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당신'이라는 말과 류호정 의원
당신이라는 단어는 사용법이 익숙치 않은 단어다. 중학교나 고등학교 시절 그 사용법을 제대로 배우지 않았다면 자칫 그 용례를 모른 채 나이를 들 수도 있는 그런 단어다.
갑자기 고등학교 시절, 그 단어의 사용법을 배웠던 국어시간이 생각났다. 국어 선생님은 키가 크고 잘생긴, 공수부대 출신의 선생님이었고, 우리로서는 같은 고등학교 선배이기도 했는데 당신이라는 단어가,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제 3자를 높여 부르는 말이라고 설명하시면서 “평소 아버지 당신께서는 근검을 강조하셨다”라는 예문을 들어주셨던 기억이 난다.
얼마쯤 후에 집에서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에 관한 말씀을 하시면서 “아버지 당신께서는” 이라는 표현을 쓰시는 것을 들었다. 국어 선생님이 쓰신 표현과 너무 똑같아서 신기하기도 했고 뭔가 새로운 단어를 익힌 것 같아 재밌기도 했다. 이 단어의 사용법이 나름 익숙해진 것은 이때부터다.
사실 류호정 의원이 ‘당신’이라는 표현을 오해한 것은 꼭 이해를 못할 바는 아니다. 국어선생님이 ‘당신’이라는 단어를 가르치시고 나중에 그 사용법을 학교시험에 출제했을 때, 이를 틀리는 학생들도 꽤 있었다. 당장 배운 학생들도 그럴진대, 이 단어에 대해 배우지 않았거나, 배웠어도 잊었다면, 이를 잘못 알고 있는 것 자체가 크게 잘못이랄 수는 없다.
류호정 의원은 자신과 상관없는 더불어민주당 문정복 의원과 정의당 배진교 원내대표의 대화 사이에 끼어들어 큰 소리를 냈다. ‘당신’이라는 단어의 뜻이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된다. 여기까지도 억지로 이해를 하자면 굳이 못할 것은 없다. 끼어들 상황과 그래서는 안되는 상황을 구분하지 못하고 돌발 사태를 일으킨 것은 젊은이의 치기 정도로 이해해줄 수도 있다. 몰이해와 한 순간의 치기, 국회의원으로서는 문제지만, 젊은이로서는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우리 사회에 이 정도의 관대함은 있다.
문제는 그 다음, 즉 뒷처리에 있다. 류호정 의원은 지난 14일 자신의 트윗을 통해 “당신이라는 단어는 ‘무의미’”하며 “문의원의 ‘당신’이 누구인지는 알 길이 없다”는 글을 올렸다. 이 대목에서 국회의원이기 이전에 일개 젊은이로서의 실수로 당시 상황을 치부하기는 어렵다.
류호정 의원이 트윗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힌 내용, 당신이란 단어는 '무의미'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한겨레>가 14일 문정복 의원과 정의당 관계자들을 통해 확인한 사실을 종합하면 문정복 의원은 “그건 당신이 국정운영에 부담이 될 것 같으니까”라고 표현했다. 표현 그대로라면 여기서 사용한 ‘당신’이라는 용어는 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를 지칭한 것이 맞고, 이것이 맞다면 ‘당신’이라는 단어가 이 상황을 해결하는데 결코 ‘무의미’해질 수는 없다.
보통의 젊은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수습했을까? 아마 자신이 ‘당신의 뜻을 잘 몰랐다’거나 혹은 ‘문정복 의원을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해 배진교 원내대표를 지칭하는 것으로 오해했다’거나 하는 정도의 사과를 먼저 했을 것이다. 문정복 의원이 큰 소리를 낸 것에 대해 따지는 것은 그 다음 문제다. 먼저 잘못한 사람이 먼저 사과하는 일은 초등학생들도 할 줄 안다.
최근 인터넷에 떠도는 한 대학생과 교수의 얘기가 있다. 학생은 금일이라는 단어가 금요일로 사용되는 줄 알았던 것 같다. 금일까지 과제를 제출하라는 교수의 얘기를 금요일까지로 잘못 이해했다. 대학생의 어휘 실력으로는 참담하지만 여기까지는 그래도 그럴 수 있다. 그런데 학생은 ‘금일’이라는 단어가 ‘금요일’의 뜻으로 오해될 여지가 있다면서 ‘금일’이라는 말을 쓴 교수를 질타했다.
금일을 금요일로 잘못 이해하고 있는 어느 대학생과 교수의 카톡 내용. 학생은 교수가 금일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학생들이 잘못 이해할 수 있는 여지를 준 것이라 주장했다.
류효정 의원과 대학생의 사건은 마치 두개로 된 하나의 쌍둥이 사건을 보는 듯하다. 애당초 일이 잘못된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 살펴보기보다는, 자신의 무지와 잘못은 당연히 이해받아야 하고, 잘못의 원인은 상대방에게만 존재한다는 식의 생각은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이해가 쉽지 않다.
그나마 대학생은 일개 개인이다. 반면 류효정 의원은 공인이다. 그것도 국민을 대표하는 헌법 기관으로서의 공인이다. 우리말의 정확한 뜻을 모르고, 타인의 대화에 큰 소리로 끼어들고, 거기까지를 인간적인 실수로 이해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제대로 된 사과를 할 줄 모르는 공인기관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안타깝기만 하다.
경계해야 할 일은 있다. ‘금일’의 의미를 몰랐던 대학생이나 ‘당신’의 의미를 몰랐던 류호정 의원이나, 그리고 무엇이 잘못된 일인지 이해조차 못하고 있는 이들 둘 다 20-30 세대의 대명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SNS상에서 이들을 20-30 세대의 일반적인 모습으로 일반화하는 경우들을 볼 수 있다. 잘못된 일이다. 그냥 그 대학생이, 그리고 류호정 의원 한 개인이 잘못한 일일 뿐이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그 정도로 엉망이지는 않다.
지금이라도 잘못을 바로잡는 방법은 있다. 그것은 류호정 의원과 정의당의 제대로 된 사과다. 쉽지는 않겠지만, 그것이 류효정 개인과 정의당 전체를 잘 유지시켜 나가는 방법일 것이다. 그럴만한 최소한의 용기가 있을지 두고 봐야 알 일이다.
도대체 비례대표제라는 것이 필요하기는 한 것일까? 류호정 의원의 모습을 지켜보는 몇몇 인터넷 사용자들이 자신의 SNS 공간상에 던지는 질문이다. 이번 사건 하나만으로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지나치게 비약하는 감이 있다. 하지만 사건 수습의 뒷모습을 보면서 비례대표 후보 선정이 어떠한 엄격한 과정을 거쳐 국민들의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이는 정의당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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