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증 치매환자라는 말을 빗대어 써서는 안되는 이유
아파트 숲으로 이루어진 도시 분당, 그곳에서 있었던 얘기다. 할머니 한 분이 어느 날 높은 층에서 1층으로 사뿐히 내려오셨다. 계단을 밟지도 않고, 엘레베이터를 타지도 않고, 그냥 내려오셔서, 그렇게 천사가 되셨다.
나중에 들은 얘기는 이랬다. 평소 명민했던 할머니지만 나이가 들어 찾아온 치매까지는 어찌할 수 없었다. 점점 치매가 심해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치매가 그렇듯이 어느 날 갑자기 되돌이킬 수 없이 완전한 치매가 되신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어쩌다 찾아온 손님이 좀 더 자주 찾아왔을 뿐.
손님이 할머니에게 머무는 시간은 점차 길어졌다. 손님이 가고 나면, 할머니는 정신이 들었다. 손님이 왔다 간 것까지도 모두 똑똑히 알수 있을 만큼. 자녀들과 함께 살고 있던 할머니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간 시간, 그러니까 할머니 당신이 당신으로 살지 못했던 시간은 참지 못할 오욕과 같은 것이었다. 자녀들에게 대한 미안함, 사라져버린 자신의 존엄성에 대한 슬픔이 점차 할머니를 압도했다.
손님이 가고 정신이 맑았던 어느 따뜻한 봄 날, 할머니는 자녀들에게 한 통의 편지를 남겼다. 그리고 높은 꼭대기 층에서 1층까지 아무 것도 딛지 않고 단숨에 내려가셨다.
걸리지 않고 살수 있으면 정말 다행이겠지만, 치매는 누구도 비켜가리라 장담할 수 없는 무서운 질병이다. 그리고 그로 인한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무엇보다도 주변 사람들이 느끼는 고통과 부담감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사랑하는 부모를 감당치 못해 결국 요양원이라는 삶의 마지막 귀착지로 보내야 하는 심정들은 굳이 그 깊이를 다 헤아리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치매 당사자 본인을 아무런 인격도 없는 나무막대처럼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다. 이는 그동안 살아왔던 본인 자신의 삶에 대한 총체적인 부정이다. 신체적 장애를 이유로 인간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만큼이나, 위험하고 저질스러운 생각이다.
만약 누군가가 ‘중증 치매환자’라는 단어를 상대방을 비하하기 위해 사용한다면, 당연히 그 사람의 기본적인 인성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게다가 만약 어느 정치인이 이 단어를 같은 이유로 사용했다면 이제 그 사람의 정치적 자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치매는 고통이다. 본인과 주변인, 많은 사람들을 어렵게 하는 고통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 질병이 점차 확산되고 있고, 그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면, 이는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하나의 과제이다. 생각이 있는 정치인이라면, 이 질병으로 인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고통을 최소화하고, 치매 당사자가 마지막까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할 것이다.
오히려 반대로 중증 치매환자를 우리 사회에 있어서는 안될, 귀찮고 부담스럽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정도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그리고 만약 그런 정치인이 정치활동에 성공한다면, 우리 사회의 앞날은 아주 분명하게 나락의 길로 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의 ‘중증 치매환자’ 발언은 유감스럽다.
국민들이 대통령을 욕할 수는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도 이런 점을 흔쾌히 수용한 바 있다.
정치인이 상대방 정치인을 욕하는 것은 정치인으로서의 기본품위를 이미 상실한 것이지만 여기까지도 그럴 수는 있다. 국민들의 눈에 좋게 보일 리는 없지만, 품질이 낮은 정치인이라면, 있을 수는 있는 일이다. 억지로라도 인정하자면,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아픔으로 고통받있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을 비하해 대통령을 이에 빗대는 일은 한마디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도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는 못하는 정치인이라면 이제 그에게 정치인으로서의 기본적인 자질을 의심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정치인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약하고 아픈 구성원들을 더 아프고 힘들게 만들 정치인일 것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c) 청원닷컴,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기사 제공자에게 드리는 광고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