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문서로 밝혀진 닉슨 대통령의 칠레 군사쿠데타 모의 가담
1970년 9월 4일, 칠레에서 대통령을 선출하는 국민투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인민연합의 아옌데(Allende) 후보가 한 때 칠레 대통령이기도 했던 국민당의 호르헤 알레산드리(Jorge Alessandri) 후보를 근소한 표 차로 이기면서 최다득표를 차지합니다.
하지만 최다득표를 했다고 해서 바로 당선이 확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칠레의 대통령 선거 제도는 투표 결과 과반수 득표자가 없을 경우 1위 후보와 2위 후보 중 국회가 당선인을 선택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즉 국회의 선택과 승인 절차를 거치게 되는거죠.
법률은 그렇지만, 칠레 국회는 관례상 1위 후보를 예외없이 대통령으로 승인해 왔습니다. 그러니까 아옌데 후보의 대통령 당선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같은 해 10월 24일, 칠레 국회는 아옌데 후보를 대통령으로 승인할 예정이었습니다.
선거가 있은지 열 하루만인 9월 15일, 미국 백악관 집무실에 뭔가 석연치않은 비밀회의가 열립니다. 그리고 닉슨 대통령과 칠레 보수매체로 유명한 엘 메르쿠리오 미디어 그룹(El Mercurio Media Group)의 소유주 아구스틴 에드워즈(Agustin Edwards)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오갑니다.
놀랍게도 이 회의는 칠레에서 군부쿠데타를 기획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쿠데타를 통해 아옌데 당선예정자의 취임을 막고자 하는 것이었죠. 아옌데 후보의 인민연합은 대선을 앞두고 사회당과 공산당이 연합한 것이었는데요, 그러다보니 미국 입장에서 아옌데는 껄끄러운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비밀회의가 있기 하루 전인 9월 14일, 에드워즈는 메디슨(Madison) 호텔에서 리차드 헬름스(Richard Helms) 당시 미국 CIA 국장과 만나 중요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즉, 칠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르네 슈나이더(René Schneider) 당시 육군 총사령관을 제거하고, 국회를 폐쇄해 아옌데 당선예정자에 대한 승인과 취임을 막아버릴 것이라는 정보였습니다.
1970년 9월 14일 리차드 헬름스 CIA국장이 헨리 키신저 내무 장관에게 보인 개인 비망록[사진=제너럴 포트 대통령 도서관]
다음 날인 9월 15일 오전 8시에는 에드워즈와 도널드 켄달(Donald Kendall) 펩시 회장,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 존 미첼(John Mitchel) 법무장관이 아침식사를 함께 합니다. 이어 9시 30분, 에드워즈가 닉슨 대통령과 비밀회의를 가졌던 것입니다.
키신저 법무장관과 칠레 최대 언론사 사주 아구스틴 에드워즈와의 9월 15일 약속 스케줄, 여기에는 닉슨대통령의 친구이자 후원자이기도 했던 도널스 켄달 펩시 회장이 동석했다.[사진=National Security Archive, George Washington University]
회의가 있었던 6시간 후에 닉슨 대통령은 키신저 내무장관과 미첼 법무장관, 그리고 헬름스 CIA국장을 부릅니다. 그리고 아옌데의 취임을 막을 수 있는 작전계획을 48시간 이내에 만들어 놓으라고 지시합니다.
이같은 사실은 보안문서 전문가인 피터 콘블루(Peter Kornbluh)씨의 스페인어판 피노체트(Pinochet) 파일에서 밝혀졌는데요, 이 파일에는 당시 대통령과 에드워즈가 비밀회의를 가졌던 9월 15일의 대통령 일정이 포함돼 있습니다. 작성된지 50여년만에 비밀해제된 문서의 내용이었던 것이죠.
리차드 헬름스 CIA국장이 9월 18일 키신저 내무장관에게 개인적으로 보낸 편지 내용, 쿠데타 계획에 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이 이루어져 있다. [사진=National Security Archive, George Washington University]
쿠데타 모의는 실제로 진행이 됩니다. 이 과정에서 미국 CIA는 두 명의 칠레 군부출신 인물과 접촉하게 되는데요, 그 중 한 명은 로베르또 비옥스(Roberto Viaux)라는 퇴역장성이었고 다른 한 명은 산티아고 수비대 사령관인 까밀로 발렌수엘라(Camilo Valenzuela) 준장이었습니다.
