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 18코스(제주원도심 – 조천)
18코스는 제주시 내 관덕정 올레 라운지에서부터 시작된다. 시내 번화가를 따라 걷다 보니 고목과 돌담으로 둘러싸인 오현단(五賢壇)이 나왔다. 오현단 내 기와집 건물에는 굴림 서원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굴림 서원은 선조 때 제주판관 조민후가 기묘사화로 제주도에 유배되어 사사된 김정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그의 적거지에 사묘(私廟)를 세운 데서 유래가 되었다.
숙종 때 굴림 서원으로 사액을 받아 김경, 송인수, 김상헌, 정온, 송시열 등 5명의 유학자를 배향하게 되어 오현단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조선 성리학이 본토와 한참 떨어진 유배의 땅 제주에서도 위세가 대단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오현단을 빠져나와 하천 고가에 서니 동문시장이 눈에 들어왔다. 올레길은 동문시장 한쪽 편을 지나서 중앙동 로터리로 나왔다. 올레길은 산지천을 따라 이어졌다. 산지천은 제주도의 다른 건천과 달리 수량도 풍부하고 물도 깨끗했다.
올레길 오른쪽으로 아라리오 뮤지엄과 김만덕 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큰 도로를 건너니 김만덕 객주 정문이다. 전통적인 제주식 초가집이 여러 채 있고 초가집은 음식을 파는 주막집으로 운영되고 있다. 기녀 출신 김만덕은 조선 정조 때 제주특산물을 유통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그녀는 제주에 흉년이 들자 전 재산을 털어 사들인 곡식으로 빈민을 구휼했다고 한다. 어쩌면 김만덕은 제주 여성의 억척스러움을 상징하는 듯하다.
올레길을 따라가니 도로변에 4.3 유적지라는 안내석이 눈에 들어왔다. 4.3 당시 민간인 수용소가 있었던 제주주정공장 옛터다. 4.3 당시 입산한 사람들이 군경의 귀순 권유로 산에서 내려와 이곳에서 수용되었으나 약속과 달리 혹독한 고문과 열악한 환경 때문에 많은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그들 중 많은 사람이 수장되거나 정뜨르 비행장(현 제주공항)에서 학살되었다고 한다.
올레길은 사라봉 방향으로 이어지면서 언덕배기를 넘어갔다. 언덕 위 조그만 공원에는 칠머리당 터라는 기념비가 있다. 선주ㆍ어부ㆍ해녀 등 바닷사람들은 바다가 보이는 이곳에서 무사 안녕과 풍년을 기원한 곳이다. 언덕 주변은 이제 아파트가 들어서 있어 당터라는 기념비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언덕 위에서는 제주항 여객터미널에 정박 중인 대형 선박 여러 척을 볼 수 있었다. 중학교 때 목포에서 아리랑호를 타고 수학여행으로 제주항에 도착한 것이 나의 첫 번째 제주 방문이었다. 그 당시 장시간 운항에다 뱃멀미로 크게 고생했는데 5년 전에는 완도에서 쾌속선을 타고 2시간 만에 제주항에 도착했다. 정박 중인 여객선들이 대체로 크고 깨끗해 보여 세월호와 같은 어이없는 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기대해본다.
올레길 민간 담벼락에는 바람 따라 걷는 건입동 벽화길이 조성되어 있다. 주로 제주의 자연 풍경을 묘사한 벽화들이어서 보행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아파트와 민가를 지나 사라봉에 연결되는 계단길에 오르니 많은 사람을 마주쳤다. 지난여름 서귀포 고근산처럼 사라봉은 시민들이 즐겨 찾는 동네 산이다.
계단길 초입에는 일제 동굴진지가 있었다. 일본군이 제주 북부 해안으로 상륙하는 연합군을 저지하기 위해 구축한 것이다. 수세에 몰린 일본군은 제주도를 저항 기지로 삼기 위해 도심 가까이에도 군사시설을 설치한 것을 보니 일본군의 치밀함에 치가 떨렸다.
