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대표와 작은 수의 법칙
이해찬 대표와 작은 수의 법칙
내가 무식한 소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면, 확률론에는 ‘큰 수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고, 이는 대략 어떤 시행의 횟수가 무수히 많아지게 되면 특정 사건이 발생할 경험적 확률이 수학적 확률과 같아지게 된다는 내용일 것이다. 즉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올 확률이 10번이나 스무번쯤 던졌을 때에는 2분의 1과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시행횟수가 무수히 많아지게 되면 종국에는 2분의 1로 수렴하게 된다는 그런 내용이다. 이는 수학자들에 의해 이미 증명이 된 내용인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반대로 작은 수의 법칙을 생각해내게 된 것은 전적으로 이해찬 민주당 당대표의 덕분이다. 그가 ‘고작 2천명’을 언급했을 때, 순식간에 내 머릿속에는 작은 수의 법칙이 정리가 되어버렸다. 수학적인 증명은 어렵지만 내용은 쉽게 요약할 수 있다. 즉 ‘숫자가 점점 줄어들수록 중요성은 무한히 커진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3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입시준비를 했던 수험생은 수능이 한 달 밖에 남지 않았을 때, 갑자기 그 한 달의 가치가 이전의 1년만큼 중요해진다. 한 달만 더 있었더라면 하고 생각해보게 된다.
주머니 속의 사탕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있을 때, 그것을 나눠주기도 하고 먹고 싶을 때 아무렇게나 먹어버리지만, 그것이 줄어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개수가 되었을 때, 한 개 한 개를 아끼게 된다.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 어느 노년의 신사는 “이제 사탕 한 개 한 개를 아껴 먹는 것처럼, 하루 하루를 소중하게 여기며 살게 됐다”면서 얼마 남지 않은 날들의 소중함을 피력했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의 당선은 처음부터 매우 유력해 보였다. 모든 여론조사에서 당시 경쟁자였던 이회창 후보를 여유있게 따돌리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김대중 후보는 그동안 정치노선을 완전히 달리했던 김종필씨와 손을 잡았다. 반대가 없지 않았지만, 그렇게 했다.
김종필씨와 손을 잡고, 이인제가 따로 출마하여 이회창 후보의 표를 갈라주고, 거기에 IMF라는 엄청난 대선 이슈까지 가세했지만, 김대중 후보를 당선시킨 것은 고작 39만표라는 근소한 차였다.
만약 김대중 후보가 조금만 더 여유를 부렸더라면, 그리하여 김종필씨와 손을 잡는 대신 충청권에서 얼마간의 표 손실을 감수하겠다는 헤픈 전략을 세웠더라면, 지금 우리의 나라 꼴이 어떠했을지 생각만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김대중 후보에게 투표했던 39만명 중에서 20만명이 이회창 후보를 찍었더라면 당선이 바뀌었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2천이라는 숫자는 1997년 대선에서 대통령을 바꿀 수 있었던 힘의 1퍼센트가 넘는 수치이다.
1963년 윤보선과 박정희 후보 사이의 표차는 고작 15만표였다. 같은 셈법으로 이 선거에서 2천은 선거결과를 바꿀 수 있는 표의 9퍼센를 넘었다.
국회의원 선거로 내려가면 작은 수의 법칙은 더욱 실감이 난다. 2012년 총선에서 심상정 후보는 당시 손범규 새누리당 후보를 170표차로 누르고 당선됐는데, 단 86표만 투표방향이 바뀌었어도 심상정의 정치적 입지는 지금과 완전히 딴판일 것이다. 16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 박혁규 후보가 새천년 민주당 문학진 후보를 세 표 차로 이긴 적도 있지 않았나?
총선의 승리는 사실상 박빙지역에서의 승리다. 이해찬 대표의 말대로 2천명이 소수라 할지라도, 이를 헤프게 내던질 수 있는 있다는 마음가짐이라면, 이제 작은 수의 법칙이 얼마나 무섭게 작용하게 되는지 곧 깨닫게 될 수도 있다.
공수처 설치 법안과 관련, 민주당은 고작 21석의 찬성표를 더 얻기 위해 야 3당에게 목을 매는 처지이고, 심지어는 의석수 10퍼센트 확대라는 협박에 시달려야 하는 처지가 됐다. 숫자 21은 작은 수이지만, 그 위력은 공수처법을 흔들만큼 위협적이다. 작은 수의 법칙은 어디에나 예외가 없다.
큰 수에만 매달리는 사람은 작은 수의 힘을 이해하지 못한다. 1776년 미국의 공용어는 영어와 독어 중에서 단 한표 차로 영어가 선택됐고, 아돌프 히틀러 역시 한 표 차로 나치당의 당수가 됐다. 영국의 철권통치가 시작된 것도 1645년 단 한 표 차로 올리버 크롬웰에게 통치권을 준 탓이다.
큰 수에 눈이 멀면 작은 수의 위력을 보기 어렵다. 사실은 눈이 멀고 혜안이 다 했기 때문이다. 하나의 소중함을 망각한 채, 2천이라는 숫자를 작다 치부하고, 또한 작다는 이유로 무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당 대표가 있는 한, 민주당의 미래는 어둡다. 아니 당장 내년 총선부터가 문제이다. 2천 명이라는 엄청난 수의 당원들이 당 대표를 끌어내려야 한다고 큰 소리를 내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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