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희종 칼럼에 반론한다 – 문파들을 위한 변명
문파라 불리는 집단이 있다. 실체적으로 존재하지만, 구체적인 범위나 모습을 지니고 있지 않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문재인 전 대통령을 지지한다. 정치인으로서의 문재인 뿐만 아니라, 인간 그 차제로서의 문재인을 지지하고 그에게 공감한다. 따라서 그가 정치인으로서 공격을 받을 때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수모를 당하고 있다고 느낄 때마다, 문파들은 이를 결코 참아낼 수가 없다. 가장 큰 공통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할 때 마다, 문파들 자신은 상처를 받는다. 당연히 대통령을 사과하도록 만든 장본인에 대해 용서할 수 없는 심정을 공유한다. 문파들은 생각한다. 문파들은 그 장본인과 어떤 경우에도 함께 할 수 없다고.
그러니, 문재인 대통령에게 대국민 사과를 하라는 무례함과, 계파종식에 모두의 힘을 합치도록 메시지를 내 달라는 요구는, 적어도 문파들에게는, 함께 양립할 수 없는 상호 배타적인 명제이다. 문파들이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는 집단과 함께하는 일은, 물과 기름이 골고루 잘 섞이기 전에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칼럼 비판에 앞서, 우희종 교수는 우선 문파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칼럼은 교묘하다. 마치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의 출현이 주로 문재인 대통령 탓인 것처럼 글은 이리저리 비틀려 있다. 글은 A4 넉 장을 채우고 있다. 빙빙 돌려 서술을 하는 데에 대부분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다. 진실과 거리가 먼 글일수록 혀가 긴 법이다.
칼럼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우리 검찰총장’이라면서 감쌌다고 하지만, 정확한 워딩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었다. 2021년 1월 18일 화상 기자회견에서의 발언이다.
당시 대통령은 추미애 전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장기간 대립에 대해 사과하는 입장이었다. 결국 대통령의 발언은 윤총장을 감싼 것이라기 보다는 그에 대해 현실적인 자리매김을 한 것이었다 봐야 할 것이다.
상대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사과는 거짓된 사과다. 칼럼은 이 당연한 사안을 워딩을 왜곡하면서까지 ‘감쌌다’고 표현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총장을 해임하지 않은 것을 문제삼은 것이라면, 이는 매우 당혹스럽다. 실제로 칼럼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정부의 상징적이자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이었기 때문에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치국가의 근간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대통령은 검찰총장을 임명할 수는 있지만, 해임할 수는 없다. 한 번 임명한 검찰총장을 해임하기 위해서는 탄핵 과정을 거쳐야 한다. 탄핵의 요건을 만들기 위해 추미애 법무장관은 윤총장에 대한 징계절차를 진행한 바 있지만, 법원은 징계효력 정지를 결정했다. 결국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해야만 하는 기막힌 상황이 됐다.
대통령이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이고, 그래서 검찰총장을 맘대로 휘두르거나 해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우희종 교수는 처음부터 민주주의를 오해하고 있는 셈이다. 최고 권력자인지의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대통령은 절대적인 권력자의 지위가 아니다.
‘삼권분립’, ‘권력의 분산’, ‘견제’와 같은 용어들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소중한 가치로 인정받는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문 대통령이 윤총장을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으로 인정한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질서를 해치치 않는 범위 내에서 통치행위를 하겠다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우 교수는 지난 정부 실책의 중심에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있다고 했다. 정권을 빼앗긴 일차적 책임을 문재인 대통령에 둔 셈이다. 이 대목에서 문파라면 누구나 할 말을 잃는다.
칼럼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재명’이라는 당시 대선 후보 이름이 단 한번도 거론되지 않고 있다. 후보 자신의 책임론이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적반하장’이라는 사자성어의 적합한 용례를 들라 하면 바로 이런 경우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당시 후보 중, 대선 패배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후보자 자신이 먼저 아닌가? 이 칼럼은 왜 이재명 자신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말까지 지지율 40%를 넘는 우리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이었고, 이에 힘입어 당시 민주당은 180석이라는 절대적 의석을 확보했다. 결정적인 결함이 있는 후보가 아니었다면 민주당은 질 수가 없는 선거였다.
