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김시천)를 읽고
노자와 장자를 칼과 방패에 비유해 풀어쓴 노장 연구서다.
저자는 색깔과 얼굴이 전혀 상이한 노자와 장자를 동일한 사상처럼 거론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면서 저자에게 노자는 양날의 칼처럼, 장자는 장중한 방패처럼 생각된다고 밝힌다.
저자는 노자의 칼과 장자의 방패를 이렇게 비유한다.
노자는 처음에는 제왕의 칼로 등장했지만, 사대부의 손에 쥐어지기도 하고 유학자가 노자라는 칼을 든 적이 있다는 이유로 이단으로 몰리기도 했다. 장자는 웅장한 대붕의 문장을 새긴 방패로 등장했지만, 세속에서 다치지 않고 살아가는 데 쓰이는 방패로 거듭나게 되었다.
저자는 우리의 삶 자체가 모순이고 노자와 장자는 그런 삶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매개체로 인식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책은 노자와 장자가 나온 이후 초기 역사부터 조선조와 현대 한국 사회에 이르기까지 노장이 어떻게 이해되어 왔고, 어떻게 이해되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를 포함한다.
제1부 노자 편에서 노자의 텍스트 및 저자와 관련된 관련 전통적인 해석과 조선 사회에서 노자가 갖는 사상적 위치와 사대부들의 내면적인 갈등을 다룬다.
노자 해석의 두 가지 전통적인 흐름은 하상공과 왕필의 주석으로 구분된다.
하상공 주석은 훈고의 형식을 띠며, 機론적 세계관에 입각해서 국가-신체의 동일성을 말하는 우주론적 체계를 중심에 두고 있는 황로학(黃老學)을 기반으로 두었다.
왕필의 주석은 훈고학적인 機論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道에 무게 중심을 두고 논리적이고 가치론적인 세계관을 드러내는 현학을 기반으로 삼았다.
저자는 왕필의 주석서와 하상공의 주석서는 별개의 텍스트라면서 그들은 각기 다른 집단 안에서 텍스트를 읽고 쓰고 실천한 만큼 각자가 추구한 의미나 세계는 전혀 별개의 것이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는 노자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聖人·後王· 士·君主라는 정치적인 유력자들이고 이들이 노자의 話者와 聽者임을 분명히 밝힌다.
노자에게는 모든 개인에게 소요되는 삶의 지혜, 혹은 문명과 규범의 역기능에 대한 비판이 담겨있는 것이 아니라 천하의 패권을 다뤘던 聖人‧君主‧士와 같은 통치계급을 위한 내용이 담겨있다.
저자는 조선 시대 율곡 이이의 노자 주석서인 『醇言(순언)』 분석을 통해 강고한 정통과 이단이라는 도식으로 노자를 대하기보다는 유교적 지식인의 감추어진 내면을 하나의 분출구로써 읽었음을 조명한다.
성리학이 지배한 조선 시대에서 노자는 금서로 찍혀왔으나 성리학 대학자인 율곡은 도덕경 주석을 통해 노자 사상의 핵심을 無爲로 보고 無爲는 허무적인 것이 아니라 하지 않음이 없는(無不僞) 의미로 파악해 노자 사상을 배척하지 않고 유교 사상과의 일치점을 찾으려 했다.
이이는 물론 성리학적인 입장에서 노자를 파악하려고 주력했으나 도가 사상과 유교 사상의 일치점을 발견하고 도가 사상의 핵심 부분을 유가 사상에 통합시키려고 했다.
제2부 장자 편에서는 장자에 대한 후대의 평가를 소개하고 현시점에서 장자 사상이 갖는 의미를 풀어쓴다.
최근까지도 중국 내에서 장자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려왔다.
중국 당대의 장자 연구자인 관펑은 중국인의 패배주의와 아큐 정신이 장자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하면서 중국 문화의 위대한 전통 계승을 옹호했던 펑유란 등 문화보수주의자들을 비판했다.
전국 시대의 장자는 이미 완전히 몰락해버린 옛 이데올로기에 대한 향수에 젖은 시대착오적 인물로 현실과 동떨어진 정신적 자유만을 추구했고, 그런 비현실성이 급기야 중국인의 패배주의와 노예근성의 근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반면 리우샤오강은 이러한 해석에 이의를 제기하고 장자에서 정신의 개념을 강조하고 그 의미를 새롭게 해석했다.
