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자서전 - 002
내 나이 십사 세나 십오 세쯤 되었을 때다. 가을이 오는 무렵 같았다. 태풍으로 바람이 무섭게 불었다. 시골에는 수리조합 물을 끌어 들이는 둑이 있다. 그 때 마침 둑으로 가는 길이었다. 바람이 너무 심해서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을 받고 가는데 내 앞에 나보다 훨씬 어린 여자 아이가 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그 애는 걷다가 날아가서 그만 물속에 풍덩 빠져 버렸다.
나는 내 정신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날아가듯이 가서 그 애 머리채를 잡아 올렸다. 수멍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아찔하고 잊을 수가 없다. 그 아이는 방앗간 집 딸이며 우리 일가였다. 이름은 이화복이다. 그 애는 몸이 작고 바짝 마른 아이다. 그러니까 힘없이 물로 빠져 버린 거다. 물에서 건저 놓으니 바들바들 떨면서 꼭 쥐새끼 같았다.
그 아이를 데리고 그 집으로 갔는데 그 어머니는 아이를 보고 대뜸 욕을 퍼붓는다. “이 계집애야 미쳤간디? 바람 부는데 나가 가지고 물에 빠지고 지_랄이냐! 고 소리소리 지르는 것을 보고 나는 집으로 왔다. 그게 다다.
그런데 나는 세월이 지나도 그 일은 잊히지가 않는다. 그 애가 수멍으로 들어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찔함과 건져 놓고 바들바들 떨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거기가 너무도 정겨운 내 고향 들길이었다. 그리운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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