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소통을 막을 수 없다 – 자신들의 오프라쇼를 지켜낸 파키스탄 여성들
| 가난은 소통을 막을 수 없다 – 자신들의 오프라쇼를 지켜낸 파키스탄 여성들 |
최근 파키스탄에서 자신들의 소통채널을 지키기 위한 여성들의 기금모집이 성공리에 이루어짐으로써 여러 가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소통창구를 지키기 위한 가난한 여성들의 기금모집
31세 여성 칸월 아메드(Kanwal Ahmed)씨가 진행하는 파키스탄의 ‘칸월과의 대화(Conversations with Kanwal, 이하 CWK) 프로그램’이 바로 그것. 파키스탄의 ‘파키스탄 투데이’지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이 시즌2에 이어 시즌3을 이어나가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칸월씨는 기금모집을 단행했는데, 당초 예상을 깨고 지난 11월말 현재 560만파키스탄루피(약3850만원)을 넘어섰다. 이로써 시즌3의 진행이 가능하게 됐다.
기금모집은 대부분 여성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데 파키스탄 여성들의 고용률은 30% 미만으로 극히 열악한 상태이다. 여성들 대부분 자신의 계좌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현금거래를 하거나 혹은 남편과 공동명의 계좌를 갖고 있는 정도이다. 경제력이 남편들에게 극히 의존적인 상황을 감안하면 이같은 모금은 매우 놀라운 성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금기를 깬 여성들의 전용 소통창구
CWK는 주로 여성들만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특히 파키스탄 여성들이 견디고 있는 가정폭력, 가난, 낙태, 산후 우울증, 한부모가정, 의붓자녀, 여성교육, 지참금, 강간 등의 주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파키스탄 여성들에게 금기시되어 왔던 섹스에 관한 것들을 거리낌없이 다루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지난 해 4월 페이스북으로부터 5만달러의 지원을 받아 시즌 1을 시작했다. 시즌 1이 1500만뷰 이상에 달하는 등 성과를 보이자 시즌 2는 기업들의 협찬을 받아 진행이 이루어졌다. 샨 푸즈(Shan Foods)와 케우네 헤어코스메틱스(Keune Haircosmetics)와 같은 파키스탄으로서는 대형 스폰서의 참여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번 주 시작되는 시즌 3을 앞두고, 스폰서 기업들이 난색을 표명했다. 프로그램이 매우 하드한 탓에 기업들이 자신들의 제품컨셉과 잘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던 것. 화장, 미용, 세탁 등과 같은 소프트한 내용을 함께 다루어줄 것을 칸월씨에게 요청했다. 하지만 칸월씨는 이러한 내용들이 프로그램의 지향점을 해칠 수 있을 것이라 판단, 받아들이지 않았다.
칸월씨는 지난 해 파키스탄 슬럼가에서 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일일체험을 했다. 사진은 체험 중 인터뷰장면
일각에서는 프로그램이 난잡하다느니 행동이 거칠다느니 하는 이유로 비난이 일었다. 다루는 주제들이 사회적 논쟁을 유발하는 것들이어서 기업들이 느끼는 부담도 컸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코로나의 여파가 겹치면서 기업들의 협찬은 사실상 어렵게 됐다.
KickStarter 기금모집에 성공
상황이 여의치 않자 칸월씨가 직접 기금 모집에 나섰다. 당초 예상을 깨고 여성들의 후원이 잇달았다. 특히 18세에서 35세 사이의 젊은 여성들의 후원이 다수를 이루었다. 작게는 몇 루피에서 많게는 몇천 달러를 기부한 여성도 있었다.
칸월씨는 한 때 신부화장 아티스트로 일을 했는데,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많은 여성들과 얘기를 나누게 됐고, 적지 않는 조언을 해왔다. 특히 섹스 문제나 남편쪽 가족과의 갈등 등에 관한 조언이 많았다, 이 과정에서 결혼을 앞둔 신부들이 정보에 막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섹스 문제와 관련, 언급 자체를 금기시하고 부끄러워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섹스에 관한 한 결혼 첫날 밤이 관련된 모든 경험과 정보를 갖게 되는 처음인 경우가 다수였다. 섹스, 신체적 권리, 피임 등에 대해 무지한 여성들이 상당했다.
7년 전 칸월씨는 소울 시스터즈 파키스탄(Soul Sister’s Pakistan, 이하 SSP)라는 포럼을 열게 된다. 여성전용의 이 포럼은 파키스탄 여성들이 보복 우려 없이 그동안 논의에서 금기시돼 왔던 가정폭력 등의 문제를 논의할 수 있던 장소가 됐다. 자신들을 술리(Soulies)라고 부르는 적극 지지층이 25만에 달할 정도로 호응이 컸다.
포럼이 반응을 일으키자 칸월씨는 지난 2016년과 2017년 두 차례에 걸쳐 파키스탄 매체에 공식적인 프로그램 제작을 제안했으나 모두 거절됐다. 청취자들도 없을 것이며 여성문제를 주로 다루는 프로그램에 광고할 기업도 없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페이스북의 협찬을 받아 유투브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CWK를 시작할 수 있었다. CWK로 칸월씨는 파키스탄의 오프라(Oprah)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파키스탄은 여성들이 스마트폰으로 자기 자신의 사진을 찍는 일 조차도 금기될 정도로 여성들에게 갇힌 사회이기도 하다. 이번 기금모집 성공은 가난하고 닫힌 사회의 여성들이 갖는 소통욕구가 부유하고 열린 사회의 여성들의 그것과 하등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다. 이 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는 사건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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