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언어의 다양성, 인류 문명은?
지구상 언어의 갯수가 줄어들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사라져가는 언어의 다양성은 인류가 방관하고 있어도 괜찮은 현상일까? 혹은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어떤 것일까?
현재 지구 상에는 약 6,000에서 7,000개 사이의 언어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갯수를 정확히 헤아리기는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비슷한 두 언어 중 하나를 다른 하나의 방언으로 봐야할지, 혹은 다른 언어로 봐야 할지 구분하는 일부터 간단치가 않다.
군도가 많은 나라들은 많은 다양한 언어들을 갖고 있다. 각 섬마다 각기 다른 부족 언어들을 사용하는 경우들이 많다. 이들 언어간에는 서로 유사하면서도 다른 것들도 많다. 사실상 통용되는 언어 개수를 정확하게 구분해내기 어려운 이유다.
이런 까닭인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언어를 갖고 있는 나라는 놀랍게도 파푸아뉴기니이다. 지난 2020년 기준으로 인구 880만명에 불과한 이 나라는 무려 840여개의 언어를 갖고 있다. 다음으로는 인구 2억7천여만명의 인도네시아이고, 뒤를 이어 나이제리아와 인도 순이다. 미국은 다섯번째이고, 인구 14억의 나라 중국은 309개의 언어로 일곱번째이다.
조사에 따라 세계 언어의 갯수 추정치는 다르지만 대략 6,000에서 7,000 정도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그리고 그 갯수가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다는데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연간 20-30개의 언어들이 소멸하고 있다는 설명들도 있다.
언어 갯수의 감소추이는 불가피한 현상으로 판단된다. 가장 큰 원인은 글로벌화이다. 글로벌화 되어감에 따라 서로 다른 언어권간의 의사소통에 언어는 점차 주요 언어로 한정될 수 밖에 없다. 중국어와 영어, 스페인어등 가장 많은 인구가 사용하는 언어들이 중요시되는 경향은 피할 수 없다. 인터넷상에서 원할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언어만 하더라도 그 수가 한정되어 있다.
소수민족의 문화에 대한 억압 내지는 차별 또한 언어 다양성의 소멸에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원주민들에 의해 다양한 언어가 구사되던 미국 지역만 하더라도 영어가 보편적인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자리잡으면서 수백개의 언어가 사라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미국 지역에서 남아 있는 언어의 수는 약 100여개이지만, 상당수는 오래지 않아 그 수명을 다할 것이라는 전망들이 많다.
1970년대까지 원주민 언어사용을 금지했던 호주에서도 역시 수백개의 언어가 사라졌고, 한 때 1400여개의 언어를 갖고 있으면서 언어의 창고라 불리던 아프리카 역시 부지기수의 언어들이 쇠퇴 일로를 걷고 있다.
중국 역시 일체성을 강조하는 최근의 시류에 따라, 빠른 속도로 소수 언어들이 사라지고 있다. 최근 영국의 더 가디언지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만다린이라 불리는 중국 표준어는 10년전까지만 하더라도 전체 중국인들의 70%에 의해 통용됐으나 최근에는 80% 이상으로 그 비중이 커졌다. 중국 정부는 얼마 전 이 수치를 향후 4년 이내에 85%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장담한 바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중국 각 지방 고유의 방언들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중국은 현재 위성 TV 채널에서 지방 언어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철저하게 중국 표준어 사용정책을 구사하고 있는 셈이다. 학교에서도 표준어 사용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지난 2016년 내몽고 지역에서는 학교에서 내몽고 지역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정식으로 허락된 바 있다. 하지만 4년 후에는 다시 표준어 사용 원칙으로 회귀했다.
지난 2000년 중국은 구어와 문어를 표준화하기 위한 법안을 통과시켰는데, 이 법안에 따르면 각 지방정부는 언어 위원회를 두고 이 곳에서 표준어 사용에 대해 자문, 감시, 정책개발 등을 하도록 되어 있다. 중국 사천 지방의 경우 공무원이나 공산당원에게 지방 방언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지시키고 있는데, 이 지역의 방언은 한 때 등소평이 국영 TV에 출연하여 사용했던 언어이기도 했다.
2017년 한 조사 결과는 이같은 중국의 언어사용 방침에 따른 여파를 잘 보여주고 있다. 상해의 방언을 포괄하는 중국 우어(吴语)의 경우 아직까지 8천만명 정도가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연령층 분포에서는 6세와 20세 사이의 사용자가 가장 적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소멸 과정 중임을 드러내고 있다.
소수 언어 사용자들의 노령화와 소멸 역시 언어 다양성을 방해하는 요소 중의 하나다. 젊은 층들은 더 이상 소수언어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고, 결과적으로 사용중인 노령층의 소멸은 그 언어의 소멸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소수 언어 사용자들의 노령화 추세를 감안하면 보름에 하나씩 언어가 사라지거나, 200년 안에 6천여개의 언어가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소수 언어의 소멸이 부정적인 요소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방대한 언어권을 가진 중국의 경우만 하더라도 언어 표준화 정책이 주는 잇점들이 확실히 존재한다. 가령 중국 상해의 경우 한 때 상해 지역언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층들은 차별을 받거나 일자리에서 제외되기 일쑤였다. 상해 지역언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부유층들이 많아진 지금, 이런 차별은 옛 얘기가 되고 있다. 특히 옳고 그름을 떠나 하나의 국가를 강조하는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표준적 언어의 사용은 이를 도와주는 훌륭한 매개체다.
물론 언어학자들의 우려는 크다. 무엇보다도 언어 표준화 자체가 소수 민족의 문화에 대한 억압의 발로라는 견해들이 많다. 캐나다에서 한 때 어린 학생들을 강제로 기숙학교에 거주시키면서 그들의 언어 대신 영어를 사용토록 강요했던 일이 그 좋은 사례다. 중국의 경우도 위구르 지역에서의 표준 중국어 사용 정책은 결국 이들 문화를 중국의 문화와 가장 효율적으로 융합시키기 위한 수단이 되고 있다.
언어는 각 문화권이 처한 위치나 환경등에 따라 각기 다르게 발달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언어와 문화를 완전히 분리해서 생각해내기란 쉽지 않다. 사막지역에서는 낙타에 관한 어휘가 풍부한 반면, 에스키모인들에게는 눈과 관련한 어휘가 유달리 발달해 있는 것은 언어와 환경이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우리말의 경우도 나박김치, 총각김치, 갓김치, 동치미, 김칫국물 등 김치와 관련된 수많은 어휘들을 국제 공용어랄 수 있는 영어로 모두 표현해내기는 쉽지 않다.
투반어를 사용했던 시베리아 출림족의 경우 언어의 단절로 문화의 단절이 일어난 대표적 사례다. 조상들이 사용했던 투반어에는 그들 나름의 사냥법이나 날씨 점치는 방법, 약초 재배법과 같은 어휘들이 풍부했다. 1700년대부터 출림어 대신 러시아어를 사용하게 되면서 조상들의 이같은 생활방법은 후손들에게 모두 잊혀진 얘기가 됐다.
결국 언어의 다양성을 잃어버리는 일은 생활방식의 다양성을 잃는 것과 동의어라는 견해들이 많다. 그리고 다양한 생활방식의 소멸은 인류가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들 역시 그만큼 줄어들고 있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지구촌 이웃간의 거리가 점차 가까워지면서 국제어와 공용어가 가지는 효용성과, 이에 부수하는 언어 다양성의 소멸은, 인류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해결과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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