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고스 대성당, 느릅나무 출입문의 예술성은?
부르고스 대성당, 느릅나무 출입문의 예술성은?
스페인 이베리아 반도 북부 까스띠아 이 레온(Castilla y León) 자치구에는 역사적 도시랄 수 있는 부르고스(Burgos)가 있고, 도시와 같은 이름의 성당인 부르고스 대성당이 있다.
이 성당은 1221년에 첫 삽을 떴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꼭 800년 전의 일이다. 1567년에 완성되었으니 착공에서 완공까지 350년 가까이 걸린 셈이다. 중간에 200여년 동안의 휴지기가 있었으나 이를 감안해도 150년 이상 건축되어온 스페인의 자랑거리이다.
성모마리아에게 봉헌된 고딕양식의 이 건축물은 건축 당시 프랑스의 건축전문가들을 필두로, 당시 유럽의 내놓으라 하는 건축가들의 합작품이다. 이 점에서 이 성당은 단지 스페인 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의 자랑거리이기도 한 셈이다. 1984년에는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이 성당에는 사자모양의 문고리를 가진 세 개의 느릅나무 출입문이 있다. 이 출입문의 교체를 놓고 대성당측과 교체 반대자들 사이에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대성당측은 이 출입문이 별다는 예술성이 없는 만큼 교체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후안 바예호(Juan Vallejo)라는 화가가 중심이 된 반대측은 이같은 교체가 대성당의 문화적 가치를 훼손할 것이라면서 반대하고 있다. 여기에 유네스코측도 가세하면서 문제는 점차 복잡해지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부르고스 대성당 1850, Jenaro Pérez Villaamil, Drawing, 정면으로 세 개의 느릅나무 문이 보인다.
워낙 역사적 가치가 큰 건축물이니만큼 이 성당 자체는 대교구로 지정되어 있다. 대교구측은 예술가 안토니오 로페스(Antonio López)에게 이들 문을 청동문으로 교체해달라고 요청한 상태이다. 여기에는 모두 120만 유로(우리돈 약 16억원)의 예산이 책정됐다. 하느님과 성모마리아, 그리고 예수의 얼굴을 청동문에 작품으로 포함시킬 것을 주문했다. 그럼으로써 문화적, 사회적, 복음적 가치를 높이겠다는 입장이다.
그러자 71세 나이의 후안 바예호가 적극적인 반대에 나섰다. 그는 이같은 교체가 매우 야만적인 발상이라고 교회측을 비난하면서 change.org 라는 사이트를 통해 3만여명의 반대서명을 받아냈다. 동시에 유네스코와 교황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반대이유를 설명했다. 교황에게는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 돈을 낭비하지 말자는 내용도 덧붙였다.
대성당의 느릅나무 출입문, 교체 여부를 놓고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바예흐가 대성당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는 1993년에도 유네스코 본부에 성당의 훼손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을 한 바 있다. 이를 위해 그는 사전에 350여장의 사진을 준비했었는데, 이 사진은 교구 성물 관리자의 협조 하에 다른 사람의 눈이 띄지 않도록 새벽에 성당을 관찰하면서 찍어둔 것이었다.
때마침 1993년에는 사고가 있었다. 로렌소(Lorenzo) 성인의 날이었던 8월 10일 정문에 있던 2미터 짜리의 조각이 낙하하는 바람에 결혼식을 마치고 성당을 떠나던 사람이 하마터면 사망할 뻔 했던 일이 일어났던 것. 당시 스페인의 까르멘 알보르치(Carmen Alborch) 문화부장관이 성당측에 세심한 관리를 이례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이런 일이 겹치면서 한 때 유네스코측은 대성당을 세계유산에서 제외하겠다는 입장을 비추기까지 했다.
특히 이번 느릅나무 문의 교체를 반대하는 과정에서 바예흐는 독특한 주장을 했는데, 청동문에 포함될 하느님, 성모마리아, 예수의 얼굴이 사실은 제작자인 로페스 자신과 아내, 그리고 아들의 얼굴이라는 것이었다. 작품의 구상은 가운데 문에 사랑과 자비의 모습을 보여주는 하느님을, 왼쪽 문에는 마리아의 수태를 알리는 천사들과 마리아를, 오른쪽은 지고한 순수성을 나타내는 예수의 어린 시절 등이 각각 작품에 포함될 예정이었다.
바예흐의 끈질긴 노력 탓에, 유네스코도 가세하기에 이르렀다. 먼저 유네스코 관련 NGO(비정부기구)인 국제 기념물 유적지 위원회(Icomos)가 보고서를 통해 문의 교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번 교체계획은 대성당이 독특하게 갖고 있는 가치들을 훼손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유네스코가 이 보고서를 채택하면서, 교체에 대한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부르고스 대성당 [사진출처=위키피디아,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Fachada_de_la_Catedral_de_Burgos.jpg ]
이에 대해 교회측의 입장도 강고한 상태다. 기존의 목재로 된 문들은 사실상 예술적 가치가 없는 것들이라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1790년에도 이미 이 문을 교체한다는 계획이 있었지만 당시 비용문제로 이를 실현하지 못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만 이와 관련한 문서는 없는 상태다. 교회측은 역사를 거듭하면서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끊임없는 예술적 기여를 함으로써 건축물을 좀 더 풍부하게 업그레이드 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청동문에 포함될 예술작품이 화가 자신의 가족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일축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로페스는 아들이 없고 딸만 둘이 있으니 바예흐의 주장은 일단 억지라는 얘기다. 비센테 레보요(Vicente Rebollo) 성당 로비 관리인은 “아직은 작품이미지를 보지 못한 상태”라면서 “최종 이미지를 봐야 바예흐의 주장이 맞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그러면서 교회측은 까스띠아 이 레온 지역 유산 위원회의 최종결정에 따르겠다는 입장이다. 이미 문 1개는 주조과정에 있고 메인디자인이 종료된 상태이어서 만약 위원회측이 교체를 거부하게 될 경우 이미 제작된 청동문을 예술작품으로 전시할 것이라는 계획도 내놓았다. 교체가 이루어지게 되면, 기존의 느릅나무 문은 교회 어딘가에 전시하게 될 것이라는 복안도 내놓은 상태다.
문화적 유산을 원형 그대로 유지해 나가는 것이 옳은 것일지, 혹은 부분적으로나마 각 시대적 예술성을 반영하면서 좀 더 풍부하게 가꾸어 나가는 쪽이 옳은 것일지, 그 판단은 쉽지 않다. 이 점에서 부르고스 대성당의 느릅나무 문 교체를 둘러싼 논란과, 그 최종결정이 의미하는 바는 작지 않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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