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의전원 불합격이라고? 트루먼 쇼는 이제 그만
[사설] 의전원 불합격이라고? 트루먼 쇼는 이제 그만
영화 ‘트루먼 쇼’는 자신의 사생활을 완벽하게 침탈당한 한 개인의 자아 탈출기이다. 시청자들에게 주는 그의 간단한 마지막 인사는 감동적이지만, 이 영화의 메시지는 어디까지나 반쪽짜리일 뿐이다. ‘트루먼 쇼’의 제작에 참여했던 배우들, 쇼를 즐겼던 시청자들에 관한 메시지는 부실하기 이를데 없다.
생각해보면 ‘트루먼 쇼’는 범죄행위이고 배우들과 시청자들은 공범이다. 배우들이 적극적 공범이라면 시청자들은 소극적 공범이라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영화는 이 쇼가 얼마나 위험한 범죄행위이며 쇼를 즐기는 행위가 얼마만한 가담행위인지에 대한 메시지가 없다. 이 점에서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절반 뿐이다.
한 개인의 인턴과정 지원여부를 알아내고 이를 타인에 전하는 것은 엄연한 사생활 침해다. 그것도 아주 심각한 침해다. 더하여 이같은 지원과정이 ‘잘 계산된 것’이라는 취지의 글을 공표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은 사실을 근거로 한 중대한 인권침해다. 불합격 사실을 보도하는 행위는 인격적 살인에 가깝다. 여기에 댓글을 달고 한 개인을 비난하는 행위는 단순히 쇼를 즐기는 행위를 넘어선 적극적 가담행위와 다를 바 없다.
생각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누군가가 어느 회사에 입사를 희망했고,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이같은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지원 자체가 ‘잘 계산된 것’이라는 매체의 평가가 나왔고, 결국 입사하지 못했다. 온갖 매체들이 입사하지 못한 사실을 다시 보도했고, 여기에는 끔찍한 악풀들이 줄줄이 달렸다. 그런데 그 당사자가 하필 내 아이였다.
의전원에 지원한 당사자는 공인이 아니었다. 트루먼 쇼의 주인공만큼이나 평범한 일상인이었고, 그것도 힘이 미약한 일상인이었다. 한때는 공인이었으나 지금은 물러나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고 있는 아버지, 실형을 몸으로 감당하고 있는 어머니, 그러니 본인은 어쩌면 피폐해질만큼 피폐해진 가족의 한 구성원일 뿐이었다. 그의 사생활에 대해 쇼의 시청자들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할 권리따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트루먼 쇼는 여전히 진행중이고,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트루먼 쇼’의 기획자가 영화의 마지막까지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던 것처럼, 현실의 트루먼 쇼를 기획하고 방영하는 다수의 기획자들 역시 어떠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조짐은 없다. 한 개인의 사생활이 어찌 되었건, 그리 인해 그의 자아가 어떠한 상처를 받게 되건, 모두 관심 밖의 일이 되고 있다.
이 미친 쇼의 진행을 멈춰야 한다. 그리고 어차피 쇼가 진행된 마당에, 영화 ‘트루먼 쇼’가 전달하지 못했던 메시지의 남은 절반을 사회 구성원 스스로가 서로에게 전달해야 한다. 본인이 원치 않는 쇼를 제작하고 방영하는 행위는, 사회적으로 비난받아야 할 행위이자 법률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행위이며, 쇼를 즐기는 시청자들 또한 행위의 가담자라는 메시지를 우리 스스로에게 전해야 한다.
물론 지금 당장 이를 비켜간다 하더라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는 이 메시지가 부끄러운 자화상처럼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한 때 전두환을 찬양했던 언론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전두환을 비판하고, 광주 민주화 항쟁을 폭도들의 반란 쯤으로 보도했던 언론들이 사라진 것은 그 좋은 사례이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과거의 잘못에 사죄하는 언론의 모습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쳇바퀴에 말려들어가지 않는 것은 성숙한 시민들 스스로의 몫임을 자각해야 한다. 트루먼 쇼의 가담행위에서 벗어나 쇼의 기획자들을 질타하고 이를 저지하고자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시대 시민들의 주요한 덕목이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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