사실 윤석열 후보는 정치인으로는 급이 안되는 후보였다. 그런 후보에게 이재명 후보는 패했다. 그나마 박빙으로 패한 것은, 체급 낮은 상대후보,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의 덕분이었다는 것 외에 달리 분석할 방법은 없다.
대통령이 윤석열 후보를 키워주기라도 했다는 얘기인가? 아니면 선거에 개입해서 이재명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지라도 해야 했다는 뜻인가? 도대체 아무 맥락없는 전임 대통령 책임론이 왜 등장하는지, 문파들은 종잡을 수 없다.
칼럼에서 문대통령에 대한 비하는 계속된다. ‘무력하게 정권을 넘겨준 전임 대통령이 한가한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거나, ’무책임과 무능, 위선을 상기시켜 준다‘는 등의 거침없는 표현이 등장한다.
한가한 것은 민주당이 아닌가? 민주당이야말로 당대표의 사법리스크라는 올가미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헤어날 생각조차도 없는 무력한 존재가 아닌가? 윤석열 정부가 외교를 말아먹고, 일본의 오염수 방류를 방조하고, 심지어 국민들이 여기저기서 죽어 나가는 것을 보고만 있어도, 오직 당대표의 방탄이라는 덫에 걸려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고 있는 민주당이야말로, 무책임과 무능, 위선적 행태의 극단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
칼럼은 진보진영이 합법을 가장한 검찰의 노골적 탄압에 직면해 있다고 썼다. 하지만 당대표에 대해 하루가 멀다 쏟아져 나오는 소식들을 접하는 문파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탄압이었는지 아닌지의 여부는 향후 재판이 판가름해줄 것이다. 민주당이나 당 대표 지지자들이 사법부의 권한을 넘어 스스로 판단할 일이 아니다.
일반인과는 달리 정치인들에게 유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하는 이유는 간명하다. 무죄추정 기간 동안의 정치행위로 인한 공익적 손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일찍이 기소된 당대표에게 권한을 정지시켰던 민주당의 당규는 이 점을 중요시했다. 무죄를 확인하기 전에는 당대표라는 정치행위를 맡길 수 없다는 공익적 차원의 당규였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에게는 모든 것이 예외였다. 당규를 뜯어고치면서까지 대표직을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는 구속이 되더라도 옥중공천을 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까지도 나돌고 있다. 민주당은 이제 공당인지 사당인지 구분이 어려운 지경에 이르고 있다.
지금 민주당에 중요한 것은 단합의 구호가 아니라, 책임질 사람이 책임을 지는 모습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재명 당대표가 있다. 대선에 패배한 책임, 180석의 의석을 갖고 있으면서도 국힘당의 정치적 무능을 질타하지 못하는 현재의 모습, 도덕성에 대한 의혹, 다음 선거에 닥친 민주당의 위기감, 그 어느 것 하나 이재명 당대표와 연관되지 않은 것이 없다.
당대표가 내려와야 한다. 그리고 그의 주변에 대한 인적쇄신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민주당이 산다. 우교수가 말하는 사즉생의 자세를 가장 먼저 보여야 할 사람은 이재명 당대표와 그를 둘러싼 정치적 이해관계의 집단이다. 단합은 그 다음에 얘기해도 늦지 않다.
정권교체와 관련하여,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할 이유는 없다. 이것이 문파들의 확고부동한 생각이다. 대통령이 사과해야 할 이유도 없거니와, 사과를 종용하는 그 어느 집단과도 문파들은 함께 할 생각이 없다. 그들은 문파들과 대척점에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우희종 교수의 칼럼에 대한 반론은 여기까지다. 교수가 주장하는 바대로 설령 문대통령이 문파와 개딸, 그리고 동교동계가 힘을 합치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하더라도, 문파들은 그럴 생각이 없다. 그러니 이제는 꿈을 깨시라.
P.S.
내친김에 한가지만 바로 잡고 가자.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 우 교수는 마치 전임 대통령인 김대중 대통령이 민주 당내의 기득권들과 함께 일종의 갑질을 한 것처럼 교묘하게 문장을 엮고 있다. 당내 기득권들의 갑질에 있었음에 동의한다. 하지만 거기에 왜 전임대통령이 끼어들어가는지 이해할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김대중 대통령의 갑질 사례를 내 놓아 보기 바란다. 내 기억이 잘못된 것인지, 우교수가 교묘한 글질을 한 것인지, 그 점이 무척이나 궁금하다.
조광태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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