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CC 출구전략과 고단한 일본(상)
지난해 연말 일본은행 측의 갑작스런 10년물 국채금리 변동허용 폭 확대 발표에 일본 매체들은 일제히 ‘서프라이즈’라는 표현을 써가면서 놀라움을 표시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놀란 척을 했다.
일본은행의 구로다 하루히코(黒田東彦) 총재의 임기가 4월8일까지로 예정돼 있어 후임총재가 어차피 YCC(Yield Curve Control)를 완화할 것이라는 관측들이 많았다. 완화를 넘어 폐지수순을 밟게 될지 모른다는 견해들도 상당했다. ‘서프라이즈’라는 표현을 쓸 일이 아니었다.
일본 언론들은 시장에 어떠한 사전적 시그널도 주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면서 구로다 총재를 몰아세우고 있지만 구로다 총재로서도 할 말은 있다.
예상된 금리인상은 실현된 금리인상보다 시장에 더 나쁜 영향을 미친다. 채권가격 하락이 뻔히 예견되는 상황에서 이를 내다팔지 않을 투자자는 없다. 온갖 루머와 예단들이 난무하면서 자칫 시장에 채권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올 수도 있다. 0.25%포인트 인상으로 감당이 안 되는 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까지는 일본은행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한다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한 번 무너진 둑은 다시 무너질 개연성이 있다. 일본정부가 YCC 출구전략을 세우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들이 벌써부터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진짜 문제는 일본정부가 YCC를 유지하든, 출구전략을 구사하든, 어느 쪽도 일본경제의 앞날이 순탄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YCC를 현 수준에서 유지하자면 미국과의 금리차를 견뎌야만 한다. 현재 미국 10년 만기 채권의 시장금리는 3.5%를 웃도는 수준이다. 이번에 올라간 상한폭을 감안해도 일본의 그것과는 여전히 3%포인트 이상 차이가 난다. 0.25%포인트 올린 것만으로 엔저와 물가상승률의 억제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지난 12일 발표된 미국의 12월 소비자 물가지수(CPI)는 6.5%다. 최고치였던 6월치 지수 9.1%보다 2.6%포인트 크게 떨어진 수치다. 이 점만 놓고 보면 조만간 미국의 금리상승세는 한풀 꺾일 것이라는 전망도 가능하다.
하지만 같은 달 미국의 실업률은 3.5%로 최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실업률을 경기과열의 주요 지표로 판단하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쉽게 금리를 낮춰 줄지는 미지수다. 약간의 추가적 금리상승 견해가 대세이고 최소한 현재 고금리를 당분간 유지해 나갈 것이라는 전망들이 많다.
미국의 조속한 금리인하는 일본에게 그저 희망고문일 가능성이 높다. 일본 국민들이 느끼는 인플레이션 공포감이 점차 커지고 있어 현 수준에서의 YCC 유지 가능성에는 의구심이 들 수 밖에 없다.
YCC 출구전략은 한층 더 많은 난제들을 갖고 있다. 적당한 선에서 엔화강세가 이루어지고 수입물가가 낮아지는 것이 정책 지향점이겠지만 반대급부의 부작용이 더 클 공산이 높다.
금리인상이 예견되는 순간부터 국채가격의 하락은 피하기 어렵다. 그러지 않아도 일본 투자자들은 일찌감치 자신들의 보유채권을 일본은행에 떠맡겨왔다. 일본은행의 국채보유율은 지난해 9월을 기점으로 50%를 넘긴 상태다. 10년 전인 2013년 3월말 13.12%였던 것을 감안하면 지나치게 높은 수치다.
YCC 출구전략이 방향을 잘못 틀게 될 경우, 극단적으로는 일본은행만이 정부채권을 매입하게 될 것이라는 견해까지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의 재정 파이낸스가, 형식적으로나마 법망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졌다면, 이후로는 앞뒤를 가리지 않고 이루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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