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 20 코스(김녕 - 하도)
올레길 20코스는 김녕 서포구에서 시작한다.
김녕 환승 정류장에서 내려 시작점을 찾으려고 가는데 제법 걸어야 했다. 주변에 특별한 관광지가 있지 않아서인지 몰라도 김녕 포구 방문은 이전에 방문한 적이 없었다.
포구 마을은 오밀조밀 밀집해 있지만, 도보객들에 여러 가지 볼거리를 제공한다. 제주 전통 억새를 얹힌 초가집 카페가 보였다. 돌담 벽에 핀 노란 꽃과 보라색 꽃은 소담스럽기만 하다.
어느 민가 담벼락에 해파리가 유영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금속 부조물이 설치되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구릿빛이 가진 아름다움을 강조하기 위해 현무암의 노란 이끼와 제주 해풍에 자연 착색이 될 수 있도록 금속으로 작품을 만들었다는 작가의 설명이 이채로웠다.
김녕 해안은 용암 활동으로 형성된 지오 트레일 지역이다. 김녕 일대는 해수면이 낮았던 시기에 점성이 낮은 용암이 흐르면서 평탄한 용암대지를 형성했다고 한다. 바닷가에는 현무암 바위가 길게 늘어져 있다. 밀물일 때에 바닷물에 잠기고 썰물 때에는 해안선이 드러나는 조간대 지역이 여기저기 펼쳐져 있다.
해안 길을 따라 걸으니 돌로 쌓은 원뿔탑 모양의 구조물인 도대불이 보였다. 도대불은 바다로 나간 배들의 밤길을 안전하게 밝혀주기 위해 민간들이 세운 전통 방식의 등대이다. 등불의 연료는 생선 기름이나 송진을 쓰다가 나중에는 석유를 이용했지만, 전기가 들어오면서 이제는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김녕항 방조제 담에도 바다 고기와 해초를 그린 벽화가 새겨져 있다. 방조제 넘어 해안가에는 풍력 발전을 위한 대형 타워와 블레이드가 눈에 들어왔다.
김녕항을 지나자 하얀 모래가 꼽게 깔린 김녕 해수욕장이 나왔다. 해수욕장 바다 색깔은 하얀 모래에 반사되어 에메랄드 색깔을 띠고 있다. 가까이 보니 바다 밑은 하얀 모래밭과 검은 현무암 덩어리가 함께 깔려 있다.
김녕 해안은 제주도의 다른 지역과 달리 흰색 모래 해변이 도드라진다. 흰 모래 해변은 원래 얕은 바다에 살았던 조개와 해양생물의 골격이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던 곳으로 태풍이나 바다에서 불어온 북서 계절풍을 타고 해안으로 밀려와 쌓였다. 지역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흰 모래를 밭의 토양으로 사용했으며, 주로 마늘 당근 양파 등을 재배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김녕 해수욕장 주변은 온통 모래 언덕이다. 하얀 모래밭에 들꽃과 억새가 솟아나 멋진 풍경을 자아낸다. 바다에 튀어나온 검은색 현무암도 멋진 배경을 이룬다. 마침 그곳에 신혼부부 한 쌍이 천연의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올레길은 김녕 해수욕장을 지나 해안 들판으로 연결된다. 들판 길은 작은 모래 언덕을 지난다. 사구는 바람에 의해 모래가 이동해서 쌓인 언덕 지형인데, 김녕 일대의 모래 언덕은 대륙붕에서 해안으로 이동된 모래들이 쌓여 있다가 겨울철 바람을 타고 내륙으로 계속 이동하면서 형성된 것이다.
김녕 모래 언덕이 분포 범위가 넓은 것은 오랜 세월 동안 바람이 나르고 시간이 빚은 지형이라 할 수 있다. 하얀 모래밭에 작은 갈대와 들꽃이 솟아나 있나 멋진 풍경을 자아낸다. 이 해안사구에서도 흰물떼새가 3~6월에 알을 낳기 위해 몰려든다고 한다.
올레길은 제주 잔디인 태역이 깔린 성세기 해변 들판 한가운데로 지난다. 태역은 갈대와 달리 그리 크지 않아 시야를 가리지 않았다. 들판 길이 계속 이어지지만 흐린 날씨가 햇빛을 가려 걷기에 좋다. 바다에서 들려오는 시원한 파도 소리는 걸음을 재촉하기까지 한다. 바닷가는 고려 시대 축조한 환해장성이 돌담처럼 군데군데 펼쳐져 있다.
올레길은 해안 들판을 지나 해안 도로 연결된다. 도로 건너편 내륙지역에는 풍력 발전 장비들이 여기저기 배치해 있다. 바람이 약해서인지 대형 블레이드(바람개비)는 돌지 않고 있었다.
계속 걷다 보니 대형 청기와 건물이 눈에 띄었다. 숙박시설인가 했더니 가까이 보니 발전 관련 시설들이었다. 청기와 한옥 지붕도 생경했지만, 건물 안에 온통 설비와 기계들로 가득 차 있어 황당하기만 했다.
