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점] 장애아 살해 문화, 야만일까? 문화적 차이일까?
장애아가 태어나면 살해를 하는 문화가 있다. 명백한 야만일까? 혹은 이 또한 문화적 차이로 받아들여야만 할까?
먼 옛날의 얘기가 아니다. 아프리카의 기니비사우에서 실제로 행해지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얘기다. 이 나라에서는 장애로 태어난 아이를 이라(irã)라 부른다. 현지어로 영령 혹은 악령이라는 뜻이다. 장애로 태어난 아이는 ‘인간이 아니다’라는 인식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다.
이 나라에서는 흔히 불구나 장애, 뇌성마비, 간질 등을 갖고 태어난 아이들이 마법사의 악행을 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실제 불구나 장애가 아니더라도 불구나 장애처럼 보이는 아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들 장애인이 태어나면 특별한 의식을 치룬다. 아이를 바다에 데려간다. 이 때 쌀로 만든 볼이나 달걀을 같이 가져간다. 볼이나 달걀을 던져 바다에 떨어지면 그 곳이 원래의 악령이 되돌아가야 할 자리라 믿는다.
또 다른 방법은 창과 빛이 없는 방에 아이를 가두는 것인데, 결국 아이가 죽게 되면 그 아이는 당초 인간이 아니었으므로 자기가 가야 할 곳으로 되돌아 갔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문화의 탓인지 이 나라 성인 중에서 차지하는 장애인의 비율은 매우 낮다. 세계 평균이 약 15%인데 반해 이 나라는 남성 1%, 여성 2.7%의 낮은 수치에 머물고 있다.
물론 이런 문화가 순조롭게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아이를 지키려는 엄마와 나머지 가족간의 갈등이 흔히 노출되고 있다.
엄마가 아이를 지키는 방법은 대개 아이와 함께 가출하는 것이다. 가출하지 않고 아이를 지킨다 하더라도 나머지 가족들은 아이에게 이름도 지어주지 않고 출생신고 역시 하지 않는다. 공부를 안시키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 때문에 설사 죽음을 면하는 경우에도 장애 미성년자가 사회적 기본권을 누리기란 극히 어렵다. 여자 아이들에 대해서는 성폭력 등이 비일비재하고, 아이의 엄마가 생활하는 수단은 구걸이 거의 유일한 수단이 되고 있다.
몸에 이상이 있더라도 공공의료 서비스를 거의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대개는 전통 치료기법에 의존하게 되고 이것이 치료시기를 놓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76%의 아이들이 늦은 진단, 치료지연 내지는 비치료 상태에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국가는 이같은 관행을 금하고 있다. 하지만 의식 자체가 가족이나 부족 단위로 비밀리에 행해지는데다가 설령 사실을 알았다 하더라도 사실 자체를 감추는 문화로 인해 이를 증명하기란 극히 어려운 상태다. 보복을 두려워해 신고를 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문화에 대한 사회적 수용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탓에 사회 전반에 걸친 장애인 차별 의식도 심한 편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이 나라 부모의 83%가 장애자녀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갖고 있다. 의료나 건강 부문의 관계자들도 53%가, 교사는 68%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갖고 있다. 버려지는 유기아동의 80%는 장애가 그 원인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러한 관행은 야만에 가깝게 보인다. 하지만 기니비사우 사회 구성원들도 할 말은 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적 상황이다.
이 나라의 경제상황은 극히 열악하다. 지난 2019년 이 나라의 일인당 GDP(국내 총생산)은 700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다. 우리 돈으로 80만원도 채 되지 않는다. 오죽하면 기니비사우에는 우리나라 대사관이 없이 주 세네갈 대사관이 이를 대신하고 있을 정도다. 쿠데타와 내전이 이어지고 있고 마약 밀매가 성행하고 있다. 얼마 안되는 경제적 자원이랄 수 있는 목초지와 바닷가 어류까지 빠른 속도로 줄고 있어 극히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다.
이들에게 장애아의 출현은 장차 노동력에 보탬이 되지 못하는 부담스러운 가족 구성원이 늘어난 것일 뿐이다. 특히 엄마의 노동력까지 빼앗아가는 요인으로 간주될 수 밖에 없다. 거의 모든 가정은 엄마의 노동력까지 결합해도 한 가족을 유지하기 위한 경제력이 충분하지 못한 상태다. 결국 나머지 가족들을 살리기 위해 장애아를 희생시켜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논리가 이러한 문화의 이면에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이들에게 장애아를 버리는 일은, 사회 구성원들의 선택적 의지라기보다는 그들로서도 어찌할 수 없는 강요된 상황이라는 측면이 있다. 그들의 삶을 충분히 알지 못하면서 그들의 관행을 단지 야만이라고 치부해버리기가 쉽지 않은 이유다.
모든 문화가 어느 정도는 해당 사회 구성원들의 생존방식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 점에서 기니비사우의 장애아 살해문화는 적어도 문화가 지니는 양면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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