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 10코스(화순 해수욕장 - 모슬포)
10 코스는 화순 해수욕장을 기점으로 산방산·용머리 해안·사계 포구·송악산을 거쳐 모슬포 하모 해수욕장에 이르는 다소 긴 구간이다
올레길은 화순 해수욕장에서 해안 언덕길로 오르다가 다시 해안 모래길 내려오기를 반복한다. 화순 해수욕장에서 송악산까지 연결된 해안 길은 지질 트레일 보존지역이다. 그야말로 용암이 흘러서 바다를 만나 다양한 지역을 형성한 곳이다.
먼저 접한 지형은 소금막 용암 지역이다. 해안지역에 펼쳐져 있는 현무암 기암괴석은 제주시 용두암 일대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황우지 해안은 모래사장이지만 현무암 색깔과 같이 검은 색깔을 띠고 있다.
모랫길이 끝나자 오른쪽으로 산방산이 우뚝 서 있다. 산방산도 화산 활동으로 생겨났지만 다른 화산과 달리 정상에 분화구가 없는 용암동 형태를 띠고 있다. 가까이 보니 바위로 둘러싸인 악산이다.
산방산은 10코스 내내 볼 수 있다. 올레길은 오른쪽으로 산방산을 바라보면서 용머리 해안으로 향한다. 모래사장 숲을 지나자 붉은 계단길이 보였다. 가파른 계단이 끝나자 산방산 아래 산방연대가 나왔다.
산방연대 전망대에서 왼쪽으로 서귀포, 오른쪽으로 송악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산방연대에서 내려오면 용머리 해안으로 연결되었다. 용머리 해안은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화산체라고 한다. 제주도의 용암대지가 본격 형성되기 이전 바닷속에서 화산 폭발이 일어나 마그마가 바닷물을 만나면서 급격히 식어 여러 겹의 지층을 형성하게 되었다. 용머리 해안은 몇 번이나 왔지만 물 시간이 맞지 않아 들어갈 수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이다.
올레길은 용머리 입구에서 도로를 따라 사계 포구로 향했다. 사계 포구로 가는 길은 식당들이 줄지어 있어 복잡했다.
식당가를 빠져나가자 해안 도로 위에 서양 부인이 쪼그려 앉아서 해녀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의 동상이 서 있었다. 백인 부인은 러시아 고르바초프 대통령 부인이다. 부인은 1991년도에 이곳에서 제주 해녀들과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올레길은 해안 도로변 모랫길로 이어졌다. 사계 포구에서 송악산 가는 길은 운전을 하면서 자주 지나쳤던 길로 내심 걷고 싶었는데 이번에야 비로소 걷게 되었다.
올레길은 바다 쪽으로 붙어 있어 해안 모래 위나 바위 위를 걸어야 했다. 이 지역도 지질 트레일 지역으로 검은 현무암 바위가 해변 여기저기에 깔려 있고 모래도 검은 편이다.
해안으로 크고 작은 두 섬이 마치 형제처럼 마주하며 떠 있다. 차로 다니면 그냥 스쳐 갈 수 있으나 걷다 보니 형제섬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송악산 방향으로 한참 걷다 보니 사람 발자국과 동물 발자국 화석이 나온 것이라는 안내문이 나오고 올레길은 더 이상 모래사장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해안도로로 연결되었다.
마라도행 선박 선착장이 보이고 상점이 밀접해 있는 송악산 입구에 도착했다.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송악산으로 향했다.
올레길은 해안을 따라 송악산을 한 바퀴 도는 둘레길이다. 이전에 송악산에 왔을 때 입산 금지로 다 돌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돌 수 있었다.
올레길 절벽 전망대에 오르니 가파도가 지척이다.
파도가 높은 편이지만 바다 위에는 여기저기 고깃배가 떠 있었다. 검푸른 바다는 외지인에게는 멋진 풍경으로 보이지만 섬사람들에게 삶의 현장일 뿐이다.
군부대 시설을 돌아 뒤편에서 절벽을 바라보니 검은 현무암 바위가 부서져 붉은 흙으로 변했다. 세월이 흐를수록 파도에 절벽 바위가 침식되어 지형마저 바뀌어 가고 있다.
둘레길 안쪽으로 송악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통제 구역이다. 식생 회복을 위해 송악산 정상부 지역에 자연휴식년제가 도입되어 출입을 제한하고 있었다. 사람은 들어갈 수 없지만, 말들이 야산에서 한가히 풀을 뜯어 먹고 놀고 있었다.
