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차 중동전쟁? 글쎄?
먼저 이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인해 숨진 모든 분들에게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또한 이번 전쟁으로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상처를 입고 다치신 모든 분들의 빠른 회복을 기원합니다.
팔레스타인이든, 이스라엘이든, 그 어느 나라의 사람이든, 생명은 숭고합니다. 더 이상 무고한 생명이 해쳐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마스가 이번 전쟁을 시작한 일차적 동기에 대해서는 많은 전문가들의 판단이 일치합니다. 잊혀져가는 팔레스타인의 처지를 중동국가들에게 다시 한 번 각인시키려 했다는 것이죠. 더 나아가, 중동국가들과 이스라엘 간의 전쟁, 즉 제 5차 중동전쟁을 유발할 수 있으면 하마스로서는 최고의 목표달성이라는 것입니다.
하마스의 생각대로, 제 5차 중동전쟁은 가능할까요? 지금 분위기라면 당장에라도 이번 전쟁이 크게 번질 것만 같습니다. 이스라엘의 지상군이 가자에 진입하고, 중동의 국가들 뿐 아니라, 서방의 국가들까지 한꺼번에 참여하는 대규모의 전쟁이 시작될 것 같아 보입니다.
어느 누구도 세상의 일을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이번 전쟁이 제 5차 중동전쟁으로 확대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판단을 해봅니다. 물론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그동안 이스라엘과 다른 중동국가들은 크게 네차례의 전쟁을 치루었습니다. 그리고 크고 작은 분쟁내지는 전쟁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큰 전쟁은 지난 1973년에 있었습니다. 벌써 50년 전, 그러니까 반세기 전의 일입니다. 그동안 중동국가 사람들의 생각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사실은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1948년 1차 중동전쟁 때, 이스라엘 전쟁에 참여한 중동국가들의 입장은 어찌보면 종교적 입장에서 매우 순수했습니다. 말하자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자신들의 무슬림 형제로 생각하는 형제애가 전쟁 참여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습니다. 이는 무슬림의 역사적 전통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의 건국을 절대로 두고 볼 수 없다는 종교적 신념이 매우 강했습니다.
제 4차 중동전쟁 이후 이 지역은 서서히 변화합니다.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거래가 늘고, 그들 스스로도 상당 부분 자본주의화 합니다. 한 때 절대악이던 미국은 이제 그들의 경제파트너가 됩니다. 알게 모르게 중동 국가들은 많이 서구화됩니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오로지 종교적인 관점에서 보았던 예전과는 달리, 이제 중동국가들도 자신들과의 이해관계 속에서 팔레스타인 문제를 보기 시작합니다. 나에게 아무런 이익이 없다면, 이제 그런 전쟁은 피하고 싶습니다.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는 이스라엘은 그동안 한편으로는 팔레스타인을 고립시켜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아랍 국가들과 관계를 개선하는 이중 전략을 구사해 왔습니다.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가 개선될수록 팔레스타인의 고립화은 정착되고 자신들은 또한 안정된 체제를 유지해나갈 수 있으니까요. 이 점에서 그간 이스라엘의 정책은 매우 영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79년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평화조약을 맺고 외교관계를 수립합니다. 그동안 적대적이었던 중동의 아랍국가와는 첫 수교입니다. 이보다 앞서 1977년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이 이스라엘 의회에서 연설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 일은 팔레스타인이나 다른 아랍 국가들로서는 엄청난 충격이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사다트 대통령은 1981년 이슬람의 지하드 세력에 의해 암살됩니다.
15년 후인 1994년 이스라엘은 다시 요르단과 평화협정을 맺고 외교관계를 수립니다. 그리고 한 동안은 주춤합니다. 하지만 물밑으로 이스라엘은 중동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맺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합니다.
2020년에는 이스라엘의 외교정책이 드디어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바레인, 아랍에미리트와 동시에 외교관계를 수립합니다. 아프리카 국가군에 속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스라엘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모로코, 수단 등과도 같은 해에 외교관계를 수립합니다.
이미 많이 알려진 것처럼 올해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외교관계를 추진해 왔습니다. 미국이 중재를 했죠.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 국가들의 맏형과 같은 나라입니다. 하마스로서도 이것은 도저히 두고만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일단은 하마스의 의도대로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외교수립이 이번 전쟁의 여파로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점점 더 많은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이유는 하나 밖에 없습니다. 자국에게 이익기 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팔레스타인은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자국의 이익만큼은 아닌 것이죠.
