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 난민을 르완다에 수출하겠다는 영국, 그 실상은?
[ 원고 ]
2024년 1월 17일, 그러니까 이 동영상이 제작되기 바로 얼마 전 영국 하원에서는 실로 야만스럽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법안이 하나 통과됐습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자국으로 들어온 난민 희망자를 곧바로 가난한 아프리카 나라인 르완다로 보내버리겠다는 법안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법안은 이날 찬성 320표, 반대 276표로 하원을 통과했습니다. 영국은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는 만큼 아직 법으로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상원 역시 통과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습니다.
이 법안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사람은 리시 수낙 총리입니다. 그러니까 그가 속해 있는 보수당이 추진하고 있는 법안입니다. 현재 영국의 보수당은 하원과 상원 모두 보수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법안이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합니다.
이 법안의 시작은 지난 20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는 보리스 존슨이 총리였었죠. 그 해 4월 불법입국자들을 르완다로 보낼 수 있도록 영국의 불법이민에 관한 법률이 수정됩니다. 그리고 바로 두 달 후인 6월 14일, 실제로 자국에 입국한 불법 입국자들을 르완다로 싣고 갈 비행기 한 대가 이륙을 준비합니다.
하지만 이륙을 하기 바로 전 유럽인권법원(Europe Court of Human Rights = ECHR)에 의해 발목이 잡힙니다. 이들 중 이라크 출신이 한 명 있었는데요, 유럽인권법원은 ‘이 사람이 르완다에 가면 돌이킬 수 없는 실질적 위험에 놓일 가능성이 있다’는 결정을 내려버립니다.
이렇게 첫 시도가 불발로 끝나자, 영국에서는 이에 대한 법적인 논쟁이 계속됩니다. 그러다가 지난 해 11월 영국의 대법원이 이를 금지하는 판결을 내립니다. ‘르완다는 난민 희망자에게 안전한 국가가 아니다’라는 것이 그 이유였죠. 학대에 노출될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자기 나라로 강제송환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들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법원이 판단한 것입니다.
유럽인권법원과 자국 대법원 두 곳에서 퇴짜를 당했지만, 수낙 총리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아주 독특한 법안을 만드는데요, 이른바 르완다 안전법(Safety of Rwanda Bill)이라는 것입니다.
이 법안은 르완다가 난민희망자에게 실제로 안전한 국가인지 아닌지의 여부를 하원에게 다수결로 묻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법원의 판결에 족쇄를 채우려는 것인데요, 어찌 보면 입법부가 자신의 권한을 넘어 사법부의 영역을 침해하는 것인 만큼, 논란의 여지가 매우 큰 법안이라고 하겠습니다.
동시에 영국 정부는 다른 준비를 합니다. 2023년 12월 5일 기존 협정을 보완하여 르완다 정부와 새 협정을 맺은 것인데요, 난민 희망자들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영국에서 르완다로 보내진 난민에 대해서는 심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영국을 제외한 다른 어느 나라에도 보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말은 그럴 듯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영국으로 올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난민지위 심사를 영국이 아닌 르완다가 하며, 심사결과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영국이 아닌 르완다에 정착하는 것이거든요. 말 그대로 난민을 르완다에 수출하는거죠. 일반적인 수출과 다른 점이라면 르완다로부터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르완다에 돈을 준다는 점이죠.
하원 의결과정에서 보수당에서 11명의 반란표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상당수 기권표도 나왔습니다. 현재 영국 하원에서 보수당 의원의 수는 365명인데요, 찬성표가 320표이니까, 최소 45명이 반대하거나 기권했다는 뜻인거죠.
그런데 반란표를 던진 이유가 기가 막힙니다. 난민 신청자들의 인권을 생각해서가 아닙니다. 만들어진 법안이 완전하기 못하기 때문에 대법원이나 유럽인권법원에서 제동이 걸릴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따라서 법원에서 제동이 걸리지 않을 만큼, 보다 완벽하게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로버트 젠릭(Robert Jenrick) 하원의원인데요, 이 사람은 영국 이민부 장관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2023년 12월 6일, 수낙 총리가 불완전한 입법을 주도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장관직을 사직합니다. 그리고 1월 17일 하원투표를 앞두고 이 법안을 수정하려고 노력합니다.
