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색다른 42일간의 미국 횡단기/이재호』를 읽고
폭염을 피해 1박 2일 짧은 휴가 중에 『조금 색다른 42일간의 미국 횡단기』라는 책을 몰입해서 읽었다. 여행기라 피서지에서 쉽게 읽기 좋은 책이라 생각하고 주저 없이 가져갔지만, 아메리카 인디언의 슬픈 이야기를 담은 내용이어서 전혀 가볍지 않았다.
저자는 미국 내 인디언 주요 유적지와 거주지를 직접 답사하면서 인디언 원주민들이 백인들에 의해 자기 땅에서 쫓겨나고 탄압받게 되는 아픈 역사를 생생하게 들춰낸다. 책은 마치 인디언의 비애와 미국의 흑역사를 소개하는 다크 투어의 안내서처럼 상세히 쓰여있다.
저자는 41일간 미국 전역 33개 주에 흩어져 있는 인디언 유적들과 거주지를 찾아 무려 17,000km를 주행하면서 자신의 블로그로 글을 올리고 책으로 발간했다.
유럽인과 미국인들의 인디언 탄압 역사는 책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저자는 먼저 애리조나 피닉스에서 시작하여 스페인 탐험대들이 거쳤던 유타․ 콜롬비아․뉴멕시코․캔자스․오클라호마․미주리․앨라배마․플로리다를 횡단하면서 인디언 가주지와 피해 현장을 답사했다.
미국 독립 이전에는 스페인 탐험대가 금과 은을 쫓아 아메리카 지역의 인디언 종족들을 학살하고 주요 거주지를 불살랐다.
1492년 콜럼버스가 서인도 제도를 발견하면서 유럽인과 아메리카 원주민간 접촉이 이뤄진다. 당시 스페인은 식민지 개척에 나서 멕시코와 페루 등 남미 대륙을 정복한 데 이어 1540년에 미국 영토까지 진출했다.
코로나도 원정대가 멕시코에서 북상하고, 데소토 원정대는 플로리다로 상륙했다. 스페인 원정대는 금을 찾기 위해 애리조나, 뉴멕시코 등 남부지역 정복에 나서면서 인디언들의 거주지를 황폐화하고 살상을 자행했다.
1539년 플로리다에 상륙한 데소토 원정대는 미국 남동부지역의 원주민 마을을 초토화하면서 이들 지역의 원주민 사회를 처참히 붕괴시켰다. 스페인 원정대는 당시 원주민들을 상대로 사지 절단, 화형 등 잔인하고 끔찍한 만행을 가는 곳마다 저질렀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일부 인디언 사람이 잔인해진 것은 인디언의 원래 풍습이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에 진출한 유럽인들이 먼저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강조한다.
영국과 프랑스의 경쟁적인 식민지 개척으로 인디언에 대한 탄압은 더욱 거세졌다.
저자는 플로리다로부터 대서양 연안과 애팔래치아산맥을 따라 조지아․노스캘로라이나․버지니아 등 대서양 연안을 따라 건설된 유럽인들의 식민지 및 이에 맞섰던 인디언 부족을 찾아 나섰다
영국과 프랑스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지배권을 차지하기 위해 동북부 주요 거주지에 사는 인디언들을 죽이거나 몰아냈다. 또 한편으로 두 나라는 미국의 독립전쟁 과정 중에 인디언 종족들을 자기 편으로 만들고 서로 싸우게 하는 이간책을 펼쳤다.
영국과 프랑스가 동부 해안지역으로 진출하면서 대서양 해안지역 인디언들을 거주지에서 점차 쫓겨나게 되었다. 프랑스와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은 1763년 애팔래치안 산맥을 경계로 동쪽에 살던 인디언들을 서쪽으로 몰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1775년 미국 식민지와 영국 간의 독립전쟁이 발발하자, 대부분의 원주민은 자신들의 영토를 침탈해온 정착민들에 맞서기 위해 영국 편을 들었다.
하지만 식민지 반란군이 승리하고 미국이 독립하게 되자 애팔래치아 경계선은 무용지물이 되고 미국 정부는 인디언 종족들과 다수의 기만적이고 폭압적인 조약 체결을 통해 미시시피의 동쪽의 인디언 영토를 대부분 확보했다.
1619년 제임스 타운에 영국의 첫 식민지가 세워진 지 250년 만에 인디언들의 영토는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인디언 부족들은 자신들의 풍요로운 환경의 터전을 빼앗기고 낯선 황야로 밀려나게 되었다.
저자는 청교도가 상륙했던 매사추세츠부터 서쪽으로 미 대륙을 횡단하는 시애틀까지 가는 경로에서 유럽인들과 식민지 주변 인디언 부족 간의 갈등, 아메리카 식민지를 둘러싸고 벌어진 유럽 열강들의 전쟁터 및 영국과 미국 간 독립 전쟁터를 샅샅이 둘러봤다.
이 경로는 미국 독립 이후 본격적으로 착수된 서부 개척 경로이자 미국의 인디언 정복의 경로이다. 미국 정부와 미국인들은 이 경로를 따라 인디언 땅 탈취를 마치게 된 것이다.