가자지구와 일부 국경을 맞대로 있는 이집트는 전쟁이 발생하자, 국경 출입로를 봉쇄했습니다. 이집트와 가자지구가 통하는 출입로는 두 개입니다. 하나는 사람이 오가는 곳이고 다른 하나는 구호물자 등이 오가는 곳입니다. 이집트의 국경봉쇄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바깥 세상과의 완전한 차단을 의미합니다. 지금은 구호물자만이 이 출입로를 통해 팔레스타인에 반입되고 있습니다.
이집트로서도 사정은 있습니다. 이미 이집트에는 30여만명 가까운 난민들이 있습니다. 수단, 시리아, 이집트, 소말리아, 예맨 등 대상국가들도 다양합니다. 여기에 국경을 열면 한꺼번에 쏟아져올게 분명한 팔레스타인 난민까지 감당하기는 어렵다는 것이죠. 가자지구의 상황이 어떠하든 자국의 이해관계가 더 중요합니다.
시리아는 10년 넘게 내전의 혼란속에 있습니다, 이곳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와 쿠르드 민병대, 인근 국가인 튀르키에, 그리고 미국, 러시아 등 여러 세력들이 다양한 이해관계로 얽혀있습니다. 생각만해도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언감생심 가자지구에 대해서는 신경쓸 겨를이 없습니다.
아랍에미리트는 이스라엘과 이제 거의 친구가 된 듯 싶습니다. 지난 2021년 아랍에미리트는 미국으로부터 5세대 전투기인 F-35를 수입하려 한 적이 있습니다. 이 계약은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반대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미국 측이 아랍 에미리트로 하여금 화웨이 기술도입 중단을 요구한 것이 발단이었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은 이 계약을 묵인했습니다. 더 이상 아랍 에미리트를 위협국가로 보지 않는다는 판단이 깔려 있었던 것이죠. 그러니 아랍 에미리트 역시 이번 전쟁에 개입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레바논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레바논에는 헤즈볼라가 있습니다. 헤즈볼라는 레바논의 정규군보다 전투력이 더 강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레바논으로서는 헤즈볼라가 견제의 대상일 뿐 중동전쟁에 함께 힘을 합할 대상이 아닙니다.
요르단은 그렇지 않아도 이미 1970년에 자국 영토로 몰려오는 팔레스타인인들과 갈등을 빚은 적이 있습니다. 결국 그해 9월 요르단과 팔레스타인은 무력충돌을 빚게 됩니다. Black September로 불리는 사건입니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요르단측에 필요한 군사정보를 제공하는 등 여러 가지 도움을 주었던 전력이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외교관계가 성립하게 된 단초였죠. 요르단 역시 이스라엘과 직접적인 전쟁을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른 외교수립 국가인 바레인도 직접적인 전쟁참여를 꺼리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이 이스라엘 편을 들면 러시아가 반대 편에서 개입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어떨까요? 글쎄요? 일단 러시아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러시아에는 많은 유대인이 살고 있습니다. 2021년 기준 8만3000명 정도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단일 민족으로서는 작지 않은 수치입니다.
게다가 러시아는 이미 한 차례 유대인을 크게 탄압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러시아의 포그롬입니다. 러시아의 포그롬은 러시아 내의 유대인에 대한 대대적인 학살 내지는 탄압 사건을 말합니다. 러시아로서는 흑역사죠. 또 다시 유대인을 상대로 전쟁을 한다는 것은 부담이 큽니다. 게다가 러시아는 지금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입니다. 현실적으로도 전쟁참여가 어렵죠. 러시아로서는 전쟁보다는 중재를 먼저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은 중동전쟁보다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이기는 것이 더 급합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생각보다 잡히지 않고, 그런 탓에 고금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장기국채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중동전쟁이 본격화되어 고유가가 지속되면, 미국은 점차 수렁으로 빠지는 기분일 겁니다. 게다가 내년에는 대선을 앞두고 있습니다. 바이든으로서도 어떻게든 전쟁을 막아야 할 상황입니다.
