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 1코스
제주 올레길에 나서게 된 또 다른 동기는 퇴직을 앞두고 그동안의 삶을 정리해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길에서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학교 졸업 후 직장 생활이라는 큰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퇴직 후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제주 올레길이 육체적으로 힘이 들겠지만, 퇴직을 앞두고 무딘 정신을 일깨워 자신을 단련해주는 기회로 삼고 싶다.
제주 올레 걷기는 코로나 창궐 이전 2019년 9월부터 시작해서 무려 8차례에 걸쳐 제주를 오가면서 2023년 4월에야 추자도 구간을 제외하고 제주 본토 25개 코스 416km를 완주할 수 있었다.
제주올레 센터가 있는 서귀포 7코스에서부터 걷기 시작했지만 여건 닫는 대로 하다 보니까 순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1코스부터 글을 싣는다.
1코스는 제주 동쪽 시흥리에서부터 시작되어 성산일출봉을 지나 광치기 해변까지 이어지는 구간이다.
성산읍에서 버스를 타고 시흥초등학교에서 내리니 1코스 시작을 안내하는 올레길 간세가 보였다. 간세는 제주 올레의 상징인 조랑말의 이름이다. 게으름뱅이라는 뜻의 제주어 ‘간세다리’에서 유래된 것으로 천천히 쉬면서 걸으며 제주를 즐기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1코스 시작점에서 사진을 찍고 말미 오름으로 향했다. 말미 오름 이름은 말의 머리처럼 생긴 데에서 유래되었고 두산봉이라고도 부른다.
말미 오름으로 가는 올레길에는 돌담에 둘러싸여 있는 녹색 밭이 펼쳐져 있었다. 녹색의 무밭은 노란색의 유채밭과 함께 나에게 제주의 봄날을 상징하는 색으로 각인되었다.
한참 길을 따라 말미 오름 입구에 이르니 올레 안내 센터가 나왔다. 1코스 시작하는 곳이라 올레 센터는 크고 내부도 잘 꾸며져 있다. 시흥리에서 1코스가 시작되는 이유는 옛날 제주 목사가 섬 순례를 이곳에서부터 시작했고 현재의 행정구역상으로도 제주시와 서귀포시가 접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계단 길을 오르는 숲길이 나오고 올레길은 말미 오름의 능선을 타고 이어졌다. 날씨가 청명해 능선 왼쪽으로 가까이 다랑쉬 오름, 용눈이 오름에 이어 멀리 한라산까지 보였다. 말미 오름 정상에 가까이 오르니 왼쪽으로 지미봉을 시작으로 오른쪽으로 우도, 성산일출봉, 섭지코지가 차례차례 눈에 들어왔다,
오름 아래 뭍에는 녹색 무밭과 노란 유채밭. 검은 돌이 조각보처럼 펼쳐져 있었다. 성산일출봉과 우도 사이 바다 색깔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더욱 파랗게 보였다. 성산일출봉과 우도는 모두 육지에서 떨어져 나왔지만, 일출봉은 우뚝 서 있고 우도는 눕혀져 있다.
말미 오름에서 알 오름으로 가는 길은 소나무와 잣나무 잎이 떨어져 마침 푹신푹신한 양탄자 위를 걷는 느낌이었다. 숲속의 새가 도보 여행객을 환영하는 듯 계속 짖어대고 있었다.
말미 오름에서 내려와 알 오름으로 오르는 평지에는 늪이 있어 이곳이 분화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 오름으로 오르는 비탈길은 억새밭을 이뤄 제주 오름 특유의 갈색 색깔을 빚어냈다. 청명한 날씨 때문에 가까이에 달랑쇠 오름과 용눈이 오름을, 멀리서 한라산을 볼 수 있었다.
알 오름 정상에 오르자 지미봉과 우도가 더욱 가깝게 보였다. 제주 섬 동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지점이다.
알 오름에서 내려 민가로 들어서는 길에는 검은 돌담에 둘러싸여 있는 무덤들을 볼 수 있었다. 무덤이 모여 있는 곳에는 동백나무 울타리가 쳐져 있어 고인들의 안식을 돕는 듯했다.
큰 도로가 나오니 대로변에 종달초등학교가 나왔다. 학교를 지나 좁은 민가 길을 걷자 팽나무 고목 아래 있는 쉼터를 만났다. 쉼터 옆에는 종달리 소금밭 체험시설 건물이 들어서 있다. 건물 옆 갈대밭은 옛날 염전 밭이다. 조선 시대 만들어진 염전 밭은 일본 강점기 때까지 운영되었으나 1950년대 방조제를 쌓아 농토로 조성되어 1990년대까지 활용되었다고 한다.
종달리 염전 밭 갈대숲을 지나자 본격적으로 종달리 해변 길로 접어들었다. 해안도로가 놓인 올레길은 자전거 도로를 같이하고 있다. 쭉 해안 길로 이어져 다소 지루한 생각이 들지만 잔잔한 바다 풍경으로 평안한 느낌이 더 들었다.