1830년 앤드류 잭슨 대통령은 「인디언 제거법」에 서명함으로써 인디언을 고향 땅에서 보호구로 강제로 이전시키는 작업이 본격화되었다. 인디언 전사들은 미군과의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고, 인디언 양민들은 낯선 땅으로 이주하는 도중에 굶주림과 질병으로 사망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보호구역 환경이 너무 열악하여 도저히 살 수 없는 곳이라는 정보를 접한 일부 나바호족이 캐리어 드 셰이로 대피하여 항전에 들어가자 뉴멕시코 사령관 칼턴 장군은 계곡 내 나바호족의 모든 마을을 불태우고 사람은 물론 가축들마저 도살했다. 심지어 나바호족이 재배한 작물을 태워버리고 과실 나무까지 베어버렸다.
인디언 보호구에 방문한 저자는 “보호구역은 대부분 척박하고 황량하기 그지없어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라면서 미국 정부의 횡포에 분노를 자아낸다.
1848년 미국이 멕시코로부터 캘리포니아를 양도받은 이후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발견됨에 따라 서부 이주 행렬이 줄을 잇게 되었다.
서부 개척자들이 인디언들이 차지하고 있던 대평원 지대를 지나게 되자 미국 정부는 1851년 대평원에 사는 부족들과 「래러미」 조약을 맺어 인디언 영토를 인정해 주는 대신 지역 통행의 안정권을 보장받았다.
그러나 수족의 영토였던 블랙힐즈에서 금이 발견되자 미국은 1876년 조약을 무효화하고 수족을 무력으로 쫓아냈다. 수족 연합군은 처음에는 미군 제7 기병대를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두지만 대대적인 보복에 나선 미군의 공격에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미국이 서부를 침탈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인디언과의 전쟁은 공식적으로 1886년 종료되지만 1890년의 운디드니에서 수족 양민을 대상으로 하는 학살 사건이 인디언에 대한 미군의 마지막 공격으로 기록된다. 당시 미군은 4정의 기관총을 동원하여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 발포하는데 여자와 아이들 250명을 포함 350명이 학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은 수족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블랙힐즈 러시모어산에 위대한 대통령 4인의 얼굴을 거대한 암벽에 새겨 넣었다. 이곳에 새겨진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인디언들에 대한 무자비한 제거 작전을 지시했던 인물이어서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수족들은 자신들의 성지에 백인들의 상징 인물이 기념되고 있는 것에 맞서 자신들의 훌륭한 영웅인 크레이지 호스 추장을 암벽에 새기는 프로젝트를 현재 진행하고 있다.
또한 수족은 조약의 불법성 및 효력에 대한 지속적인 법정 투쟁을 벌인 결과 1980년 미국 연방대법원으로부터 미국 정부의 불법 행위에 대한 배상금 판정을 얻어냈지만, 배상금 수령을 거부하고 블랙힐즈 영토를 돌려 달라는 투쟁을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미국 인디언들의 역사는 다른 대륙에서 건너온 힘센 자들에게 영토와 문화를 빼앗긴 약한 자들의 역사였고 패배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한 이후 인디언들에게 정의로운 심판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인디언의 슬픈 역사는 세계 최강국 미국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배후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자는 미국인들에게 가려진 역사에 대한 성찰을 당부한다.
“미국인들 중에도 자신들의 나라가 지금과 같은 강대국으로 발돋움하게 된 이면에는 원주민들에 대한 만행과 약탈이 있음을 인정하고 알리고자 노력하는 많은 이들이 있다. 불편한 진실이라도 있는 그대로를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진정한 위대함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인디언들에 대해 애틋함을 담은 소망을 이렇게 밝힌다.
“인디언 여러 부족은 많은 제약 속에서도 자신들의 문화와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모쪼록 이들의 노력이 결실을 거두어 미국 땅에서 인디언들의 역사가 도전과 성취의 역사로 기억될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책을 읽고 나니 그동안 인디언에 대해서 가졌던 나 자신의 편견과 무지에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에서 인디언을 주로 접했던 나로서는 인디언에 대해 무자비하고 야만적이라는 선입견을 늘 가진 터에 책에서 드러난 백인들의 잔학성에 오히려 치가 떨렸다. 또한 인디언들의 무자비한 폭력성이 신대륙 개척 초창기 유럽인들의 잔인함에 비롯된 것이라는 저자의 견해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몇 년 전에 미국 서부 여행 당시 그랜드 캐니언 인근에서 나바호 인디언 보호구역을 경유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메마르고 황량한 지역에 흙집을 짓고 살면서 생계를 위해 관광객들을 상대로 공예품을 주로 팔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인디언들이 외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자기 영토에 그냥 안주하고 게으르게 사는 것인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나바호 족은 자신들의 풍요로운 고향 땅에서 경작과 목축을 거의 할 수 없는 황폐한 보호구로 쫓겨나 척박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것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아메리칸 인디언의 슬픈 역사를 알리기 위해 미국내 오지 구석구석을 찾아 나선 저자의 열정에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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