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의 단계적 퇴출이라고? 정말? (상)
원전의 단계적 퇴출, 완전한 퇴출, 일견 불가능해 보이는 이 얘기가 거론됐던 것은 비단 우리나라에서 뿐만은 아니었다.
지난 해 12월, 벨기에 연합내각은 오는 2025년 말까지 자국의 원자력발전을 단계적으로 완전 퇴출시키겠다는 야무진 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법안 통과 시점에서 불과 4년만에 전대미문의 초고속 대업을 이루겠다는 이 법안은, 그래서 유럽매체들의 끊이지 않는 입방아거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정말 그럴 수 있어?”
이 법안의 실현가능성에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매체들의 생각은 단순했다. 원전을 통한 벨기에의 전기생산량은 자국 전체 전기생산량의 절반가량. 이걸 모두 지워버리겠다고? 합리적인 의혹이 성립하는 것이 오히려 당연했다.
지난 9월 23일 벨기에가 실제로 자국의 도엘-3(Doel-3) 원전에서 그리드를 분리시키는 작업에 돌입하면서, 법안의 통과가 실없는 농담이 아니었음을 보여줬다.
도엘-3 원전의 전기생산량은 1006MWe(메가와트 일렉트릭)으로 벨기에 전체 원전생산량의 절반가량에 달한다. 결과적으로 벨기에 전체 전기생산량의 4분의 1 정도를 담당해왔다. 부족한 전기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프랑스는 주요 공급국가이다.
벨기에의 전기생산에서 도엘-3이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 때, 가동중단은 나름 중대한 결심의 발로일 수 밖에 없다. 2026년 발전소의 실제 해체작업에 이르기까지 소상한 일정표가 이미 공개된 상태다.
조만간 반응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개방될 것이고, 157개의 연료 어셈블리들이 분리되어 냉각풀로 옮겨질 것이다. 2023년 이들이 충분이 냉각되고 나면 특별저장소와 운송 컨테이너에 담기기 시작할 것이지만, 냉각풀이 모두 비워지기까지는 4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발전소의 방사능이 99% 이상 제거되는 시기는 2026년에야 가능할 것이고, 이 때부터 발전소 해체 작업에 들어간다는 것. 지루하기는 하지만 확고부동한 일정표가 주어진 셈이다.
벨기에 연합정부는 한 발 더 나아가 내년에는 티앙주(Tihange)-2의 가동을 중단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고 나머지 도엘-1, 도엘-3, 도엘-4, 그리고 티앙주-3의 가동을 2025년까지 순차적으로 가동중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혀둔 상태다. 이로써 벨기에의 원전퇴출은 달성될 것이고, 원전 완전퇴출 국가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얻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아름다운 이야기 이면에는 뒷담이 있기 마련. 벨기에의 원전퇴출 계획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3월 벨기에 정부는 프랑스 에너지 기업 앙쥐(Engie)의 벨기에 자회사인 일렉트라벨(Electrabel)과 협의에 들어갔는데, 놀랍게도 그 내용은 도엘-4와 티앙주-3의 가동을 연장하는 것에 관한 것이었다. 원전을 통한 발전능력을 2GWe(기가와트 일렉트릭) 정도까지 유지시키자는 것이 그 골자였다.
구체적으로 지난 7월 벨기에 정부와 일렉트라벨은 이들 두 발전소의 가동을 10년 더 연장시키기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협상진행을 위한 비 구속적 상호 의향서에 서명을 마친 상태다. 이쯤 되면, 벨기에의 원전퇴출 법안은 혹여 농담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겨날 수 밖에 없다.
의심이 의심을 낳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도엘-3의 폐쇄는 정말 원전퇴출을 위한 확고한 결심의 첫단추였을까?
이 원전이 1982년산이었다는 것을 아는 순간, 원전퇴출 법안의 순수성에 대한 의구심은 커진다. 늙을 대로 늙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나이의 40살 원전은 퇴출이 아닌 자연사의 길을 걸었던 것은 아닐까?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폐쇄당시 이 원전의 전기생산량은 당초 생산능력의 60% 정도였던 것. 또다시 의심은 합리적 추론으로 진화한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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