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미얀마의 3월과 광주의 5월
40여년전의 5월은 요즘 5월처럼 무덥지 않았다. 확연한 봄이 있었던 계절, 5월은 봄과 여름이 교차하는 달이었고, 봄이라고 하기에는 살짝 더운, 하지만 여름이랄 수는 없었던 그런 계절이었다.
날씨 화창했던 어느 해 5월, 아침 일찍 여자친구와 함께 사당에서 시내 버스를 타고 과천 놀이공원엘 갔다. 느릿 느릿 기어가는 버스길 어디 쯤이었는지, 진달래가 사태를 이루며 눈에 보였다. 그랬다. 드문 드문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연붉은 색으로 어느 작은 산의 한쪽 낮은 벽을 온통 뒤덮으며 흐드러졌다. 그렇구나, 꽃이 사태를 이룬다는 것이 이런 것이었구나.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었다. 아름다움보다 더 큰 아픔이 왔다. 대학 시절 늘상 술집에만 가면 부르던 노래를 몸으로 체험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는 아무 생각없이 불렀던 노래인데, 이날 가슴 가슴 저미었던 기억이 무슨 까닭인지 아직 생생하다.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히 멧등마다
그 날 스러져 간
젊음 같은 꽃사태가
맺혔던 한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
지친 가슴 위엔
하늘이 무거운데
연연히 꿈도 설워라
물이 드는 이 산하
5월의 진달래가 송이 송이 아무리 예쁘고, 그들의 무리가 여하한 장관을 이룬다 하더라도 우리 세대에게 5월은 마음껏 즐기기만 할 수는 없는 달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 한 세대의 젊은이들은 5월이 되면 마음 한 구석에 집을 지어버린 채무의식과 싸워야만 했다. 광주의 아픔을 함께 하지 못했고, 함께 할 수도 없다는 채무의식, 그것은 벗을래야 벗을 수 없는 우리 세대의 숙명이자 짐이었다.
해를 거듭하면서 부채의식은 점점 무디어져 갔다. 5월이 무더운 여름으로 변한 탓만은 아니었다. 40여년의 세월은 한 때는 예민했던 감수성이라도 서서히 닳아 결국 무딘 감각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길이가 되었던 탓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긴 세월이라 하더라도, 결코 무딘 감각으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쯤은 알고 있다. 영문도 모른 채 엄마와 아빠를 잃은 코흘리개 아이는 이제 50 안팎의 나이가 되었을 것이고, 자식을 잃고 함께 따라 죽지 못했던 부모들은 끊어지지 않는 모진 목숨을 한탄하며 하루 하루를 이어가고 있을 것이다. 80년 5월의 광주는 아직 진행형이다.
무딜 만큼 무뎌진 가슴을 한순간에 돌려 깨운 것은 영정을 안고 오열하는 미얀마 유족의 사진 한 장이었다. 역사가 이런 식으로 반복하는 것이라면 그 반복은 잔인하기 그지 없다. 1980년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광주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었다. 40년이 넘어 지난 지금에도 내가 미얀마를 위해 실질적으로 해 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미얀마의 3월이 우리를 한층 더 아프게 만드는 것은 80년 5월 광주와의 닮음꼴 때문이다. 역사는 ‘항거하라’는 사명만을 던져 주었을 뿐, 아무런 말이 없다. 죽음은 시대를 사는 사람의 자기 선택적인 과제가 되어 있다. 그럼에도 항거하는 사람들, 죽음을 수용하는 사람들, 민주주의는 이렇게 또 다시 피를 먹으면서 이제 막 미얀마에서 뿌리를 내리려 하고 있다.
광주의 8월이 아직도 진행형이듯이, 미얀마의 3월 역시 오랜 기간 진행형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처단되어야 할 자는 여전히 평온한 삶을 누릴지도 모르고, 아픈 자의 멍든 가슴은 아주 작은 사과의 말조차 듣지 못한 해, 그 분노를 계속 삭여야 할지도 모른다. 광주의 운명이 그러했듯이 미얀마의 운명 또한 멀고 먼 험로를 예고하고 있을 수도 있다.
미얀마의 3월이 그냥 미얀마의 3월로 끝을 맺을지, 혹은 미얀마의 봄으로 결실을 맺게 될지 지금 당장 알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앞으로의 미얀마는 3월 이전의 미얀마와 결코 같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어렵고 무거운 발걸음이지만, 일단 한 걸음만 내딛으면 그 발걸음은 지금까지의 그것과 완연히 다른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평행이론처럼 반복되는 미얀마의 3월을 바라보다 갑자기 광주의 5월로 되돌아오게 된 지금, 미얀마 국민들이 자신들에 주어진 역사적 과제를 잘 마칠 수 있도록 바래본다. 다시 40년이 지나는 동안에도 미얀마에 완전한 봄이 오지 않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믿음은 자연의 계절 뿐 아니라 역사의 계절 또한 뒤로 돌아가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완전한 봄을 향해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은 이제 미얀마 국민들의 숙명적인 과제이다. 동시에 아직 완전한 봄을 살지 못하는 우리 자신의 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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