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후티반군과 전쟁에 돌입할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 원고 ]
후티 반군이 홍해 바브 엘만데브 해협을 경유해 이스라엘로 향하는 선박들에 대한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중동지역의 긴장수위는 한층 더 높아졌습니다. 몇몇 언론들은 확전의 가능성을 얘기합니다. 미국이 예멘 반군을 공격하고, 그러면 헤즈볼라와 이란이 개입하고, 또 다시 미국의 개입이 본격화하는 확전 시나리오를 얘기합니다.
과연 이 시나리오는 얼마나 가능성이 있을까? 주로 현재 미국이 처해 있는 입장을 중심으로 분석해 봤습니다.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후티반군의 역사적 배경이라든지, 혹은 홍해에서 운항선박에 대한 후티반군의 공격상황에 관한 내용들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한가지, 후티반군이라 하면, 정부군에 비해 규모가 왜소한 반란군 정도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는 점은 미리 말씀드립니다. 후티반군은 예맨의 수도인 ‘사나’를 비롯해 대부분 주요 지역을 장악한 상태입니다, 사실상 예맨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반군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 것은 이란을 제외한 어느 나라도 이들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미국이 예맨에 지상군을 투입할 상황까지 가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지상군 투입은 커녕, 그 전단계 작전이랄 수 있는 대대적인 공습 역시 쉽지 않습니다. 대내외적인 상황 모두가 그렇습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지속되면서, 휴전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 본토는 물론이고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휴전을 요구하는 시위들이 연일 확산되고 있습니다. 특히 팔레스타인에서 민간인 사망자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세계적인 여론은 조속히 전쟁을 마쳐야 한다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세계적인 여론을 뒤로 한 채 예맨에 대대적인 공습을 감행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여론은 그저 여론일 뿐이라지만 미국으로서도 무조건 무시할 수 만은 없습니다.
지상군 파견은 더 어렵습니다. 이것은 매우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미국은 지난 202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했습니다. 사실상 패전입니다. 전쟁기간은 무려 20여년이었습니다. 엄청난 재정과 젊은이들의 희생을 댓가로 치룬 전쟁이었습니다. 미국의 여론이 또다시 예맨 파병을 보고만 있을 리는 없습니다.
게다가, 실제로 지상군이 투입됐을 때, 속전속결로 예맨의 반군세력을 제압해야 하는데, 이것 또한 쉽지 않습니다. 우월한 무기로 공습을 감행하는 것과 지상군을 투입해 전투에 돌입하는 것은 다릅니다. 후티 반군은 오랜 전투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미사일이나 드론을 날릴 정도의 화력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막상 지상군을 투입하면 미군 역시 상당한 희생을 각오해야 하고, 그 기간도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습니다.
궁극적으로 지상군이 승리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이는 베트남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미국에 가르쳐준 교훈이기도 합니다. 러시아 역시 지상전에서 우크라이나를 단기간에 제압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일단 발을 내딛으면 자칫 장기전쟁의 수렁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상황임을 미국도 잘 알고 있습니다.
중동국가들과의 관계도 생각해야 합니다. 중동지역은 이슬람의 여러 종파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습니다. 종교적으로 적대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민족의 문제라든지, 다른 종교와의 갈등문제가 되면, 그 관계는 한층 더 복잡해집니다.
이란과 헤즈볼라, 그리고 예맨반군의 주 종파는 시아파이지만, 하마스는 수니파입니다. 하지만 지금 수니파 하마스를 지원하는 세력은 시아파 세력인 이란과 헤즈볼라입니다. 그만큼 종파간의 문제는 복잡합니다.
후티반군은 수니파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와 그동안 지속적인 대립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지난 2021년 사우디의 아람코 정유시설을 드론으로 파괴했던 것도 바로 이들 후티반군이었습니다.
그러다가 2023년 4월 사우디아라비아 대표단과 후티 반군이 예멘 수도 사나에서 본격적인 평화 협상을 시작하면서 이들 사이에 화해분위기가 조성되던 참이었습니다.
어쨋거나 후티반군에 대해 불편한 아랍 국가들이라 할지라도, 막상 미국이 이들과 본격적인 전쟁을 시작하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미운 형제를 때리더라도 내가 때리는 것과 남이 때리는 것은 다릅니다. 미국의 예맨 무차별 공격을 아무 일 아닌 것처럼 보고 있을 중동국가들은 많지 않습니다.
사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있기 전 미국으로서는 중동지역에서의 외교 주도권을 중국에 빼앗긴 느낌이었습니다. 2023년 3월, 그동안 철천지 원수이던 사우디 아라비아와 이란이 관계정상화에 합의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는데요, 이를 중재한 것은 미국이 아닌 중국이었습니다. 주도권을 빼앗긴 미국으로서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2023년 8월 이들 두 국가는 나란히 브릭스에 가입하기로 결정합니다. 2024년 공식가입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브릭스는 사실상 중국이 주도하는 대규모 경제블록이며, 미국주도의 세계 경제질서에 대항하는 의미를 띠고 있습니다. 중국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사우디에 자국 원유수입에 대한 위안화 결제를 요청하는 등, 달러패권에까지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한 때 중동지역에서 적당히 발을 빼려던 미국이 뒤늦게 이스라엘과 사우디 아라비아 양국간의 국교정상화에 발벗고 나섰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 이것이 막 성사되려던 참이었습니다. 중동지역에서 외교 주도권을 놓고 중국과 경쟁해야하는 미국의 입장에서, 중동에서의 확전은 여전히 부담으로 남습니다.
