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이라고? 당신이 어쩌다가 일베용어를 공개적으로 사용했다면?
SNS상에서 매일처럼 생겨나는 신조어들은 다 따라잡기 어렵다. 기술, 과학 분야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 사회적인 분야에서도 수많은 신조어들이 생겨나고 또 사라지기도 한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이미 폈다가 진 용어들도 있을 것이다.
기술, 과학분야의 신조어들은 오용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 적어도 그 분야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모르는 신조어를 사용하게 될 경우란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나 사회 분야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 분야의 신조어는 새로 만들어졌다기 보다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단어들을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이다. 매우 평범하고 일상적인 용어 하나가 이미 특정 영역에서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무심결에 SNS 상에서 이런 용어를 사용하게 될 수도 있다. 혹은 반대로 특정 의미를 지닌 용어를 고의로 사용하고 짐짓 모른체 할 수도 있다. 고의였던 아니든 당신이 SNS상에서 특정 의미를 지닌 인터넷상의 용어를 공개적으로 사용했다. 그것도 매우 좋지 않거나, 혹은 반사회적인 의미의 용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논란이 일었다. 만약 당신이라면 이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아주경제의 장용진 기자는 이달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신정현 경기도의원의 이재명 ‘기본시리즈’ 비판 기사와 관련, “아직 겨울인데 수박이 나왔네... 아직 덜 익었겠지만”이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인터넷상에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장용진기자의 페북 글, 그는 신정현 경기도 의원을 비판하면서 "아직 겨울인데 수박이 나왔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사진=장용진 기자 페이스북 캡처]
그러자 SNS 누리꾼들 사이에서 반발이 일었다. ‘수박’이라는 용어의 사용 때문. 이 용어는 일베 사용자들이 광주 사람들을 비하하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용어인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민주당 권리당원 게시판에는 한 당원이 “수박이라는 용어는 광주특산품이 무등산 수박임을 빗대어 일베 회원들이 지난 1980년 광주 민주화 항쟁 당시 진압군에 의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머리를 다친 사람들을 일컫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즉 이 용어는 이른바 일베용어로서 분류되는 지역혐오적 용어라는 것이다.
장용진 기자의 페이스북상의 글에 대해 한 인테넷 사용자는 댓글에서 “(신정현 의원이 경기도 정책을) 비판하면 혐오스런 말도 들어야 하냐”면서 당장 반발했다. 또 다른 사용자 역시 “무턱대고 덜 익은 수박이라며 인신공격부터 하는게 과연 기자다운 일이냐”면서 게시글에 반대의사를 밝혔다.
트윗은 한층 더 뜨거웠다. 평소 진보적 스탠스를 취해왔던 기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데 많은 사용자들이 충격을 받은 듯 했다. 장용진 기자를 비판하는 트윗들은 대개 “장용진 기자가 수박의 의미를 모르고 썼을 리 없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한 트윗 사용자(아이디, than*****_)는 “일반인들은 수박이라는 단어는 수박으로밖에 모르는데.. 장용진 기자는 어떤 의미로 쓴 것이냐”면서 장용진 기자의 용어사용에 대한 의도성을 의심했다. 또 다른 사용자(아이디, san*****)는 “신정현 경기도 의원의 이재명 비판 질의 사진을 보면서 ‘수박’이 나왔다 라는 표현이 적당하냐?”면서 ‘수박’이라는 용어가 문자 그대로의 과일로 볼 수 없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자신을 부산사람이라고 밝힌 한 사용자(아이디 DuR****) 는 장용진 기자의 글에 대해 “지역주의 본색”이라는 의심을 표명하기도 했다.
장용진 기자의 '수박'발언과 관련, SNS상 사용자들의 반발이 일자 장용진 기자는 "수박이 일베면 멜론은 나치냐?"라는 내용의 페북글을 다시 게시했다.[사진=장용진 기자 페이스북 캡처]
한 기자의 페이스북 글 여파가 이처럼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는 데에는 평소 장용진 기자의 정치적 스탠스와 무관하지 않다. 장용진 기자는 그동안 검찰개혁에 대해 지지하는 등 진보적인 경향을 보여왔다.