CIA는 이들에게 생명보험증서, 총기류, 탄약, 그리고 슈나이더 장군을 살해한 이후 해외 도피를 위한 5만 달러의 현금 등을 건네 줍니다.
에드워즈는 CIA에게 쿠데타 이후 미국의 확실한 약속보증을 요구합니다. 여기에는 무기, 탄약, 수송, 통신장비, 연료 등과 같은 군수물자의 즉각지원, 신속하고 대규모적인 경제적 지원, 쿠데타 세력이 버려지거나 추방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보증 등이 포함됩니다.
10월 22일, 드디에 쿠데타 세력은 행동을 개시합니다. 일차적으로 슈나이더 총사령관을 제거하기 위해 그의 자동차를 기습공격합니다. 슈나이더 총사령관은 이른바 슈나이더 독트린이라 알려진 ‘정부와 군부 사이의 상호 불간섭 주의’를 천명한 사람이었습니다. 쿠데타 세력이 눈엣가시처럼 여겼던 인물이었던 것이죠.
슈나이더 총사령관은 총격을 받은 지 3일만에 사망합니다. 당시 아옌데는 “그 총은 내가 맞았어야 하는데”라고 말하면서 크게 애도합니다. 총격 소식을 들은 칠레 국민들의 민심은 완전히 군부 쿠데타 세력에 등을 지게 됩니다. 아옌데에 대한 지지가 더 높아지게 되죠.
총격이 있던 다음 날인 23일, 닉슨 대통령은 키신저 장관과 전화통화를 하게 되는데요, 통화 중에 키신저는 아옌데의 취임을 막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고 실토합니다. 그러면서 칠레 군부를 매우 무능한 패거리라고 폄하해 버립니다.
1970년 9월 23일 닉슨대통령과 키신저 내무장관의 통화내용, 이 통화에서 키신저는 아옌데의 취임을 막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실토한다. [사진=National Security Archive, George Washington University]
그리고 그 다음 날인 24일 칠레 국회는 예정대로 아옌데를 대통령으로 승인합니다. 이로써 닉슨과 CIA가 개입했던 아옌데 취임 저지 쿠데타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가 끝은 아닙니다. 아옌데 대통령은 취임 이후 미국과의 대립정책을 전개해왔고, 반대로 미국은 각종 경제 제재로 칠레를 압박합니다. 두 나라 간의 사이가 매우 안좋아진 것이죠.
1973년 칠레 군부는 6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쿠데타를 감행합니다. 6월의 쿠데타는 실패했으나 피노체트 당시 참모총장이 이끄는 9월의 쿠데타는 성공합니다. 9월 11일, 대통령궁을 둘러싼 군부 쿠데타 세력은 아옌데 정권이 순순히 항복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면서 회유하지만, 아옌대 대통령은 이를 거부하고 라디오를 통해 국민들에게 마지막 고별인사를 합니다.
아옌데 대통령은 이날 사망합니다. 칠레는 쿠데타를 주도했던 피노체트가 정권을 잡게 됩니다. 이후 1990년까지 장기집권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옌데 대통령은 오늘날까지 칠레 국민들의 기억속에 가장 존경받는 인물중의 한 명으로 남게 됩니다.
1973년 칠레군부의 성공한 쿠데타에 닉슨대통령과 CIA가 개입했을 것이라는 주장은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물론 미국측은 이를 부인해왔습니다. 그렇지만 1970년 쿠데타 시도에 이들이 개입했었다는 비밀문서의 내용이 밝혀지면서, 1973년의 쿠데타에도 개입했을 것이라는 주장들이 한층 더 설득력을 얻게 됐습니다.
올해는 1973년 쿠데타 발생 50주년입니다. 이번 비밀문서의 내용이 밝혀지자 가브리엘 보리치(Gabriel Boric) 칠레 대통령은 미국 바이든 대통령에게 미국의 쿠데타 개입에 대한 더 많은 정보문서를 비밀해제 하라고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2023년 9월, 쿠데타 발생 기념일에 맞춰 칠레 주요 방송인 칠레비전(Chilevision)은 당시 칠레 쿠데타와 관련한 4부작 특집 다큐멘터리를 방송키로 결정합니다. 피노체트 전 대통령의 쿠데타에 미국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밝히는 것이 주요한 내용입니다.
이번 비밀문서의 공개가 1970년의 쿠데타 뿐만 아니라, 1973년 쿠데타의 실상을 칠레 국민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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