미국경제의 문제도 있습니다. 팬더믹 이후 미국은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에 시달려왔습니다. 이 때문에 빠른 속도로 금리를 올려야만 했던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미국의 높은 고용율이 한 몫을 거들어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어쨋거나 팬더믹 이후 미국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인플레이션이 잡힐 듯 한 지점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국가들이 석유 감산을 결행하자, 그동안 미국은 경제적으로 철저하게 고립시켜오던 베네수엘라와의 관계개선을 도모하면서까지 유가안정에 주력합니다.
중동지역의 전쟁이 확전으로 가닥을 잡게 되면, 이제 정말로 유가가 어느 방향으로 튀게 될지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중동 국가들이 본격적으로 원유를 전략무기화하는 단계까지 가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그동안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해왔던 노력들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대선을 생각하면 바이든 정부로서는 이제 금리를 낮추기 시작해야 할 시점입니다. 높은 금리는 어쨋거나 여당의 후보에게 불리합니다. 금리인하의 선행조건은 인플레이션의 진정입니다. 예맨반군과의 전쟁은 장애요소가 됩니다.
다음 대선에서 미국내 아랍 유권자들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난 2020년 대통령 선거에서 아랍계 미국인들의 59%가 바이든을 지지했습니다. 이는 트럼프가 평소 인종차별적 언행을 서슴지 않았던 때문인 것으로 풀이됩니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크게 바뀌었습니다. 바이든에 대한 지지율이 17%까지 가라앉았으니까요. 바이든이 이번 전쟁에서 이스라엘 편에 선 것에 대한 아랍계 미국인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 대선에서 전통적으로 공화당을 지지하는 주와 민주당을 지지하는 주는 잘 바뀌지 않습니다. 몇몇 초경합 지역의 승패로 대통령이 결정됩니다. 미국의 아랍 수도라 불리는 미시건 주는 그 중 하나입니다. 주민의 54%가 아랍계입니다. 이들이 지난 대선에서는 바이든을 지지했고 이것이 바이든 당선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다음 대선에서는 반대로 될 공산이 큽니다.
애리조나, 조지아,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 등과 같은 주들의 경우 지난 대선에서 매우 근소한 차이로 바이든이 이겼습니다. 아랍계 유권자들이 돌아서면, 이번에는 그 반대로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바이든 행정부가 예맨과의 본격적인 전쟁까지 결행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후티 반군의 입장은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맨은 현재 정부군과 후티 반군, 남부 과도위원회의 3개 세력으로 나누어져 있고, 현재는 후티반군이 수도를 장악해 사실상 지배세력으로 떠오른 상태입니다.
후티반군이 지배하는 예맨은 산유국이면서도 국민들은 우리보다 더 비싼 유가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휴전 전에는 리터당 300리얄, 우리돈 1500원정도이던 것이 휴전 후에는 450리얄, 우리돈 2300원정도까지 올랐습니다.
내전 중에 전체 도로의 3분의 1 정도가 망가졌으나 수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전력이 부족해 생산시설조차 돌리기 어렵습니다. 학생들은 교과서가 없고 가르치는 교사는 신발도 신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 모든 것을 반군 지배세력의 무능과 부패 때문으로 보는 국민들이 많습니다.
불안상태에 있는 국민들을 결속시키고,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는 데에 이스라엘에 대한 공세는 더 없이 좋은 재료입니다. 무엇보다도 세력간 정통성 다툼에 있어 주도권을 확보하는데에도 이만한 재료가 없습니다.
공식 예맨정부는 후티반군에 대해 홍해에서의 공격은 자신들의 주권을 침탈하는 공격행위라고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자칫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어 적극 주장할 수 없는 상태가 됐습니다. 후티 반군에게 이미 주도권을 빼앗긴 셈입니다.
그동안 오랜 내전으로, 예맨 국민들은 전쟁에 참여하는데 진력을 내고 있습니다. 후티 반군의 모병도 그만큼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알자지라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예맨이 이스라엘에 대한 강경입장을 보이면서, 군대에 자원하는 젊은이들이 크게 늘고 있습니다. 알자지라는 후티 반군이 이들을 정부군이 주둔하는 마리브 요새 외곽에 배치했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이 점에서 보면, 후티반군의 이번 전쟁 개입은 그 진정성에 의문의 여지가 남습니다. 따라서 미국을 크게 자극하기보다는 적당히 도발하는 선에서 멈출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 역시 후티반군을 적극 타격하기보다는, 항해선박에 대한 후티반군의 공격을 억제하고, 상황에 따라서는 이들에게 테크니컬한 공습을 감행하는 선에서 멈출 공산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 알자지라는 지난 11월 26일 후티 반군이 미 전함 근처로 두 발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적이 있는데, 일부러 빗맞춘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미국 측이 반격을 가하고 있지 않았던 것 역시, 정면 격돌을 원하지 않는 양측 모두의 의도가 담겨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저희가 후티 반군으로 인한 중동지역의 확전 가능성에 대해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물론 이는 지나친 확신입니다. 전쟁에는 예외적인 상황이 무수히 발생하고 돌발변수가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며칠 전 이스라엘이 시리아에서 미사일 공격으로 이란 혁명수비대 사이드 라지 무사비 준장을 살해하자 이란이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생각지 않던 변수인 셈입니다.
다만 이번 분석이, 바브 엘만데브 해협의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미국과 후티 반군이 처한 서로의 입장이 어떤 것인지 판단해보는 자료로서 도움이 되시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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