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살바도르 범죄집단(완) - (4) 살인율의 감소와 감춰진 이면
[원고]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래 엘살바도르에서는 살인율이 크게 감소합니다. 2021년 엘살바도르의 살인율은 인구 10만명당 103명이었으나 본격적으로 범죄소탕에 나선 2022년에는 10만명당 2명으로 뚝 떨어집니다. 과거 하루 최대 62명의 살인사건이 하루 평균 0.5명에 그칩니다.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된 이래 약 6만여명의 수감자가 발생합니다. 이는 엘살바도르 전체 인구의 1%에 해당합니다. 기존 수감자 4만명까지 합하면 모두 10만여명에 달합니다. 성인인구만으로 보면 5%입니다. 엘살바도르의 성인 스무명 중의 한 명은 수감자인 셈이죠.
갱스터들의 체포와 더불어 대대적인 물품 압수도 병행합니다. 지난 해 압수된 차량은 2만5천여대에 달합니다. 14000대 이상의 휴대폰과 200여점의 화기, 140만달러 가량의 현금, 6톤 이상의 마약 등을 몰수합니다.
수감자 수의 증가로 수용시설이 부족해지자 이번에는 최대 4만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교도소 건설에 나섭니다. 숫자가 아무리 많더라도 범죄자는 모두 수감시키겠다는 부켈레 대통령의 의지가 읽힙니다.
1981년생의 젊은 나이인 부켈레 대통령은 원래 진보당인 FMLN 출신이었으나 2017년 출당합니다. 그리고 2019년 ‘새로운 생각’이라는 중도기반의 신당을 만들어 3번 기호로 출마합니다. 그는 2015년부터 엘살바도르의 수도인 산살바도르 시장을 역임했는데, 재임 기간 중 시의 범죄율을 크게 낮추는데 성공합니다. 이 경력에 힘입어 2019년 선거에서 결선투표 없이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엘살바도로의 살인율이 낮아지면서 부켈레 대통령의 인기는 크게 높아집니다. 인기가 지나치게 높아지다보니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합니다.
원래 엘살바도르의 선거제도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대통령 단임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는 2024년 선거에서 부켈레 대통령은 후보로 나설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의 인기에 힘입어 부켈레 대통령은 이를 무시해 버립니다. 실제로도 일부 여론조사에서 부켈레 대통령이 연임해야 한다는 의견은 90%에 이르고 있습니다. 엘살바도르 국민들은 부켈레 대통령이 아니면 또 다시 증가하는 살인율을 막을 사람이 없다는 판단들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위헌입니다. 법조계와 시민단체들 사이에서 반대의견들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반대 의견을 가진 법관들을 무더기로 해임하기도 합니다. 결국 그는 지난 7월 대통령 연임을 위한 후보등록을 확정하게 됩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지난 해 21명의 노조 간부들과 5명의 사회 활동가들이 범죄와의 전쟁 중에 체포된 일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범죄와의 전쟁이 갱스터 뿐만 아니라 자신의 반대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셈입니다.
구금과 체포는 범죄자 뿐만 아니라 범죄와의 관련성을 가진 누구에게나 이루어질 수 있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상 구실만 주어진다면 누구나 그 대상이 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엘살바도르의 인권단체인 크리스토살(Cristosal)측은 자신들이 접수한 부당 구속 사례가 3500건에 이른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또 다른 인권단체인 소코로 후리디코(Socorro Juridico)는 자신들이 구금 중 사망자 180명을 접수했으며, 그 중에서 50%는 폭력, 30%는 적절한 치료 부족으로 인한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또한 사망자의 92%는 무죄인 경우라고 주장했습니다.
구금의 형태도 다양합니다. 실수에 의한 구금, 이미 죗값을 치루고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에 대한 재구금 등도 다반사입니다. 이렇게 구금이 되더라도, 무죄의 증명은 어렵고, 가족과의 면회조차 거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생존여부조차 확인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수용시설이 부족한 탓이기도 하지만 재소자들에 대한 비인권적 행태도 지적되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우리나라에서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운영되었던 삼청교육대를 연상케 합니다.
오죽하면 일각에서는 예전에 문신을 한 갱스터에 시달렸다면, 요즘은 제복을 입은 권력에 의해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부켈레 대통령의 국민적 인기는 여전히 높습니다. 갱스터들에 의해 매일같이 사람들이 죽어 나가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다고들 합니다. 이런 가운데 부켈레 대통령은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멋진 독재자’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일단 살인율을 크게 낮춘 부켈레 대통령의 공적에 대해서는 인정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공적을 기반으로 하는 위헌적 성격의 대통령 연임시도와 무차별한 인권탄압적 측면에 대해서는 훗날 엘살바도르 역사가 어떤 평가를 내리게 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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