종달리 해안도로 올레길을 걸으니 도로 갑판 위로 한치를 말리고 있었다. 1코스 중간 점인 목화휴게소에서는 건조된 한치를 팔고 있었다.
성산읍을 향해 해안도로 옆 올레길을 따라 계속 걷다 보니 오른쪽으로 시흥 해녀집과 조가비 박물관이 보였다. 조가비 박물관은 벽이 모두 조개로 장식되어 있다.
오른쪽 언덕 위에는 돌담으로 둘러싸인 오소포 연대가 보였다. 육지 봉수대가 산 정상에 설치되어 있는 반면에 제주 연대는 주로 언덕이나 해변 지역에 설치되어 횃불과 연기를 피워 군사적으로 급한 소식을 전했다고 한다.
성산읍이 눈에 들어오자 올레길은 직선 도로로 이어지지 않고 언덕 위 등대 모양의 건물을 놓고 삥 둘러 갔다. 등대 모양의 건물은 오조 해녀집이다. 오조 해녀집은 달리 2층 높이의 현대식 건물이고 부지도 꽤 넓어 보였다.
올레길은 오조 해녀집을 돌아서 나와 대로로 이어지면서 성산 갑문이 나왔다. 성산 갑문을 지나니 올레길은 성산항으로 향했다. 성산항으로 가는 길은 상가 건물이 밀접한데다 차량 통행이 잦아 복잡했다
올레길은 성산일출봉을 향해 언덕으로 향한다. 언덕에 올라서자 멋진 풍광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푸른 바다에 접해 있는 성산일출봉이 위풍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일출봉 앞에 대형 리조트가 들어서 있어 전체 조망을 가리고 있어 아쉬웠다.
리조트를 빠져나오자 길 한쪽에 시비들이 보였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 』등 제주 섬과 관련한 시작품을 남긴 충남 서산 출신의 이생진 시인을 기념하여 성산일출봉에 가는 거리에 그의 시들이 검은 돌판 위에 새겨져 있었다.
해녀 탈의장 앞에서 올레길은 성산일출봉으로 가는 좁은 길로 이어졌다. 좁은 길옆에는 노란 유채꽃이 만발하여 성산일출봉을 배경으로 환상의 풍경을 자아냈다.
올레길은 울타리에 막혀 일출봉으로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정문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동안 성산일출봉을 오게 되면 정문 주차장에서 차를 대고 오르기만 했지, 일출봉 정문 옆으로 조그마한 오솔길과 해변 길이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성산일출봉 앞 식당가를 지나 올레길은 다시 해변 길로 향했다. 해변 길로 접어들어서도 계속 성산일출봉의 위엄을 볼 수 있었다. 성산항에서는 일출봉의 왼쪽을, 해변에서는 일출봉의 오른쪽을 볼 수 있다. 일출봉 오른쪽 수마포 해변에서는 일제가 만든 진지 동굴이 여기저기 보였다. 일제가 전쟁을 치르기 위해 제주의 자연을 훼손시킨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올레길은 해변 모래사장으로 이어지다가 도로로 연결되었다. 도로변 소나무 군락 터 한쪽에 터진목 4.3 희생자 위령비가 서 있었다. 육지와 바다가 만나는 터진 이곳에서 죄 없는 양민들이 무참하게 희생당했다고 한다. 성산일출봉이 당시의 참상을 지켜봤으리라는 생각이 드니 처연하기만 했다. 아픈 역사를 절대로 외면하지 말고 껴안아야 할 것 같다.
올레길은 다시 바다 모래사장으로 연결되어 광치기 해변으로 들어섰다. 왼쪽으로 성산일출봉이 오른쪽으로 섭지코지가 자리를 잡고 있다. 해변 일대는 썰물 때 물이 빠져 드넓은 평야가 펼쳐지는 모습이 광야 같다고 해서 광치기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썰물 때라 물이 빠져 드러나 바위 바위에 듬성듬성 녹색의 이끼가 끼어 있어 이색적이었다.
마침내 공치기 해변 1코스 종점이 나왔다. 해변에 나와 있는 할머니로부터 천혜향을 구매해 먹고서 1코스 완주를 자축했다.
제주 1코스는 말미 오름과 알 오름 오르기에 이어 종달리 해변 걷기로 지루하지 않게 걸었다, 오름 정상에서 보는 성산일출봉과 우도의 평화로운 정경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1코스에서 해변을 따라 성산일출봉을 두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내내 조망하게 된 것도 의외의 기쁨이었다. 늘 정문 입구에서 성산일출봉에 올라 내리기만 했지만 오랜 시간 왼쪽 오른쪽 양쪽 측면에서 성산일출봉을 바라보는 것은 올레길 도보여행자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었다.
(2020년 3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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