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
김현 / 객원기자(전문기고인)
기사 입력 : 2020.11.24 23:05
/ 최종 수정 : 11.24 23:05
| 열매 |
나에겐 오래된 습성이 하나 있다. 이유가 있으련만 그걸 잘 모르겠다. 바로 ‘열매’다. 바삐 길을 걷다가도 열매를 보면 멈춰 서서 한참을 들여다보게 된다.
아파트 단지에 있는 몇 그루 능금열매를 오가면서 매번 쳐다보고 미소 짓는다. 봄날에 그토록 화려했던 벚나무는 가을이 되자 열매를 무성하게 맺었다. 버찌는 새까맣고 땡글땡글한 것이 꼭 강아지 눈 같아 이리저리 들여다보고 깨물어도 본다. 손이 시커멓게 물들어도 즐겁다.
탄천에는 포도 알처럼 데굴데굴 보랏빛 열매가 있다. 찾아보니 참작살 나무 열매란다. 생긴 것과 다르게 날카로운 이름이다. 애기 포도라고 이름을 붙여주기도 했다. 산수유도 시뻘건 핏빛으로 푸른 잎 새 사이에 숨어 영롱하게 빛나고 있다. 난 어김없이 이것들을 이리저리 사진 찍어 친구들에게 보낸다. 나처럼 열매를 좋아하는지 아닌지는 관심 밖이다. 그냥 나누고 싶다. 좋은 것을.
가장 나를 설레게 하는 것은 감나무다. 그 중에서도 홍시, 잎새 지고 앙상한 가지에 제 무게를 못 이기고 휘청거리는 감나무, 그 끄트머리에 힘겹게 달려있는 홍시를 보면 묘한 관능적 쾌감까지 느껴지는 것이 이럴 때는 내가 꼭 변태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쩌랴 새파란 가을하늘과 진주홍의 감열매가 눈물 나게 아름다운 걸.
그러고 보니 내가 활동 중인 온라인 카페에서도 닉네임이 열매다. 수 년 전에 성격심리 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 용량 딸리는 내가 개성 강한 세 아이를 키우며 힘에 부쳐 이런저런 상담을 받던 시기였다. 미술치료였나 보다. 치료사가 아무 그림이나 그리라고 백지를 주었는데 망설임 없이 나무, 들판, 산을 그렸다. 자연이 제일 큰 위로였던 것 같다. 치료사가 집중한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열매였다. 나무에 사과를 주렁주렁 그렸던 것이다. 치료사 말로는 열매는 결과, 성취를 상징한다며 열매를 잔뜩 그린 것으로 보아 뭔가를 이루고 결과물을 얻는 것을 중시하는 성격이라고 분석해 주었다.
지인 중에 명리학을 공부하는 이가 있는데 한번은 나의 생년월일을 따져 사주를 봐주었다. 사실 태어난 시를 친정엄마조차 정확히 모르니 신뢰성은 그닥 없지만 재미삼아 본 내 사주는 이렇다. 나는 작은 텃밭이란다. 작은 텃밭인데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어 밭이 힘들다는 것이다. 밭의 모든 영양분과 수분을 나무가 다 가져다 열매를 맺으려 하니 땅은 몹시 부대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땅의 희생으로 열매들이 튼실하고 속이 꽉 찼다고 땅의 노고가 결실을 잘 맺었다고 했다. 이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되던지 맞나 틀리나 따지지 않고 그냥 믿기로 했다.
아, 그랬구나, 그래서 내가 이리 힘들구나, 나의 결실인 세 아이들이 토실토실 속 찬 열매가 되려고 이렇게 고단했던 거구나.
비로소 알게 되었다. 동병상련이었나 보다. 열매를 보면 설레고 흥분되기까지 했던 까닭이 땅에 대한 애틋함과 땅 속에 깊이 뿌리 내리고 땅을 의지해 열매를 키워 내느라 수고한 나무에 대한 경외감이었나 보다. 말없이 자리를 지키며 힘겨운 과업을 수행하느라 지친 나무에게 위로를 보내고 싶었던 것이겠지.
나무야, 고생 많았어, 너의 열매는 멋져! 능금이, 버찌가, 산수유가, 감나무가 그토록 나를 설레게 했던 이유를 찾았다.
이제 열매는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잎새도 열매도 떠난 그 자리에서 나무는 물기 마른 거친 껍질을 두른 채 홀로 긴 겨울을 버텨낼 것이다. 나무에게 다시 한번 등을 토닥이며 말해 주고 싶다. 그 동안 애 많이 썼다고. 홀로지만 이 또한 간결하고 소박하니 충분히 멋지다고.
202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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