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폭 검찰인사, 인내와 원칙의 결실
대폭 검찰인사, 인내와 원칙의 결실
검찰은 검찰의 일을, 대통령은 대통령의 일을, 권한의 원칙 보인 인사
검찰의 위상에 대한 명확한 자리매김 확인
마침내 추미애 법무장관이 검찰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다. 인사가 발표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 폭이 어느 정도일지 말들이 무성했으나, 실제 뚜껑을 열고 보니 폭으로 가름할 정도를 완전히 넘어섰다. 이 정도면 윤석렬 검찰총장 측근에 대한 전면적인 인사조정이라 말할 수 있다. 예상치를 완전히 뛰어넘었다는 뜻이다.
이번 인사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중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미 대통령은 지난 달 30일 검찰의 수사관행을 질타하면서 “검찰은 행정부를 구성하는 정부기관”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검찰의 위상에 대해 정확히 자리매김하는 동시, 검찰의 인사권은 행정부의 인사권자인 대통령에게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검찰이 대통령에 맞설 수 없다는 뜻도 명시적으로 언급한 셈이다.
이보다 더 일찍이 대통령은 조국 전 법무장관을 임명하던 자리에서 “검찰은 검찰의 일을, 법무장관은 법무장관의 일을 하면 된다”고 언급했는데, 이는 인사권자인 대통령과 행정 하부기관인 검찰의 위치에 대한 관계를 지적하는 메시지였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과 검찰, 검찰 인사권자인 법무장관과 검찰의 명확한 헌법적 위상 차에도 불구, 최근 몇 달 동안 검찰의 행보는 법무부와 검찰 사이의 대등한 관계를 넘어 오히려 검찰이 법무부보다 위에 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왔다. 무엇보다도 헌법 최고기관인 대통령이 임명한 법무장관에 대해 전방위적인 수사를 함으로써 조국 전 장관의 사임을 가져왔다.
조국 전 장관의 사임 후에도 검찰의 납득하기 어려운 행보는 계속됐다.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윤석렬 검찰총장 배제 특별수사팀 구성’을 제안했다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된 김오수 차관과 이성윤 법무부 검찰국장에 대해서까지 수사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신임 추미애 장관에 대해서도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을 빌미로 수사설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검찰의 이같은 상급기관 흔들기에도 불구, 그동안 청와대와 법무부의 대응은 놀랄만큼 침착했다. 각종 수사과정에서 간간이 청와대측의 성명이 있기는 했지만, 검찰에 대한 압박이나 심지어 명백한 경고로 인식될만한 메시지도 거의 없었다. 주말마다 서초에서 시민들이 검찰개혁 집회를 개최했음에도, 검찰에 대한 청와대측의 대응은 거의 조용함 그 자체였다. 이러다가 청와대가 검찰에 의해 손발이 묶여버리지 않느냐는 시민들의 우려가 나올 정도였다.
이는 정확한 때를 기다리는 대통령 특유의 인내에 기인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원칙을 고수함으로써 명분과 힘을 축적하는 대통령의 방식이 작동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대통령의 이같은 국정운영 방식은 이미 일본과의 무역분쟁 해결 과정에서 그 힘을 보였던 바가 있다. 불필요하게 목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시간을 기다리되, 지소미아 문제와 관련, 원칙을 고수함으로써 일본측을 초조한 상태로 만들었던 사례가 있다.
대통령이 그간 검찰의 행보에 일일이 대응했더라면, 이번 추미애 장관의 전격인사는 가능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사소한 사안을 빌미삼아 야당과 언론의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고, 그만큼 여론에 불리하게 작용했을 수도 있다.
또한 인내의 시간을 견딤으로써 많은 국민들이 검찰의 무소불위적인 행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검찰개혁을 바라는 국민들의 공감대가 한층 더 굳게 형성됐다고 말할 수 있다. 그동안 매는 청와대와 법무부가 맞았지만, 힘은 검찰쪽이 더 빠진 셈이다. 충분히 인내함으로써 이번 인사에 대한 당위성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검찰은 검찰의 일을’, ‘법무부는 법무부의 일을’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면, 이번 인사는 최종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대통령의 일을’ 한 것 뿐이라는 원칙 또한 그대로 적용됐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청와대에 비 우호적인 매체들조차, 부분적인 트집은 있겠지만, 이번 인사와 관련한 결정적 반론은 제기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원칙의 힘을 보인 것이다.
지난 번 공수처 법안 국회통과와 더불어 이번 검찰에 대한 전격 인사조치는 대통령의 인내와 원칙, 그리고 검찰개혁을 갈망하는 국민들의 노력이 함께 잘 어울어진 결과물이라 말할 수 있다. 특히 그동안 많은 시민들이 여러 가지 불편함과 추위에도 불구하고 주말마다 서초에 모여 검찰개혁을 외쳐왔던 것도, 이같은 결실을 맺는 데에 한 축을 담당해왔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법안통과를 눈 앞에 두고 있는 검경 수사권 분리법안만 잘 가결된다면, 그간 많은 국민들이 염원해왔던 검찰개혁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는 셈이다. 2019년과 2020년은 우리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 있었던 두 해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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