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왜 막장급 무정부주의자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나?
[기사 원고]
지난 12월 10일 취임한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대선기간 중 공약은 믿기 어려울 정도의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는 마약과 매춘을 개인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총기사용을 합법화하고 심지어는 장기매매까지 허용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자국의 중앙은행을 폐지하고, 달러를 법정통화로 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습니다. 이는 자칫 아르헨티나 헌법에 위배될 수도 있는 중요한 사안이지만,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그를 대통령으로 선택했습니다.
그는 대선기간 내내 극우적 성향의 포퓰리스트로 평가를 받아 왔습니다. 그는 1970년대 군부 정권의 인권침해 사례를 최소한으로 인정하고, 자유시장 원리에 입각한 정부 보조금의 철폐, 의료 및 교육시스템의 민영화 등 이른바 보수적 성향의 공약을 주로 내걸었습니다.
정부의 방만한 지출을 비판하면서, 공무원 인력을 줄이고 세금인상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대선후보로서 누구나 할 수 있는 공약입니다만,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공무원 급여를 매달 추첨제로 지급하겠다는 정말 엉뚱한 발상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낙태와 안락사에 대해서는 반대를 표명하면서도 동성결혼이나 개인의 성적 취향 내지는 정체성에 대해서는 선택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해, 다소 혼란스러운 가치관을 표출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로서는 종잡을 수 없는 대선후보였지만, 그는 2차 결선투표에서 55.7%의 득표율로 경쟁상대인 집권당의 세르히오 마사(Sergio Massa) 후보를 이겨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아르헨티나의 전체 24개 주 중 21개 주에서 이기는 압승이었습니다. 1차 투표에서 마사의 편을 들어주었던 페론주의 지지성향의 몇몇 주들까지 밀레이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이변이 발생했습니다.
대선에 출마할 때까지만 해도 흔한 말로 듣보잡이었던 밀레이 후보가 어떻게 이런 이변을 만들어 냈을까요? 이에 대해 몇가지 요인을 살펴봤습니다.
물론 누구나 짐작하는 것처럼 가장 중요한 것은 아르헨티나의 경제입니다. 현재 아르헨티나 인구의 약 40%는 빈곤층입니다. 아무리 경제가 어려워도 고기류와 농산물 생산이 풍족해 먹을 것만큼은 걱정이 없던 나라 아르헨티나에서 이제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하는 국민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물가상승률 역시 해마다 100%를 훌쩍 넘기는 만성적 스테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엘리트 층과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매우 커진 상태에 있었습니다. 국민들 사이에는 그들이 아르헨티나를 망친 주범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그런데 밀레이는 정치경력이 별로 없는 신인이었습니다. 이것이 밀레이에게는 오히려 강점이 됐습니다.
밀레이는 포퓰리스트답게 아주 강력한 사이다 발언을 자주 해왔는데, 이것 또한 그동안 욕구불만이던 아르헨티나 국민들을 자극했습니다. 그의 사이다 발언은 유치하기는 하지만 대중적 정서를 건드리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토론회에서도 그는 상대방을 거침없이 모욕합니다.
자국 출신인 프란치스코 교황을 일컬어 ‘지상에 내려온 악의 대리인’이라는 표현까지 쏟아냅니다. 이는 가톨릭 국가인 아르헨티나에서 신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만, 그의 사이다 발언은 대부분 이런 식이었습니다. 대통령 취임 후 그는 이 발언에 대해 사과합니다.
코비드일구 기간중, 정부의 락다운 정책에 대해 국민들의 불만이 컸습니다. 원래 아르헨티나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나라이기도 하고, 락다운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도 커졌던 탓이었습니다. 밀레이는 이 상황을 잘 이용합니다.
경제학자이자 대학교수였던 그는 수시로 TV에 등장합니다. 그리고 정부를 맹비난합니다. 그의 사이다 발언에 국민들이 환호합니다. 이에 힘입어 그는 2021년 의회진출에 성공하고 이것이 그가 정계에 내딛는 첫걸음이 됩니다.
그는 또한 아르헨티나 국민들 사이에 퍼져있는 반 페론주의 정서를 교묘히 자극했는데, 이 역시 그가 대선에 성공하는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상대방 후보를 ‘키르치네리즘(Kirchnerismo)’의 지지자로 몰아버립니다.
