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자서전에 관하여 - 글쓴이의 아들이 전하는 말
어머니는 호적으로 1938년 생, 실제로는 1937년 생이시다. 그러니까 여든 중반의 연세이시다. 어머니가 초등학교 4학년때 전쟁이 터졌는데, 이 때 초등학교를 그만두셨고 이것의 어머니 학력의 전부이다. 그 당시 우리 외갓집은 그래도 마을에서는 꽤 사는 축에 들었건만, 외할아버지께서는 딸에게 공부를 시켜야겠다는 생각 자체가 없으셨던 것 같다.
어머니께서는 공부를 계속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이 있으셨다. 그리고 그 아쉬움은 우리 아들들의 마음 한구석에 늘상 자리를 잡아왔다. 어머니같은 분이 공부를 하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애석하기 그지 없는 일이다.
지금 대학, 혹은 대학원을 나온 어머니의 며느리들이나, 혹은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어머니의 손녀 딸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남편이나 아빠 대신 며느리의 시어머니이자 손녀딸의 할머니, 그러니까 글쓴이의 어머니와 의논한다. 그리고 거의 대개는 어머니의 조언에 감탄하곤 한다. 단순히 만족의 정도를 넘어서는 것이다.
딸아이의 말로는 할머니의 조언이나 충고가 어느 누구의 그것보다도 더 현실적이고 마음에 와 닿는다는 것이다. 공부를 많이 한 엄마나 아빠의 그것보다도 더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와 얘기할 때마다, 할머니의 아버지가 원망스럽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이런 할머니를 공부시키지 않았기로...
여든이 되기 한해 전인가 두해 전쯤, 전 어머니께서는 요양사 자격증을 취득하셨다. 그 때까지 어머니께서는 OMR 카드를 써 본 적이 없으셔서, 며느리에게 사용법을 설명 들으셔야 했다. 그런 어머니이시건만, 필기시험에서는 만점을 취득하셨다.
고령에 만점 취득이 놀라운 일이기는 했는지, 당시 어머니의 이야기가 지역신문에 기사화 된 적이 있기도 했다. (어머니는 요즈음 시간제로 요양사 일을 하신다. 어머니가 돌보시는 분들은 대개는 또래이거나 어머니보다 더 연세가 어리신 분들이라고 한다. 그분들은 한사코 어머니와 함께 계시고 싶어 한다고...)
여든이 되셨던 해였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당신이 사셨던 얘기를 글로 써보셨다고 하셨다. 물론 어느 누가 읽어주기를 바랬던 것도 아니요, 글솜씨를 자랑하기 위한 것은 더 더욱 아니였다. 그보다 이태 전쯤 혼자가 되신 어머니께서는 가끔 적적하셨나보다. 그냥 생각나는 것을 써보고 싶으셨다고 했다
요즘 일각에서는 자서전 쓰기가 열풍이요, 심지어는 자서전 쓰기 수업 비슷한 것이 유행이라고 하던데 어머니께서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분이시다. 무엇이든 혼자 익히기를 좋아하시는 분이라 배우기 위해 공부를 하러 다니는 것은 어머니와 상관없는 일일 것이다. 그런 어머니께서 쓰신 글이니 자서전이라기 보다는 그냥 어머니의 옛 기억에 대한 끄적거림이라고 말해야 옳을지도 모르겠다.
자식의 입장에서는 어머니의 글이 무척이나 반갑고 소중했다. 게다가 막상 어머니의 글을 읽었을 때, 자식의 눈에 비친 어머니의 글은, 비록 글쓰기의 요령을 따로 익힌 바가 없어 투박하기는 하지만, 거침이 없고 솔직하여 어느 지식인의 글 못지 않게 마음을 움직이는 성격의 것이었다. 어머니를 잘 아는 어머니의 형제들과 주변의 친지들에게 글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출판을 생각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글이 완성된 것도 아닐뿐더러, 언제 완성이 될지, 혹은 완성이라는 것이 있기나 할런지 알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어느 날이라도 어머니께서 더 이상 쓰고 싶지 않으면 그만인 그런 글이었고, 분량 또한 얼마 되지 않았기로 출판과는 거리가 멀었다.
불현 듯 어머니의 글을 블로그에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 때 나는 블로그를 운영한 적이 있었는데 그 블로그의 주제는 대략 한국적인 것에 관한 것들이고, 그 대상은 우리 한국인이 아니라 불어나 영어, 혹은 일본어를 사용하는 외국인들이었다. 어머니의 글을 읽으면서, 만약 어느 외국인이 이 글을 읽는다면, 한국적인 것을 이해하는 데에 좀 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블로그는 오래가지 못했고, 몇차례인가 연재를 하다가 중단되었다. 블로그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지만, 어머니의 자서전을 올리다 만 것은 늘상 맘 한구석에 안타까움으로 남아있었다.
이제 빛바랜 원고를 꺼내 청원닷컴에 다시 연재키로 한다. 쓰여진 만큼의 글만 조금씩 나누어 올릴 생각이다. 혹시 누군가가 이 글을 읽는다면 그것은 어머니 당신의 자식들일 것이라 생각하고 쓰신 글이니 독자글께서는 글을 읽으시면서 이 점을 감안해 주셨으면 한다. 혹여 글을 읽으시면서 불편하거나 부족한 점이 발견되더라도, 그저 팔십을 훌쩍 넘겨도록 평생을 곧게 살아오신 어느 할머니의 기억담이 다 그렇고 그럴 것이라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해 주셨으면 한다.
수기로 쓰신 글을 컴퓨터로 옮기면서 맞춤법 등을 수정하였으나, 글 자체에 대해서는 어떠한 가필도 하지 않았다. 아주 오래 전에 초등학교 학력도 못 마치신 어머니의 글이 맞춤법에 잘 맞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거니와, 나는 어머니 글에서 틀린 맞춤법을 볼 때마다 오히려 반갑고 친근한 생각이 드는데, 이것은 필경, 내가 어머니의 자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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