닌 것 같았다. 우리나라 관광객도 이 사원에서 무분별한 행동을 일삼을 때 언제든지 그런 대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백색 사원은 온통 은색을 입힌 것도 특이하지만 사원 건물이나 조형물도 세련되어 보였다. 사원은 윤회의 다리를 거쳐 본당에 이른 도정은 그 자체가 하나의 스토리를 갖고 있었다.
윤회의 다리 밑에는 지옥에서 올라오려는 손들이 널려 있어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윤회의 다리를 건너고 여러 문을 통과해야만 본당에 이를 수 있었다. 극락정토에 이르기 전에 자신의 죄를 씻고 오라는 메시지를 담는 듯했다.
찰름차이는 꿈속에서 나타난 어머니가 사원을 지어 자신의 죄를 씻어달라는 부탁을 받아 이곳에 사원을 건축하게 되었다고 하니 사원을 설계하면서 속죄와 희원의 의미를 새겨 넣었다. 본당에 이르니 들어갈 수 없었고 멀리서 불상만 볼 수 있었다. 원환 광배에 앉아 계시는 부처님이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사원 주변은 인공 호수와 아름다운 조형물이 들어서 있어 여기저기서 관광객들이 사진 찍기가 바쁜 모습이었다.
백색 사원은 최근에 지은 사원이긴 하지만 기존의 다른 사원들과 달리 현대적인 디자인에다 생생한 사연을 갖고 있어 많은 사람이 찾는 것 같다.
백색 사원 방문을 마치자 우리 일행은 왓 롱 수아텐 청색 사원으로 향했다. 청색 사원은 백색 사원을 만든 찰름차이의 제자인 푸타 깝깨우가 2016년 건축을 마쳤다. 왓 롱 수아텐은 ‘춤추는 호랑이 사원’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오래전 이곳에서 호랑이가 자유롭게 돌아다녔다는 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사원 전체가 진한 파란색의 사파이어 색깔로 화려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사원 외관뿐만 아니라 내부 천장, 벽과 기둥도 온통 사파이어색 일색이어서 관광객들의 시선을 쏠리게 하고 있었다.
사원 내부의 백색 대형 좌불상은 주위의 푸른색에 반사되어 더욱 빛나 보였다. 얼마 전 TV에 소개된 청색 사원은 밤이 되어 푸른색과 흰색이 어울려 환상적인 야경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청색 사원은 백색 사원과 비교해 규모도 작고 디테일면에서 다소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차가운 금속 소재에 파란색을 입혀 투박한데다 사원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용 조각상은 중국풍이 짙게 배어 있어 참신한 맛이 나지 않았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왓 훼이 쁠라깡 사원이었다. 높은 언덕에 위치한 사원에는 초대형 백색 관음상과 붉은색 9층 탑이 우뚝 서 있었다. 이 사원에서는 불상이 백색이지만 불탑에 붉은색 테두리를 입혀 나름대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사원이 워낙 넓어 입구에서 전기차로 관음상 입구까지 간 다음 엘리베이터를 타고 관음상 상부로 올라가야 했다. 관음상은 100m 높이로 치앙라이 지역에서 가장 큰 불상이라고 한다. 이 사원에서 기도하면 건강 또는 돈으로 축복을 받는다고 해서 현지인들뿐만 아니라 중국 방문객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관음상 내부에 있는 불상과 장식물로 모두 하얀색이어서 백색 사원과 비슷한 느낌이 들지만, 디자인이나 장식 면에서 훨씬 떨어져 보였다. 관음상 미간 사이의 둥그런 창문을 통해 내려다보니 태국 북부지역 일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시간이 없어 9층 불탐에 들어가지 못하고 우리 일행은 버스를 타고 치앙라이 시내에 들어갔다.
치앙라이는 치앙마이에 비해 작고 한적했다. 밤이 되자 시내는 어둡고 인적도 드물었다.
저녁을 먹고 찾아간 곳은 치앙라이 야시장이었다. 늦은 시간이어서 음식 파는 야외 매대는 모두 철수했고 코끼리 바지와 수공예품을 파는 가계와 매대는 손님을 받고 있었다.
야시장 광장에서는 통기타 가수가 팝송을 부르고 있었다 여행 마지막 밤이라 우리 일행은 무대 앞 테이블에 모여 노래를 들으면서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치앙마이에 이어 오늘도 치앙라이 일대 사원을 구경했다. 사원을 둘러보니 새삼 태국이 불교의 나라임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도시나 교외 어디에서나 사원이 지천으로 깔려 있고 많은 사람이 사원을 찾아 열심히 불공을 드리고 있었다.
불공을 드리는 태국 사람들의 모습에 온화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지만, 사원의 대형화는 세속화를 오히려 촉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형 불상과 화려한 불탑을 갖춘 사원들이 일순간 사람들의 이목을 끌겠지만, 신자보다 관광객이 더 많이 찾는 사원은 점차 수행과는 먼 공간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괜히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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