키르치네리즘은 2003년부터 2015년까지 키르치네르 부부가 번갈아 대통령을 하면서 시도했던 경제정책입니다. 노동자 계급의 권익을 중시하고 분배를 우선시하는 좌파 계열의 정책이랄 수 있습니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이 정책을 페론주의의 변형된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페론주의는 간단히 말씀드리면 1946년부터 1955년까지 후안 도밍고 페론 대통령이 실시했던 경제정책입니다. 높은 수준의 최저임금 보장과 노동시간 단축 등을 통해 노동자의 권익을 크게 중시하고 분배에 초점을 맞추었던 정책입니다. 이 정책으로 한 때 아르헨티나는 경제가 안정되고 성장이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국제 농산물 가격의 하락과 공산품 수입대체 정책의 실패등이 맞물리면서 페론주의는 위기에 처합니다. 그 후 쿠데타로 페론 대통령이 실각하게 되는데요, 이 때부터 군부 쿠데타 세력은 자신들의 경제적 실패가 있을 때마다 이를 페론주의 탓으로 돌려왔습니다. 말하자면 기-승-전-페론주의, 이랬던 것이죠.
오랫동안 페론주의는 실패한 정책이라는 점을 부각시켜왔던 탓에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큽니다. 하필이면, 페론주의와 궤를 같이했던 키르치네리즘이 실패로 끝나면서, 아르헨티나 국민들 사이에는, 페론주의와 키르치네리즘을 경제적 어려움과 연관시키는 정서가 있었습니다. 밀레이는 이 점을 이용했습니다.
선거 당시 여당 대통령인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역시 페론당으로 일컬어지는 정의당 출신입니다. 그의 정책 또한 다분히 페론주의와 ‘키르치네리즘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이 정권의 경제부 장관이던 마사는 상당히 중도적인 입장을 갖고 있었습니다만, 밀레이의 사이다 발언에 밀려 ‘키르치네리즘’이라는 패러다임에서 도저히 헤어나오질 못합니다. 밀레이의 전략이 잘 맞아떨어진 것입니다.
여기에 마우리시오 마크리(Mauricio Macri) 전직 대통령의 지원이 결정적이 쐐기를 박습니다. 마크리 전직 대통령은 ‘변화를 위해 함께(Juntos por el Cambio)’라는 정당간 연대를 결성한 사람입니다. 페론주의의 정의당과는 대척점에 서 있는 정당연합이었습니다.
원래 밀레이의 입장은 양쪽 모두를 비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아르헨티나에서 우파와 좌파가 번갈아 정권을 잡아 왔으니까요.
하지만 1차 투표에서 ‘변화를 위해 함께’ 정당연합의 파트리시아 불리치(Patricia Bullich) 후보가 낙선하자 마크리는 밀레이를 지지선언합니다. 1차 투표에서 7% 포인트 가량 뒤졌던 밀레이 후보는 마크리의 지지선언을 받아들입니다. 일부 지지자들의 불만이 있기도 했지만 역시 이 결합은 주효했습니다. 아르헨티나 보수층에 대한 마크리 전직 대통령의 영향력이 큰데다가, 이로써 2차 투표를 자유주의냐 혹은 키르치네리즘이냐의 양자택일 구조로 단순화시켜버렸기 때문입니다.
마크리 전직 대통령은 조직적인 면에서도 밀레이에게 힘이 됩니다. 무엇보다도 선거 당일 꼭 필요한 선거감시 인프라를 제공하고, 이로써 밀레이의 승리에 쐐기를 박는데 기여합니다.
이 밖에도 성공한 주변국가의 극우 정치인들, 예를 들면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브라질의 볼소나로 대통령을 밀레이가 효과적으로 벤치마킹 했다는 분석들도 나오고 있습니다만, 그 효과가 얼마큼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판단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는 지금 아르헨티나의 새로운 대통령으로 취임했습니다. 작은정부주의자, 심지어는 무정부주의자라고까지 일컬어졌던 그가, 향후 아르헨티나의 경제를 되살릴 수 있을지는 지금부터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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