청기와 건물 앞에는 제주 밭담 테마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흔히 보여 무심코 지나치기 쉽지만, 제주 밭담은 바람을 걸러내고 토양유실을 막을 뿐만 아니라 동물의 농경지 침입을 막아 농작물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등 제주 농업인들의 삶과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농업 유산이다.
제주도 전역에 분포하는 제주 밭담은 토양 환경에 따라 외담ㆍ접담ㆍ잡굽담ㆍ잣담 등 다양한 형태를 이루며, 그 길이는 무려 2만 2천 km에 달한다고 한다. 안내문이 걸려 있어 제주 밭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테마파크가 해안가 도로 가장자리에 조그맣게 조성되어 있어 급조된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밭담 공원이 내륙에 있는 제주도 돌공원 주변에 조성되어 있으면 보다 많은 사람이 방문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올레길은 해안 도로로 이어지면서 월정리 해변으로 이어진다. 월정 포구가 나오고 카페촌이 밀집된 월정리 해수욕장이 보였다. 마을이 바다에서 보면 선명하게 반월형으로 보여 月汀里라고 불렸다고 하는데 밤에 바다에서 보면 달빛에 모래가 선명히 비춰 아름다울 것 같다.
월정리 방문은 이번에 3번째인데 올 때마다 새로운 카페와 음식점이 들어서는 것 같다. 많은 젊은이가 카페에 차를 마시거나 바닷가에 산책하면서 즐기고 있다. 파도가 치지 않아 서핑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
월정리 해수욕장을 따라 멋지게 들어선 카페를 보면서 계속 걸었다. 월정리 해변이 끝나자 행원 포구가 나왔고 올레길은 해안에서 내륙 들판 길로 이어졌다. 들판 길로 계속 가다 보니 올레길 중간지점인 행원 포구 광해군 기착비를 놓치고 말았다.
들판 길이 끝나자 올레길은 해안 도로를 따라가는데 올레 리본이 보이지 않아 오던 길을 돌아서서 찾아보니 올레길은 해안 도로가 아닌 안쪽 행원리로 연결되었다.
행원리에는 풍력 발전을 위한 대형 바람개비가 많아 이곳이 바람이 많은 지역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특별한 볼거리가 없어서인지 관광객들의 발길이 뜸한 곳이기도 하다.올레길은 마을 민가를 지나다 들판 길로 연결된다.
작은 숲길이 나오더니 제단처럼 돌로 쌓은 좌가 연대가 나왔다. 연대는 조선 시대에 적선의 동태를 관찰하고 해안 변경을 감시하는 군사시설로 이 지역이 고도가 높지 않아서인지 단을 높게 쌓아 올린 것 같다.
들판 돌담 밭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녹색 작물들이 무성히 자라고 있다. 밭 한가운데에는 바윗돌들이 섬처럼 쌓여 있어 이채로웠다. 올레길은 들판 작은 숲속으로 연결되었다. 평지에서 만난 숲길은 보행자들에게 무더위를 식히는 안식처가 되기도 한다. 숲길이 끝나자 올레길은 다시 해안 도로를 만났다.
한동리 마을 안내판이 보였고 건너편에 로봇 스퀘어라는 건물이 들어서 있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 만든 시설이지만 한적한 해안가 마을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이 건물도 문을 닫았다.
올레길은 해안 도로가 아닌 내지로 다시 연결되었다. 올레길을 걷다 보면 해안 도로로 계속 연결되다가 안쪽 마을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해안이 아닌 민가로 들어가면 무슨 볼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마을로 들어가면 해안에서 볼 수 없는 구경거리들이 있어 수긍이 절로 간다.
민가 돌담이나 마당에 소담스럽게 피어나는 꽃들은 물론이고 마을 사람들이 공들여 만든 벽화나 조형물들은 바쁜 도보객들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올레길은 평대 어촌계 앞을 지나가고 마을 사람들이 벵듸고운길이라 이름 지은 길을 지난다. 낮은 지붕의 제주 전통식 돌담집도 있고 세모 모양의 현대식 하우스도 보였다.
벵듸길은 돌과 잡품이 우거진 넓은 들판을 뜻하는 제주말이다. 평대 마을이 원래 벵듸 또는 벵디라고 불렀다고 하는 데 벵뒤길은 마을 유래를 짐작하게 하는 옛길 이름이다. 여기에도 크지 않은 제주 억새 태역을 볼 수 있었다.
올레길은 평대리를 지나다가 세화민속오일시장으로 연결되고 세화 해수욕장으로 이어졌다.
세화 해수욕장 모래사장은 넓어 보였다. 모래사장을 거닐면서 해수욕장을 구경할 여유를 가져야 하지만 장시간 걸음에 지쳐서 바로 올레길 종점을 향했다. 마침내 해녀박물관이 보이고 20코스 종점에 도착했다.
(2021년 5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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