올레길은 계단길로 쭉 이어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봉 정상에 도착했다. 사라봉 정상 정자에서 보니 사방이 트여 제주시 앞바다는 물론 한라산까지 볼 수 있었다. 사라봉은 해발 148m에 불과한 야산이지만 일몰 때 해가 바다로 떨어지는 낙조 풍경이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사라봉의 낙조는 성산 일출과 함께 영주십경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나에게 사라봉 조망은 서귀포의 고근산에 미치지 못한 것 같다. 고근산 정상에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한라산 전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하산길은 별도봉산책로로 이어졌다. 산책로는 숲길인데다 흙길이어서 걷기에 좋았다. 게다가 왼쪽으로 넓은 바다를 시야에 두고 걸을 수 있어 피곤하지 않았다. 그러나 좁은 길에 오르고 내리는 사람이 많아 다소 불편했다.
별도봉산책로를 내려오니 비석거리를 지나 화북 포구로 이어진다. 도로변에 4.3 당시 전체가 폐허가 되어버린 곤을동 마을 표지판이 보였다. 그 당시 토벌군의 작전으로 모든 가구가 전소되었고 24명의 주민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곤을동은 화북천을 끼고 별도봉 기슭에 해변으로 연결되어 있어 소개 작전을 펴기에 좋은 지형임을 알 수 있었다.
올레길은 해안도로를 따라 화북포구로 이어졌다. 해안도로를 따라 걸으니 올레길 도보객들을 응원하는 조형물들이 있어 힘이 되었다. 해안 쪽으로 검은 돌을 쌓아 올린 환해장성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장성 너머 바다에는 방파제가 길게 늘어져 있다.
조그마한 포구에는 어선보다 소형 낚시 선박과 요트들이 주로 정박하고 있어 이채로웠다. 올레길은 포구 마을을 빠져나와 해변 들판 길로 이어졌다. 바닷가 쪽으로 환해장성이 제법 높게 축조되어 있어 바다를 볼 수 없었다.
바닷가 들판에는 검은 돌로 축조된 제단 같은 건물이 보였다. 가까이 보니 화북별도연대라는 안내문이 나왔다. 연대는 옛날에 봉수와 함께 통신을 담당했던 군사시설로 바다를 잘 살펴볼 수 있는 곳에 주로 세워졌다고 한다.
올레길은 삼양역사 올레길과 겹친다. 삼양역사 올레길은 도심지와 가깝지만 숲길과 바닷길로 이어진다. 올레길 옆에 제주 억새로 이은 깨끗한 초가집이 보였다. 돌담 너머 핀 장미꽃이 소담스럽기만 하다.
올레길은 삼양동 경계에 들어서면서 선착장을 만난다. 선착장 한쪽에 새각시 물이라는 지명 안내판이 있다. 바다와 도로가 접한 지역이 마치 여자의 몸매를 닮아 옛날 사람들이 새각시물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물이 깨끗한 이곳에서 몸을 감고 빨래도 했다고 한다. 해안 도로 개설로 땅속에 묻힐 뻔했으나 복원하여 주민들의 휴식터로 여전히 이용하고 있다.
올레길은 삼양수원지를 지나친다. 삼양수원지는 오래전부터 깨끗한 용천수가 솟아올라 물천지를 이뤘던 곳이라고 한다. 제주시는 극심한 가뭄을 대비해 이곳에 2개의 수원지를 운영하고 있다.
민가 마을을 빠져나오니 모래사장이 길게 뻗어있는 삼양해수욕장이 나왔다. 해수욕장 모래는 흰색이 아니라 현무암 고유의 색감을 느낄 수 있는 검은 색을 띠고 있다. 해가 중천이라 해수욕장에 나와 있는 사람은 볼 수 없었다.
삼양해수욕장 끝나는 지점 민물이 흐르는 곳에서 아줌마들이 빨래하고 있었다. 바닷물이 섞여 빨래하기가 곤란하지 않으냐고 아줌마에게 물어보니 민물이 계속 흘러나와 괜찮다면서 물이 깨끗해 마시기도 한다는 답을 들었다.
빨래터 입구 표지석을 보니 용천수인 이곳 샛드리물은 사람들이 굿을 할 때 나쁜 기운과 잡귀인 까마귀를 쫓아내는 샛드림 하기 위해 이 물을 길어서 쓴 데 서 연유되었다고 알려준다.
올레길은 민가를 지나 다시 들판 길로 이어졌다. 농로지만 제법 도로 폭이 크다. 바닷가 쪽으로 중부 발전소가 있다 그러고 보니 발전소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삼양해수욕장과 가깝다. 발전소에서 흐르는 폐수가 바닷물을 오염시키지 않을까 하는 내심 걱정이 되었다.
