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친구, 체찰사 이원익
고구마 친구, 체찰사 이원익
임진왜란, 사이다와 고구마 이야기 셋 - 그 중 두 번째
체찰사 이원익은 임진왜란 전쟁사에서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하는데요, 고구마 넝쿨에서 이어지는 줄기 중에서 워낙 기가 승한 두 개의 고구마가 있다면, 가운데 고구마는 땅을 떠 받쳐, 그들이 커가는 숨받이 역할을 합니다. 보통 사람이 못하는 그런 일을 전란 내내 묵묵히 수행합니다. 제가 세 번째 이야기에서 전할 서애 유성룡과, 이순신을 이어주는 듬직한 넝쿨 고구마로 당대 재상이자 체찰사 이원익을 올립니다.
그에 대한 첫 인상은 이렇게 압축됩니다.
“조정에서 속일 수 없는 두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유성룡이고 또 하나는 이원익이다. 유성룡은 속이고 싶어도 도저히 속일 수 없고, 이원익은 속일 수 있어도 차마, 속일 수 없다.”
어찌보면 총명한 유성룡보다 더욱 친근하고 넉넉한 캐릭터입니다.
이원익 초상화, [사진출처 = http://www.chunghyeon.org/images/user/SUB_LAYOUT_001/contents/cyber/std_exh1_6.jpg ]
이 저작물은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순신의 난중일기에서 백성을 사람으로 대우하는 첫 번째 재상으로 묘사됩니다. 전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든 을미년(1595년) 진주성 촉석루를 거쳐, 최전선 한산도를 찾습니다. 왜병이 삼킨뒤 토해 놓은 촉석루는 그야말로 참담한 모습이었습니다. 고을 관리들에게 백성을 보살피라고 명하지만, 비웃음만 받습니다. 그는 행장을 손수 지고 이곳을 떠나 한산섬에 도달합니다. 구종별배는 고사하고, 시종조차 없는 초라한 행색입니다. 신분은 도체찰사, 사실상 유교 사회에서 군왕 선조를 대신해 전장을 지휘하는 최고 사령관입니다.
그는 한산섬에서 이순신과 더불어 군사들에게 잔치를 베푸는데요, 이것은 사소한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당시 벼슬아치들의 지방 순례는 순방길에 수령을 쥐어 짜내서 그들이 바치는 뇌물을 챙기는 것이 일상이기 때문입니다. 녹봉 대신 뇌물이 지탱하던 조선시대의 모습입니다. 임진란 발발 바로 직전, 신립이 지방 행차를 하자 고을 수령들은 기생들을 잔뜩 대기시키고, 백성을 동원해 길을 닦고, 주안상을 마련하는데요, 별반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한산도 수군은 정말 처음으로, 재상이 자신을 위해 잔칫상을 올리는 놀라운 경험을 합니다. 이순신 또한 곤궁한 병영 살림에서 자주 병사들에게 잔치를 배풀었습니다. 두 사람이 고구마로 묶이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는 한산섬 망루에 올라, 이순신과 더불어 적의 포진을 살핍니다. 이후 한산도 최고봉은 병사들 사이에서 한순간에 '정승봉'으로 통합니다. 그들이 느낀 감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병사들은 중앙 관료가 자신을 알아 주었다는 사실만으로, 고마웠던 것입니다. 그리고 열린 장수들과의 회의에서 장수들은 중앙 정부에 대한 불만을 쏟아냅니다. 그는 불편한 말을 편하게 끄집어 낼 수 있는 재주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를 인덕이라고 하지요.
그가 만든 벼슬아치의 지방길 선례는 무척 의미가 있습니다. 후에 한산진에 온 어사 정경세는 자신의 녹봉을 털어 한산진에서 새벽부터 병사들을 위해 아침밥을 짓습니다. 그리고 병사들과 같이 식사를 합니다. 전란의 현장에서 갑과 을이 사라집니다. 그는 병영 곳곳을 이순신을 따라 다니며 살핍니다. 난중일기에 따르면 어사 정경세는 한산진을 떠날 때 이순신이 직접 포구까지 배웅한 몇 안되는 중앙 신료입니다.
선조도 이원익을 만만하게 보지 못합니다. 1596년, 선조가 이순신에 대한 파직을 처음 거론하자, 이원익이 평소 원만한 성품과는 달리, 딱 부러지게 반대합니다. 선조가 입을 다뭅니다. 이듬해인 정유년에 선조는 이원익이 지방에 나가 있을 때, 기어코 이순신 파직을 밀어 붙입니다.
소식을 들은 이원익은 통곡하며 결사적으로 반대합니다. 이순신이 없다면, 한산진이 버틸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는원균이 지닌 사이다 기질은 산적한 현안을 처리하는 실무 능력과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간파했습니다. 하지만 조정의 일방적인 여론에 묻힙니다. 정치란 한 사람의 의견이 좌우하지 않으니까요. 사이다 댓글이 쌓이면 여하튼 진실처럼 둔갑합니다. 체찰사 이원익은 이순신이 고문을 받고, 어머니마저 잃은 상황에서 백의로 종군한다는 사실을 듣습니다. 그리고 백의 종군길에 흰 소복을 입고 이순신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죽을 날만 기다립니다.”
이원익은 전란의 마지날인 무술년 11월 19일, 이순신이 전사하고 그날, 유성룡이 파직된 사실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그는 그 때 중국과의 외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경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짧은 상소를 올립니다.
“아, 그가 세운 공이 하나도 없다면, 제가 어찌 감히 말조차 하겠습니까, 그것이 어찌 논의라 할 수 있습니까?”
이제 다음에는 서애 유성룡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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