게다가 지금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진행중입니다. 아무리 미국이라지만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면서 중동전쟁까지 끼어들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동안 미국은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외교수립에 공들 들여 왔습니다. 중동전쟁이 본격화하면 두 나라의 외교수립 가능성은 희박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미국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는거죠. 그렇지 않아도 중동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거의 유일하게 개입가능성이 높은 나라는 이란입니다. 이란은 가장 강력한 하마스 지원국가입니다. 이번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에 이란의 자금지원설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주장에는 아직 뚜렷한 근거가 없습니다. 미국의 경제제재로 그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던 이란은 2020년부터 조금씩 회복 단계에 이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국내 총생산은 지난 2012년 수준에 비해 여전히 반토막 신세입니다.
게다가 이란은 혁명 이전의 세대와 이후의 세대가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혁명 이전 팔레비 왕조에서 이란은 친미국가였고, 때문에 당시 이슬람 국가로서는 매우 개방적이었습니다. 혁명 이후 이란은 매우 빠르게 보수화되었습니다. 여성들에 대한 차별도 심해졌죠. 이런 점은 젊은 세대들에게 매우 불편합니다. 세계 어느 나라나 다 비슷하지만 이란의 젊은 세대들도 종교적, 정치적 이념보다는 현재 자신의 삶을 더 소중히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란이 본격적으로 전쟁에 참여하려면 국민 세대간의 갈등 역시 감수해야 합니다. 이래 저래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이 본격화하면, 이스라엘에 엄포를 놓거나, 기껏해야 제한적인 지원을 계속할 수는 있겠지만, 전면전을 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자신입니다. 당사자인 이스라엘은 본격적인 중동전쟁을 원할까요?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번 하마스의 공격을 받아 이스라엘로서는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습니다. 게다가 자국 국민들이 무더기로 인질로 잡혀가는 초유의 사태를 맞게 됐습니다. 이스라엘 정부로서는 좋던 싫던 팔레스타인에 본격적인 공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됐습니다. 분노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뭔가 보여줘야 하니까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지상군 투입을 결정했습니다만, 사실 고민은 많습니다. 여러 전문가들이 예견하는 것처럼, 가자지구에서의 지상전은 이스라엘로서는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지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공습과 시가전은 확실히 다릅니다. 가자지구는 하마스의 영역입니다. 이스라엘로서도 상당한 희생을 각오해야 합니다. 가자에는 하마스가 준비한 지하통로가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그 길이만도 300킬로미터 이상일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미국이 베트남이나 아프가스탄에서 치루었던 희생을 이스라엘 역시 각오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이스라엘로서도 자신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흔히 지적되는 것처럼, 시가전의 과정에서 민간인의 희생은 피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하마스의 이스라엘 민간인 학살에 대한 비난의 소리가 높습니다만, 가자지구에서 민간인 피해가 나기 시작하면, 그 방향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에 하마스에 인질로 잡혀있는 자국 국민들도 생각해야 합니다.
시간을 오래 끌수록 불리한 처지이기 때문에, 이스라엘로서 가장 효율적인 지상군 투입 전략은 빠르고 강력한 침투와 조속한 마무리 철수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상대로 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결국 이 지역에서 전면전을 가장 바라고 있는 것은 하마스 뿐입니다.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은 하마스가 원하는 대로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전쟁이 확대되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겠죠.
하지만 하마스의 계획이 잘 맞아떨어질지는 의문입니다. 모두가 목소리를 내지만, 정작 어느 누구도 전쟁에 직접 개입하기는 원하지 않으니까요.
4차 중동전쟁 이후 50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이제 중동의 국가들도 종교적 신념이나 이념보다는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먼저 생각하게 됐습니다. 게다가 50여년 전의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들에게,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감도 그만큼 덜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각자가 이해관계를 따지고 계산에 빠져 있는 지금, 제 5차 중동전쟁은 쉽지 않을 것이라 조심스럽게 전망해 봅니다.
지금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겪는 설움은 그들에게 힘이 없기 때문이라는 세계적 석학 촘스키의 언급은 이런 점에서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미국과 유럽의 국가들은 물론, 형제라 불리는 중동의 국가들 역시 힘이 없는 팔레스타인을 돕는 일보다는 내가 잘먹고 잘 사는 일이 더 우선입니다.
다만 한가지, 지금 절대적 힘의 강자와 약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는 이대로 계속 유효할까요? 이 점에 대해서도 생각할 바가 많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분석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전쟁은 참혹하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전쟁이 확산되지 않고, 비극이 커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조광태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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