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파시즘/버트럼 그로스』를 읽고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반공전체주의라는 말이 회자하기 시작했다.
정권의 최고 책임자 입에서 전체주의라는 말이 나와 아연하기도 하고 섬뜩하기만 하다. 일반적으로 전체주의란 개인의 이익보다 집단의 이익을 강조하면서 집권 세력이 정치‧경제‧사회‧문화생활 모든 영역에 걸쳐 국민을 전면적으로 통제를 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전체주의가 파시즘과 공산주의를 포함하고 있지만, 현재의 정권 수반이 과거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를 싸잡아 반공전체주의라 몰아붙이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까.
미국의 정치학자인 버트럼 그로스는 『친절한 파시즘』이라는 책을 통해 미국을 비롯한 이른바 자유세계 국가에서 조짐을 보이는 전체주의 경향을 다뤘다.
그로스는 “미국에서 부와 권력이 거대기업-거대정부 연합에 집중되면서 사회가 관리와 통제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국가조합주의(전체주의)에 예속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민주주의의 약속을 실현하고자 하는 대중의 요구가 강력해지면서 지배 세력은 대중의 생각을 교묘히 관리하는 방식으로 은밀하게 억압을 행사한다. 또한 거대기업과 거대정부가 각자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서로 접합해 억압적인 지배 세력을 형성하는 것이 파시즘 체제이다.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파시즘은 2차 세계 대전 발발 이전 독일, 이탈리아, 일본에서 나타났던 강압적인 고전적 파시즘의 사악한 국가조합주의와 달리 「친절한 파시즘」이라고 그로스는 명명했다.
저자는 “파시즘은 초국적인 자본축적이 위기에 봉착했을 때 권력을 지키기 위해 기득권이 필사적으로 따르게 될 상황 논리에서 나온다”라면서“기득권은 상층의 통합을 공고히 해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위로 집중시키고 국내외 대중에게 한층 더 심화된 착취와 통제를 가한다”라고 분석했다.
20세기 말 미국에서는 제국주의 대외 팽창과 국내에서의 압제와 억압을 사용한 고전적 파시즘과 달리 전문가주의를 확장해 대중의 사고와 생활을 관리하며, 헌정 장치들을 활용해 합법적으로 법위에 군림하는 「친절한 파시즘」 체제에 이미 돌입했다.
저자는 “미국의 정치 형태는 울트라 리치, 기업 실질 지배자, 행정부 최고 통수권자로 구성된 기득권 상층이 지배하는 과두제로, 기득권층은 민주적 책무성에서 자유롭게 벗어나지만, 대중들의 자유와 권리를 박탈당하는 실질적인 파시즘 체제에 돌입했다”라고 강조한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 내 파시즘을 이끄는 대열은 약자를 억압하는 무리, 군비 확산을 주장하는 호전적인 자살 부대, 막대한 돈을 가진 경제 부대, 헌법을 훼손하는 공병 부대, 국가조합주의 신화 논리를 창출하고 전달하는 보수주의 재단과 연구소 등 우파 쪽의 다섯 개 대열이다.
1980년대 뉴라이트와 신보수주의 득세에 힘입어 등장한 레이건 정부 이후 다섯 개의 대열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면서 미국 내 파시즘 흐름은 더욱 견고해졌다.
천 번째 대열인 약자를 억압하는 무리는 유색인종, 이민자 및 무슬림에 대한 혐오 정서에 힘입어 배타적 국수주의를 표방하면서 대중적 지지를 얻고 있다. 두 번째 대열인 호전적인 자살 부대는 미국 내 무기 수출과 냉전 이데올로기를 여전히 주도하고 있다.
세 번째 대열인 경제 부대는 신자유주의의 공고화에 힘입어 부를 독점하면서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네 번째 대열인 헌법을 훼손하는 공병들은 발달된 테크롤로지를 활용해 시민들을 치밀하게 감시하고 있다. 네 개의 대열을 정당화하는 다섯 번째 대열은 체제 존속을 위해 파시즘 이론과 신화들을 지속적으로 창출하고 있다.
그로스가 1980년 초에 미국 내 기득권층에서 권위주의가 부상하고 민주주의가 퇴락할 것이라는 암울한 진단은 4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틀리지 않다.
실제로 미국 내 권위주의 부상과 민주주의 퇴락이라는 「친절한 파시즘」체제는 2008년 금융위기에서 금융 과두 권력의 위력과 폐해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2017년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은 배타적 국수주의의 도래와 함께 강력한「친절한 파시즘」의 부상을 초래하면서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극우 보수파 정권의 최근 횡보로 그로스가 예측한 「친절한 파시즘」 체제에 돌입한 것이라는 진단이 설득력을 얻어 가고 있다.
보수우파 정치가와 검찰 세력을 기반으로 재벌기업‧족벌언론‧관료집단들이 조합하여 민주적 제도와 장치를 하나둘씩 무너뜨리고 통제 정치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기득권층은 반공을 내세워 민주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을 억압하는 이데올로기 전쟁을 펼치고 있다. 급기야 일제와 싸웠던 독립운동가들을 공산주의로 몰아치면서 역사 전쟁까지 벌이고 있다.
현 집권 세력은 미국‧일본 등과 이른바 반공산주의 동맹 관계를 공고히 하면서 민족과 민초들의 이익을 과감히 포기하는 대신 글로벌 기득권층의 이익을 열심히 강화하려 하고 있어 깊은 우려를 낳고 있다.
비관주의가 팽배히 일고 있지만,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저자의 의도에 우리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저자는 “미국 사회에 씨실과 날실처럼 짜여 들어가 상호작용하고 있는 파시즘의 조류와 민주주의적 조류의 동학을 관찰하면서 파시즘의 흐름이 아닌 민주주의의 희망을 보여주는 징후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저자가 책을 통해 보내는 메시지에도 분명히 귀담아들어야 한다.
“가만히 앉아서 상황이 더 나빠지기를 기다리기보다는 더 나은 상황을 만들기 위한 끝없는 투쟁에서 실수와 잘못을 통해 교훈을 얻고, 또다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길지만 즐거워야 할 여정에 함께할 동지들을 발견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도 일찍이 이승만 독재와 박정희‧전두환 구분 독재 시대에 정권에 의해 끔찍한 통제를 경험했고, 최근 들어 이명박, 박근혜 보수 정권 집권 시에도 뉴라이트 세력에 의해 과도한 역사 전쟁을 겪기도 했다.
나라 안팎에 걸쳐 있는 기득권층의 모진 억압과 통제에 맞서 그때마다 민초들은 민주주의 체제를 다시 일으키는 저력을 보였다. 기득권층이 더욱 교묘히 통제력을 행사하려는 작금의 상황에서 민초들의 깨어있는 정신과 행동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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