송악산은 다양한 화산 활동으로 여러 분화구와 오름이 있다고 하는데 들어가지 못해 아쉬웠다. 송악산을 자세히 소개하는 자료라도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악산 둘레길이 끝나는 무렵에 솔밭이 나왔다. 지역민들이 솔밭에서 기구를 이용해 운동하고 있어 부러웠다. 코로나 때문에 도시 사람들은 야외에서 운동하기가 두렵지만, 제주도민들은 공기 좋은 곳에서 마음껏 운동하고 있었다.
올레길은 큰 도로를 건너 들판을 가로질렀다. 들판에서 다시 산방산이 눈에 들어왔다. 올레길 옆에 다크투어리즘 안내판이 나왔다. 비극적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기 위하여 떠나는 탐방이 본격 시작됨을 알려주고 있었다.
처음 마주친 것은 섯알오름 안에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들이 미군 항공기 공습을 막기 위해 고사포 진지를 만들었던 현장이다. 용암이 분출했던 조그만 알 오름(분화구) 내부를 모두 콘크리트를 쳐서 고사포를 배치하게 포대를 구축했다.
일본군들은 태평양의 많은 섬에서 그러했듯이 제주도에서도 미군들과 전투에서 옥쇄할 각오로 치밀한 작전을 세우고 죽음의 진지를 만들었다. 일제가 미국의 일본 본토 내 원자 폭탄 투하로 그나마 빨리 항복하게 되어 제주도가 피해를 보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섯알오름에서 내려오는 길은 모슬포 일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들판 일대에는 때아닌 유채꽃이 환하게 피어나 도보객들을 반겼다.
섯알오름에서 내려오니 평지에서 움쩍 파인 분화구가 보였다. 4.3 당시 주민들이 집단으로 학살되어 한 곳에 묻힌 섯알오름이다. 4.3 사건이 끝날 무렵인 1950년 6.25가 발발하자 경찰과 군인들은 예비검속을 명분으로 체포했던 민간인 200여 명을 무자비하게 사살한 후 암매장했던 곳이다.
경찰과 군의 치밀한 은폐 작전과 방해 공작으로 60여 년 동안 암매장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으나 피해자 가족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DNA 검사를 통해 희생자들의 신원들이 마침내 밝혀졌다고 한다. 유족들은 희생자들을 대정읍 상모리에 안장하고 같은 날 선조를 잃었다는 의미로 묘역을 백조일손지지(白祖一孫之地)라 이름 지었다.
샛알오름예비검속추모비 앞에는 유족들이 차려놓은 향초와 음식물이 놓여 있었다. 제대 앞에 고무신이 놓여 있어 의아해했는데 당시 희생자들이 불에 탄 모습을 형상화한 주변 조형물에도 타다남은 고무신이 새겨져 있었다.
섯알오름에서 나와 대로를 걷다 보니 광활한 들판이 나왔다. 큰길 옆 주차장에는 대나무로 엮어 만든 파랑새를 안고 있는 소녀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서 있었다. 소녀는 넓은 들판에서 외롭게 서 있지만, 파랑새를 손에 쥐고서 평화를 갈구하고 있는 모습이다.
제주말로 마을 아래에 있는 너른 벌판이라는 뜻을 지닌 알뜨르 지역에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이 제주도민을 동원해 만든 비행장이 있다. 일본군들은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알뜨르비행장에서 해군항공대를 실제 출격시켰다고 한다.
비행장 여기저기에는 격납고, 지하 벙커, 활주로, 관제탑 등 당시 시설이 폐허처럼 남아 있다. 이 광활한 지역에 군비행장 시설을 만들려고 얼마나 많은 사람을 동원했을까. 그리고 제주도에서 실제 전쟁이 일어났으면 이곳은 어떻게 황폐해지었을까 생각만 해도 일제의 만행에 다시 분노가 치솟았다. 다행히 현재 이곳은 농작물을 재배하는 밭들이 들어서면서 평화로운 전원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올레길은 모슬포 하모 해변으로 연결되었다. 하모 해변은 해 질 무렵의 고즈넉한 분위기에 너무 평화롭다. 비가 뿌리기 시작하자 10코스 종점을 위해 마지막 피치를 올렸다. 오늘 하루 20㎞를 넘어 걸었지만, 제주의 자연과 역사에 흠뻑 빠져 피곤을 모른 채 코스를 완주했다.
(2020년 1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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