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방지법 vs 언론의 자유
미국에는 이른바 스파이 방지법(Espionage Act)라는 것이 있다. 자국에 해를 입힐 목적으로 국방 정보를 저장, 혹은 복제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다. 그런가 하면 투옥될 가능성을 마다하지 않고 이 법을 정면으로 위배한 90세 노인이 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앞세워 미국의 국방 비밀문서를 공개적으로 폭로한 대니엘 엘스버그(Daniel Ellsberg)씨에 관한 이야기다.
대니엘 엘스버씨는 두 차례에 걸쳐 국방 비밀문서를 일반에게 공개했다. 첫 공개는 1971년에 이루어졌고, 40년 이상이 지난 2017년에 또 한차례 공개가 이루어졌다. 더 많은 비밀문서를 공개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1971년 비밀문서는 언론에 공개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를 위해 그는 1969년 말부터 몇 주에 걸쳐 문서들을 복제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서들은 기밀문서로 분류된 것 들 중 일부였는데 주로 미국의 베트남 전쟁 개입정도에 관한 것이었다.
2017년의 공개는 전체문서를 온라인에 공개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문서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문서에는 1958년 제 2차 대만해협 위기시 미국 군사 수뇌부들이 중국 본토에 핵무기를 사용하는 방안을 강력하게 추진했었던 것으로 되어 있다.
충격적 내용의 문서가 공개됐음에도 불구, 이 문서는 일반인들의 관심을 크게 끌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달 뉴욕타임즈가 이 내용을 분석, 보도함으로써 당시 핵전쟁의 가능성이 상당했었음이 드러났다.
문제는 이같은 폭로가 미국의 스파이 방지법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1917년 제 1차 세계대전에 개입하면서 이 법을 제정했다.
실제로 엘스버그씨는 1971년 문서를 폭로하기 직전 이 법에 따라 재판에 넘겨졌다가 기각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재판에서 엘스버그씨는 그의 문서공개가 공익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입증하지 못했다. 공익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법원이 어떠한 것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엘스버그씨는 이를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공익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주된 이유는 스파이 방지법 자체에 공익과 관련한 어떠한 면책조항도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엘스버그씨는 자신과 같은 내부 폭로자들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엘스버그씨는 오히려 자신이 재판에 넘겨지기를 바라고 있다. 이 법안의 정당성에 대해 제대로 다투어보고 싶다는 것이다. 자신의 형량을 줄이기 위한 플리바겐(plea bargain) 등과 같은 것은 하지 않겠다고 단언할 정도다. 공익을 위한 폭로에는 스파이 방지법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주장이다.
미국의 언론은 스파이 방지법에 대해 부정적이다. 양심적 언론의 자유가 스파이 방지법보다 우선이고, 이것이 미국의 헌법정신에 더 부합한다는 주장이다. 언론의 입장에서는 당연할 수 밖에 없다.
미국 법원 역시 언론의 자유 쪽에 더 손을 들어주는 편이다. 아직까지 스파이방지법과 관련된 사건이 대법원까지 올라간 사례는 없다. 대개 지방법원에서 마무리되곤 하는데, 이는 지방법원들이 언론의 자유 쪽으로 좀 더 무게를 두어 판결을 내리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엘스버그씨가 자신을 법정에 세워달라고 주장하는 반면, 미국 백악관은 오히려 침묵하고 있는 편이다. 백악관이 나설 경우 비밀문서의 내용이 언론의 조명을 받게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백악관에 좋을 것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90세의 나이로 투옥될 가능성에 대해 엘스버그씨의 입장은 단호하다. 두렵지 않다는 것이다. 핵전쟁의 위험과 같은 것은 국민들이 당연히 알아야 할 사항이고 이를 위해 자신의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며, 스파이 방지법과 같은 법으로 이를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아직 투옥되지 않은 것은 운이 좋은 것이지만, 다른 내부고발자들의 처지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 기밀의 유지라는 국익이 먼저일까? 국가기밀이라 하더라도 국민이 마땅히 알아야할 내용을 알리는 일이 먼저일까? 엘스버그씨의 폭로와 이를 둘러싼 향후의 전개과정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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