한 때 그는 SNS 상에 “대구 코로나19 환자들을 수용해 치료하겠다고 손을 내민 광주시민들의 모습을 우리 경상도도 보여줄 수 있었으면 한다, 아니 돕지는 못할 망정 아무 이유없이 혐오와 증오로 가득한 말들을 쏟아내는 일들은 사라졌으면 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의 ‘수박’ 발언은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한층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이 때문에 논란도 더 커지는 것으로 판단된다.
논란이 커지자 장용진 기자는 19일 역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수박이 일베면 멜론은 나치냐?”면서 반발했다. 즉 자신은 일베 회원들이 사용하는 ‘수박’의 의미로 이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은 논란을 한층 더 키우고 있다. 한 트윗 사용자(트윗 아이디 jinm****)는 “도정질의 한 의원을 호남 비하 일베 멸칭인 ‘수박’으로 공격해놓고 비판한 사람들을 또 조롱했다”면서 장용진 기자의 글에 반감을 드러냈다. 또 다른 사용자(아이디 C9d***) 역시 “모르고 썼으면 사과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면서 장용진 기자의 해명을 비판했다.
결국 이 논쟁은 ‘장용진 기자가 ’수박‘의 의미를 알고 쓴 것인지 아닌지’로 귀결하고 있는 셈이다. 장용진 기자는 자신이 ‘수박’을 과일의 의미로만 사용했다는 설명이고 이에 반발하는 SNS 사용자들은 그 의미를 모르고 사용했을리 없다는 주장이다.
사실 장용진 기자가 어떤 의미로 이 용어를 사용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본인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용어의 사용이 이미 논란이 되고 있는 마당에 한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은 생긴다.
장용진 기자의 용어 사용이 의도적이든 아니든, 이 용어의 등장 자체는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다는 것, 그리고 이로 인해 누군가의 상처를 또 다시 헤집게 됐다는 것이다. ‘수박’이라는 용어가 이미 반사회적인 의미를 지니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고, 그것이 1980년 광주 민주화 항쟁 과정에서 상처를 입었던 많은 광주시민들의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용어라는 것이다.
일베 회원들이 광주 시민들을 비하하기 위해 '수박'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사례들[사진=트윗캡처]
기자는 독자들에게 한가지 가정을 해보기로 했다. 새로운 신조어가 매일같이 쏟아지고, 모르는 용어의 의미가 계속해서 생겨나는 요즘, 당신이 정말로 숨겨진 의미를 모르는 상태에서 ‘수박’이라는 용어를 썼다 치다. 논란이 생겼고, SNS 사용자들이 당신에게 ‘일베’라고 몰아붙였다. 당신이라면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자신이 억울하게 일베로 내몰렸음을 호소하고, ‘수박’ 용어의 사용이 왜 일베냐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장용진 기자가 취한 방법이다. 그는 “수박이 일베면 멜론은 나치냐?”고 반문했다.
혹은 자신이 의도치 않게 사용한 ‘수박’이라는 용어가 특정인을 비하하기 위해 사용됐던 것임을 몰랐다고 밝히고 앞으로 이 용어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언급할 수도 있다. 이는 SNS 상의 한 사용자(아이디 OSR***)가 “(지금이라도) 일베어인 것을 알았으면 신정현 의원에게 사과하고 앞으로 안쓰겠다 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주장한 내용이다.
거듭 말하지만, 장용진 기자의 ‘수박’ 용어 사용이 어떤 의도로 사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모든 주장은 심증일 뿐이다. 하지만 해명을 듣고 무엇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전적으로 듣는 사람의 몫이다. 주장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의 몫까지 빼앗아갈 수는 없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설명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기자의 궁금증은 여기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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