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에 관하여
‘염병할...’, 요즘으로 치면 ‘코로나나 걸릴’, 이것은 욕설입니다.
현실이 힘겨울 때 분풀이를 통해 이를 정신적으로나마 해소해 보려는 몸부림입니다. 욕설은 자신을 향하든 타인이나 세상을 저주하든 마치 조각칼처럼, 마땅찮은 현실을 분명하게 파헤쳐서 드러내고, 이는 때로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되기도 합니다. 욕설이 자극제가 되어 서로를 정면으로 직시하면 그렇습니다. 결국 가벼운 일탈이 주는 순기능이 됩니다. 물론 역기능은, 서로가 영원히 적이 될 수 있습니다. 욕설에도 양면성이 있는 것입니다.
욕설이 직접적이라면 반어는 제법 우회적입니다. ‘그래 너, 잘났다’부터 시작해서, ‘나는 너를 잊었어’ 등의 표현입니다. 진짜 잊었다면 그런 말을 할 일도 없습니다. 게으른 자녀에게 ‘부지런하시네’라는 말은, ‘지금까지 자빠져 자냐’는 말보다 훨씬 공격적입니다. 어쩔 수 없이 냉소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공격을 받은 자녀는 다음날 정말 치사하고 더러워서, 10분 일찍 침대에서 일어나 양치질을 합니다. 마음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다소 고급스런 동양의 어법이 있습니다. 말은 거창하지만, KBS 드라마 ‘대장금’에서 이를 잘 보여줍니다. 대장금이 쉐프 생활을 접고, 의사의 길로 나서면서 특유의 영민한 머리로 약초를 모두 암기한 뒤, 독초와 약초를 가르라는 시험에 줄줄이 답안지를 작성해 나갑니다. 그런데 다소 머리가 나쁜 친구는 아무런 답도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스승은 머리가 나쁘지만 제법 예쁜 수련생에게는 높은 점수를 주고 대장금을 낙제 시킵니다. 황당한 대장금에게 답하는 스승의 논리가 바로 모순 어법이고, 모순을 통한 자각으로 타인의 세계관을 확장하는 동양 사유의 출발입니다. 아무래도 욕설과 반어보다는 고급스럽습니다. 모순으로 뒤덮인 노자의 ‘도덕경’이 그렇습니다.
“독초가 약초이고, 약초가 독초이다.”
모든 약초와 독초를 줄줄이 분류해 보아도, 어떤 환자에게 인삼은 독초이고, 어떤 환자에게는 사약을 만드는 부자가 약초입니다. 좀 더 쉬운 이해를 위해 모순 어법을 한 두 개 더 소개합니다.
작은 것이 큰 것이다. - 반도체
미움이 사랑입니다. - 이혼법정에서 한 판사가
죽는 것이 사는 것이다. - 명량해전을 앞둔 이순신
등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고사관수도 - '강희안의 고사관수도는 우리에게 한번쯤은 게으름에 관하여 생각케 해준다'
[이미지출처=국립중앙박물관, 공공누리의 표기 원칙에 따라 출처를 표기함]
대학을 다니지 않고 노숙자에 가까운 히피 생활을 하면서, 부모 속을 부단히 썩인 스티브 잡스는 결국 애플을 운영하면서도 투자자의 속을 태웁니다. 스티브 잡스가 입양되었다고 해서, 부모가 그를 방치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실제 나중에 친부모에게 연락이 오자, 그냥 생물학적 부모라고만 평가했으니까요.
그는 아이폰을 만들면서 핸드폰 하드웨어에서 키보드를 없애고 이를 터치 스크린으로 옮겨 버립니다. 키보드 없는 전화기가 이렇게 히피족 잡스를 통해 탄생합니다. 그가 ‘고사관수도’를 보았다면, 아이폰을 보내 그 게으름의 의미를 찬양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게으름이 부지런함이고, 사라지는 것이 살아난다’는 역설이 담겨있습니다. 엄청난 반발을 무시하고, 스티브 잡스는 이를 관철해서 결국 아이폰을 탄생시킵니다. 그래서 세상이 바뀝니다.
이제 당신도 매사에 늦어지는 자녀에게 어떤 말을 해보시겠습니까.
1. 찌질하게 매일 방콕이지, 지 아빠를 닮아 게으른 자식.
2. 부지런해서 밥빌어 먹고 잘 살겠다.
3. 그래, 조금 늦는 것이 이른 것이지.
단, 3번의 경우는, 아이가 영원히 늦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이가 칭찬으로 받아들이면 현실은 더 이상 바뀌지 않습니다. 모두 상대적이고 세상사 정답이 없으니까요. 대화와 소통의 상대성 속에서 구태여 답을 고르라면 저는 아직 3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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