신촌으로 가는 옛길에는 보리 수확이 끝나 노란 들판을 이뤘다. 마치 반고흐가 그린 황금빛 밀밭 풍경과 닮았다. 제주도 다른 지역에서 보기 어려운 옥수수밭도 볼 수 있었다.
해안가 큰 나무 밑에 나무 널빤지가 깔려있어 무턱대고 앉았다. 눈앞에 한 폭의 풍경화가 펼쳐져 있다. 해안 길을 따라 들꽃이 피어있고 들길을 따라 해안가 절벽에 멋진 정자가 들어서 있다. 절벽 밑 바다에는 크지 않은 파도가 계속 밀려와 찰싹찰싹 소리를 낸다.
바다에서 해풍까지 불어와 특유의 짠 냄새까지 스며들어왔다. 한순간에 오감이 되살아나 내 몸을 일깨워주는 듯했다. 이러한 순간이야말로 걷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이겠지 생각하고 멍하니 앉아 있으니 자리에 일어서기가 더욱 싫어졌다.
코스 완주를 위해 다시 일어나 걷다 보니 멀리서 보였던 정자가 있는 지형이 닭머루(닭의 머리)라고 설명하는 안내문이 보였다. 바닷가로 툭 튀어나온 바위 모습이 닭이 흙을 걷어내고 들어앉아 있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닭머루라고 한다는데 쉽게 연상이 되지 않았다.
올레길이 민가로 들어서니 여기저기 멋있는 카페와 민박을 볼 수 있었다. 신촌 블루스라는 카페 간판도 눈에 띄었다. 신촌 포구가 나왔으나 정박한 배가 많지 않아 아주 한적했다.
해안가 올레길에는 돌탑들이 여기저기 세워져 있다. 바람이 많이 부는 이 지역에 돌탑들이 무너지지 않고 그대로 서 있는 것을 보니 신기하기만 했다. 갑자기 비구름이 몰려와 어두워지면서 돌탑의 형상들이 묘연해지자 아내는 무섭다며 빨리 건너자고 했다.
올레길이 조천읍에 들어서자 용천수 탐방길이라는 안내판이 계속 나왔다. 조천읍도 삼양동처럼 용천수가 풍부한 곳이다. 용천수는 식수는 물론 생활용수로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다. 민가와 가까운 수암정 알물 용천수 터에서는 윗물에서 채소를 씻고, 아랫물에서는 빨래를 했다. 해안가에 주민들이 만든 용천수 목욕탕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다. 양진사 사찰 용천수 터에서는 스님들이 수련하다가 피로를 씻기 위해 목욕을 하는 곳이라고 한다.
올레길은 바닷가로 이어지면서 성곽과 정자를 만났다. 타원형의 성곽은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해안에 쌓은 조천진성(朝天鎭城)이다.
진성 안에 연북정(戀北亭)이라는 비교적 큰 정자가 있다. 연북정은 제주에 유배되어 온 사람들이 이곳에서 한양으로부터 기쁜 소식을 기다리면서 북녘의 임금에 대한 사모의 충정을 보낸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성곽 한쪽에 금당포(金塘浦) 터라는 표지석이 있다. 진시황의 명령을 받아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제주에 온 서복(徐福)선단이 맨 처음 도착한 곳이 조천포구라는 전설을 소개하고 있다. 표지석에 따르면 서복이 다음 날 아침 이곳에서 天氣를 느끼고 朝天이라는 글을 바위에 새겨놓았다고 한다. 그 바위는 고려 시대 조천관 건립공사 때 매몰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올레길은 조천 마을의 외곽 들판을 따라 이어지면서 마침내 18코스 종점인 조천만세동산에 이르렀다.
18코스의 명소는 세비코지에서 닭모루로 가는 해변이다. 올레길에 앉아서 바라보는 해변은 아름다운 풍경화 그 자체였다. 눈은 황홀했고, 파도 소리와 바다 냄새는 일순간 나의 오감을 회복시켜 내 몸을 일깨워주는 듯했다. 이러한 순간이야말로 올레길을 걷는 자들만이 얻을 수 있는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2021년 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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