그 결과 이른바 젠릭 수정안이라는 초안을 만들었는데요, 주 목적은 유럽인권법원에 의해 난민 희망자의 영국 강제출국이 금지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필요한 정족수만큼 의원들을 확보하지 못합니다.
그러자 로버트 젠릭 의원은 이번 법안에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하지만 그를 따르던 강경파 하원의원들이 상당수였음에도 불구, 생각보다 반란표는 적었던 것으로 평가되는데요, 그것은 아예 법안이 통과되지 않는 것보다는 이대로라도 통과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의원들이 많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인권침해 요소가 다분한 법안인데요, 영국 정부도 나름대로 명분은 내세우고 있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영국은 섬나라입니다. 따라서 난민 희망자들이 영국으로 불법입국을 하는 가장 주된 방법은 보트를 타고 바다로 들어오는 것인데요, 대개 영국해협(English Channel)을 통하게 됩니다.
지난 2023년 한 해 동안 영국해협을 통해 영국으로 들어온 입국자 수는 모두 2만9437명인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영국 정부는 이들이 입국하는 과정에서 밀수등의 행위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보트를 타고 바다로 입국하는 것이 위험한 행위인 만큼 제재할 필요가 있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2023년 12월 둘 째 주에는 바다에서 4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보트입국이 위험하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르완다 안전법에 대한 영국정부의 입장은 단호합니다.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 전직 총리의 경우는 한 술 더 떠서 다른 서방 국가들도 이번 영국의 르완다 안전법과 같은 방법의 채택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법안을 둘러싼 반대여론은 매우 높습니다. 인권적인 차원에서죠. 이 소식을 들은 서방 각국의 법학자들은 대체로 이 법안이 상당히 무모하고 급진적인데다가, 비정상적이라는 의견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전세계 난민이 8천여만명에 이르고 있고, 난민유입의 문제를 겪는 나라가 영국 하나만이 아닌데, 유독 영국만이 이런 비인권적인 법안을 내놓고 있다는거죠.
당인 영국 노동당 역시 잔인하고 비 인간적이며 국가의 이익보다는 당의 이익에만 집착한 있을 수 없는 법안이라는 논평을 했습니다. 저스틴 웰비(Justin Welby) 캔터베리 주교는 영국을 수치스럽게 만드는 비도덕적인 법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UN 난민기구는 이 법안이 국제 난민법 위반이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습니다.
영국은 이 법안을 추진하면서 이미 르완다에 3억달러를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24년 올 해 6천만달러를 더 지불키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 영국 노동당은 이들 난민 신청자들이 심사가 결정될 때까지 영국에 머무는 것보다 르완다로 보낼 때 오히려 비용이 더 든다면서 보수당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르완다 안전법에서 고려되고 있는 유일한 인권적 측면은, 보호자 없는 미성년 아동의 경우는 르완다로 보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영국은 2024년 하반기, 혹은 늦어도 2025년 1월 28일 전까지 총선을 치루게 됩니다. 현재 여론조사에서 보수당에 대한 평가는 그닥 좋지 않습니다. 이대로라면 다음 총선에서 지금보다 의석수를 더 잃게 될 것이라는 전망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 법안으로 수낙총리가 돌파구를 찾으려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법안을 끝내 통과시키더라도, 어쩌면 상처뿐인 영광일 수도 있다는 평가들도 있고요.
이번 법안은, 불법이민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여러 나라들에게도 자칫 선례가 될지 모른다는 점 때문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데요, 과연 상원에서 통과가 될지, 그리고 영국의 대법원이나 유럽인권법원이라는 다음번 고비를 넘길 수 있게 될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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