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힘 고쳐쓰기, 어디까지? (상)
진보와 보수는 상대적 개념이다. 진보의 개념이 혼동스러울 때가 있는 것도 이 탓이다. 흔히 국민의 힘(이하 국힘당) 지지자들은 보수, 더불어 민주당(이하 민주당) 지지자들은 진보라 일컬어지지만, 꼭 정확한 표현만은 아니다. 특히 민주당 지지자들 중에서 자신을 진보가 아닌 보수, 우익, 혹은 중도라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이전의 통합진보당이나 정의당의 입장에서 보면 민주당은 국힘당과 그닥 큰 차이가 없는 보수정당일 뿐이다.
자신을 보수, 혹은 중도라 생각하는 민주당 지지층이 국힘당으로 대거 옮겨가는 일이 가능할까?
이런 조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문재인 대통령 지지층 중에서, 특히 이낙연 전 대표 지지자들 중 상당수가 국힘당 대선후보에 투표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낙연 전 대표가 민주당 후보로 선출되지 못한 데에 따른 일부만이라기보다는 무더기 이탈 조짐을 보이고 있어,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질 만 한 상황이다.
최근 국힘당 윤석렬 후보가 트윗 계정을 개설하자 단 하루 만에 2000여명 이상의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이 팔로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른바 스스로를 문파라고 부르는 이들은 단순히 윤 후보의 계정을 팔로하는데 그치지 않고, 윤 후보의 좋은 점을 부각시키려 애쓰고 있다. ‘착즙’이라는 용어를 써가면서, 윤후보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끌어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는 국힘당 지지자가 될 수 있을까? 언제부터인가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 중 일부가 “민주당을 고쳐쓰느니 국힘당을 고쳐 쓰는게 빠르겠다”는 자조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말 이들 문파들이 ‘국힘당 고쳐쓰기’ 세력으로 재부상할 가능성이 있기는 한 것일까?
역사적으로 보수와 진보 세력의 지지정당이 뒤바뀌는 경우는 존재해왔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의 경우다. 미국의 흑인 노예해방을 이끌었던 링컨 대통령은 민주당이 아닌 공화당 출신이었다. 이 때까지 민주당이 남부 농업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보수 정당이었다면 공화당은 북동부 공업지역을 기반으로 하면서 노예해방을 주창했던 진보적 정당이었다고 볼 수 있다.
공화당은 노예해방을 이끌었던 링컨 대통령이 암살된 다음 해인 1969년 백인과 흑인의 동등한 법적 권리를 규정한 제 1차 민권법을 정식으로 통과시켰다. 이를 기반으로 그 후 약 50여 년 동안 진보적 입장에 서서 미국 정치를 이끌어 나갔다. 반면 민주당은 여전히 보수적 남부 농민들의 지지로 의석을 유지하면서 공화당과 대립해왔다.
1929년 미국 경제 대공황이 발발하고, 이의 여파로 1933년 대선에 성공한 민주당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국가 주도의 경제정책을 실행에 옮기면서 민주당은 조금씩 진보적 색채를 띠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기는 해도 그 기반은 여전히 보수층이었으며 그 후 30여년 동안 미국 정치를 주도해왔다. 1961년까지 공화당 출신 대통령은 전쟁영웅 아이젠하워가 유일했다.
1964년 존슨 린든 대통령이 제 2차 민권법을 통과시키면서 공화당과 민주당의 정치적 지지층이 완전히 뒤바뀌는 계기가 됐다. 그러지 않아도 점차 진보적 색채를 띠던 민주당에 불만을 갖고 있던 전통적 지지층, 즉 남부 백인들이 공화당 쪽으로 완전히 돌아서면서 그 후 40여년동안 공화당이 미국 정치를 장악하다시피 하게 됐다. 1969년부터 2009년까지 40여 년 동안 민주당 대통령은 재선에 실패했던 대통령 지미 카터의 4년 기간이 유일했다.
공화당 주도의 정국이 지속되는 동안 민주당의 지지층에도 변화가 생겨났다. 먼저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층이던 흑인층들이 민주당 쪽으로 돌아섰다. 물론 2차 민권법의 영향이 컸다. 흑인뿐 아니라, 미국 인구구성의 상당수를 이루고 있는 히스파닉계를 비롯한 소수 인종 그룹의 지지도 늘어났다. 노동자 계급도 민주당 쪽으로 줄을 섰다.
공화당 지지층과 민주당 지지층의 세력이 점차 균형을 이루면서 마침내 1993년 민주당 출신의 빌 클린턴이 대통령 자리에 올랐고, 그후 공화당과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 번갈아 가며 뒤바뀌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지난 2009년 민주당 출신이자 흑인이었던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은 양당간 지지층이 확고하게 뒤바뀐 역사적 현실을 실감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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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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