그는 장자의 無心과 無情 사상은 극단화된 無爲論의 표현이자 절대적인 安命論의 표현으로서 장자의 정신적 자유는 어떠한 사람에 의해서도 지배되거나 부림 받지 않는 인격의 독립을 추구하는 것으로 아큐와 같은 노예 식의 자유는 결코 아니라고 주장했다.
장자는 宋明 신유학의 발흥 아래 늘 이단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왔으나 최근 들어서는 이단이 아닌 오히려 전통으로 긍정되어 계승되어야 할 사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후대의 이러한 평가 흐름에 따라 장자는 대체로 정치적 담론의 영역에서보다 예술‧신화‧문학에서 또 예술가와 시인에게서 더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저자는 노자와 장자를 道家 사상이라는 철학사의 피상적인 서술은 장자 읽기의 역사를 제대로 살피는 데에 장애가 되고 있다면서 장자가 설파한 精神과 遊의 의미를 강조한다.
저자는 장자의 정신 양생론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사회적 삶이 초래하는 무거운 짐 즉 인간관계에서 오는 파괴적 힘인 스트레스로부터 인간의 삶을 구하려는 외침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자에게 자유는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자유라기보다 지배당하지 않은 삶이라는 의미의 자유를 뜻하고 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야말로 우리가 통상적으로 말하는 절대적 자유, 정신적 초월의 의미라고 생각해야 한다.
저자는 장자의 遊는 다른 차원의 삶으로의 안내이자 다른 차원의 삶의 양식으로 일정하게 떠난 삶, 세속적 삶에서 거리를 둔 삶을 의미. 삶에 매이지 않고 거리를 둠으로써 진정한 자신의 삶을 찾으려는 것으로 의미한다고 강조한다.
장자의 遊는 초월적이거나 종교적 차원이라기보다 어떤 정신적 해방의 의미를 지니며 강고한 위계적 질서의 세계에서 물러난 누리는 삶으로 가는 과정(일상성의 회귀함)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장자의 遊가 예술적 영감이나 활력을 줄 수 있지만, 우리 삶을 변혁하고 삶의 조건을 개선해 삶 자체를 향유하게 하는 힘을 가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한다.
정신적 과정으로서의 노님(心遊)은 삶의 태도를 변화시키지만 변화된 태도는 현실이나 세속을 떠나려는 탈속적 태도도 아니고 현실의 모순을 비판하면서 변화시키려는 변혁적 실천의 태도도 아니고 단지 한 개체가 겪는 갈등과 억압을 승화시킨 태도로 봐야 한다.
따라서 장자가 추구하는 자유를 근대성에 반하거나 근대성을 비판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보다 근대성의 대안으로서 성찰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이다.
그래서 저자는 21세기에는 삶의 기술이라는 차원에서 도가/도교를 道術로 로서 사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장자의 養生과 達生을 道術의 가장 중요한 핵심 개념으로 제시한다.
도가/도교를 보편적 진리 탐구의 정신으로 정의되는 철학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양생과 달생의 차원을 열어나고자 했던 道術의 전통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道術의 전통은 지식 탐구를 이끌어내는 데 그치지 않고 예술, 종교, 문학 등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살아 숨 쉬어 왔으며 道術에 관한 담론의 초점이 이제 道에서 術로 넘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노자와 장자를 둘러싼 해석의 갈등은 모순된 삶의 반영이라면서 그러한 모순 속에서 명석판명한 언어보다 더 분명하게 삶의 진실과 마주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이 주는 위안이라고 자평하고 노장을 새롭게 읽기를 권한다.
철학이나 사상은 삶의 모순 속에서 나름의 길을 추구하는 것이고. 그것이 철학이 주는 위안이자 인문학적 가치라고 부를 수 있다. 노자의 칼과 장자의 방패란 그 자체로는 모순이지만, 도술의 차원에서 그것들을 우리 삶의 유용한 무기가 될 수 있다.
김시천의 책은 독자들에게 역사적으로 노장 해석이 어떻게 변천해왔는지를 설명해주는 한편 노장을 포함한 고전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론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고전의 명시적 언어에 대한 집착을 끊고 그러한 언명들이 전통사회에서 살다간 사람들의 삶과 어떻게 만나고 갈라지고 뒤섞였는지를 살피는 것은 우리의 삶과 만나는 중요한 통로를 찾아가는 작업이 될 것이다.
고전에 대한 기존의 주석에만 집착해서 읽으려 하지 말고 주석 내용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되었는가를 자세히 살피고 지금 시점에서 우리의 삶과 어떤 연관 고리를 맺고 활용될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고전을 읽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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