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에서 버려지는 에티오피아의 이주 노동자들
레바논에서 에티오피아 출신의 이주 노동자들이 문자 그대로 길거리에 버려지는 일들이 계속되고 있다. 차량으로 에티오피아 노동자를 싣고 와 베이루트의 이디오피아 영사관에 내려 놓고는 그대로 가버리는 일들이 끊이지 않으면서, 버려진 이디오피아 이주 노동자들이 영사관 주변을 메우는 기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에티오피아 이주 노동자들이 버려지는 현상은 이전에도 흔히 있었지만, 대규모로 이같은 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것은 지난 해부터이다. 레바논의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고, 이에 따라 대개 레바논의 가정에서 하녀로 일하던 에티오피아인들이 무더기로 쫒겨나고 있는 상황이다. 여성 노동자들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베이루트 주재 에티오피아 영사관에 한 에티오피아인이 차량에서 내려지자, 같은 에티오피아인들이 이들 둘러싸고 있다.
무너지는 레바논 경제
레바논 경제는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지난 2018년 레바논의 국내 총생산(GDP)은 550억달러 정도였던 것이 2019년에는 2019년에는 525억달러 로 살짝 떨어진데 이어 지난 해에는 187억 달러로 크게 떨어졌다.
코로나의 발생의 여파도 컸지만 지난 해 8월 4일 베이루트 항에서 발생한 폭발사고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레바논 파운드화가 최고때보다 85% 하락하고 여기에 인플에이션과 정치적 불안등이 가세했다. 인구 600만명 중 절반 정도가 빈곤층으로 전락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레바논 경제가 무너지기 전부터도 현지에서 일하는 에티오피아인들의 생활조건은 열악하기 그지 없었다. 대략 월 150달러 정도의 급여를 받고 있고, 운이 좋은 경우에는 300달러 정도를 받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100달러 정도의 급여를 받는 경우도 흔히 있었다. 이마저도 에티오피아의 평균적인 급여보다는 두 배 정도 높은 것이지만, 그들이 겪는 어려움에 비하면 형편없는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다.
레바논 현지 해외근로자들의 절반 이상은 에티오피아인
레바논에는 지난 해 말 현재 약 25만명의 외국인 근로자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에티오피아인 외에 필리핀인, 스리랑카인등이 있지만 이 중 에티오피아인이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점이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주로 가난한 농촌 출신들이 많은데, 모집인들에게 그들로서는 상당한 금액을 내고 레바논에 입국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 불법적인 입국도 이루어지고 있다. 금액이 부족한 경우 후불방식으로 지불하기도 한다, 이 역시 레바논 현지에서의 삶을 한층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할리마(Halima)라는 이름의 에티오피아 여성은 인포 마이그런츠(Info Migrants)와의 인터뷰에서 3개월간의 급여 모두를 모집인에게 주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레바논 주재 에티오피아 영사관에서 출국도움을 받기 위해 대기중인 에티오피아인들의 여행가방이 수북히 쌓여있다.
상당수의 에티오피아인들은 리비아의 가정에서 하녀로 일하면서, 많은 정신적 신체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일상적인 구타와 성적 학대등이 끊임없이 보고되어 왔다. 최근 프랑스의 르몽드 신문은 이들이 받았던 사례로서 ▲9개월동안 지하실에 감금되었던 예 ▲하루 15시간의 노동으로 식사시간을 잊었던 사례 ▲1년 가까이 햇빛을 보지 못했던 경우 ▲6개월간 물을 주지 않아 위장병을 얻은 경우 ▲강제로 음란물을 같이 시청하게 했던 경우 등을 들기도 했다.
할리마씨가 자신이 당한 폭행흔적을 보여주고 있다.[사진=인포 마이그런츠 동영상 캡처]
이주 근로자 삶을 어렵게 만드는 카팔라 제도
에티오피아인들로 하여금 이같은 학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는 레바논의 법률체계 중의 하나인 카팔라(Kafala)이다. 카팔라는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 에미리트, 레바논 등 몇몇 중동국가들과 북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전통처럼 내려오는 고용시스템이다. 주로 이주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스폰서십 시스템(Sponsorship System)을 뜻하는 이 제도는 이주 노동자는 단 한명의 고용주에게만 귀속되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하고 있다. 일단 고용이 되면, 고용주의 승인 없이는 전직이 불가능하다. 고용주의 불법적인 착취나 학대를 근로자가 꼼짝없이 견뎌야만 하는 구조다.
이러한 시스템 하에서 고용된 하녀의 급여를 체불하거나 이들에게 신체적, 정신적 학대를 가하는 일이 흔히 발생하고 있다. 대부분 여권을 고용주에게 빼앗기는 탓에, 고용주로부터 벗어나기가 매우 어려운 처지다. 에티오피아인 근로자들은 리비아를 “거대한 감옥”이라고까지 언급할 정도다. 어찌보면 고용됐던 에티오피아인들을 영사관 앞에 내려놓고 달아나는 리비아인들은 그나마 나은 편에 속하는 셈일 수도 있다.
지난 2018년 비영리 인권단체인 휴먼 라이츠 워치(Human Rights Watch)는 레바논에서 일주일에 한 명 꼴로 이주노동자가 사망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낸 바 있다. 사망원인은 자살이나 추락, 탈출도중 사망 등이다. 2019년에 들어 이같은 사례가 두 배 이상 늘고 있다는 인권운동가들의 추정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에티오피아 당국의 문제해결 의지도 부족
노예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는 자국민들을 구제하기 위한 에티오피아 당국의 노력은 미약한 편이다. 수도 아디스 아바바(Addis Ababa)에는 세 곳의 치유센터가 있어 귀국한 근로자들의 정신적 육체적 회복을 돕고 있다. 이 중 하나는 남성들을 위한 것이고 둘은 여성들을 위한 것이다. 최장 1년까지 이 곳에 머물면서 자신을 치유할 수 있다.
하지만 귀국 자체가 큰 어려움이다. 어렵사리 여권을 확보해 귀국길에 나선다 하더라도 비행기삯이 문제다. 지난 해 한 때 에티오피아 에어라인즈(Ethiopian Airlines)의 베이루트에서 아디스 아바바까지 노선 편도운임은 1,450달러까지 올라갔다. 이 항공사가 국영임을 감안한다면 국가가 자국 국민들에 대해 얼마나 마음을 쓰지 않고 있는지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에티오피아 에어라인즈 항공 측은 지난 해 7월 페이스북을 통해 이 가격에는 비행과 코로나로 인한 격리비용이 포함된 것이라는 설명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이 운임을 지불하고 귀국할 수 있는 레바논 현지의 자국 노동자가 얼마나 될 지 생각해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어렵사리 귀국을 한다 하더라도, 귀국 노동자들의 정상적인 생활이 쉽지 않은 것 또한 해결해야 할 과제다. 현지에서 입은 트라우마로 인한 어려움도 크지만, 빈손으로 가정으로 돌아가는 일 또한 간단치는 않다. 출국시 이미 상당한 돈을 써벼렸기 때문에, 빈손으로 귀국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배척을 받는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다.
본국으로 송환된 여성들의 삶을 도와주는 기구인 아가르(Agar)의 프로그램 운영자인 피세하 멜리세(Fiseha Melese)씨는 “몇달치 급여에 해당하는 금액을 써버린 주변 사람들이 돌아온 여성들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기 때문에 이들 여성의 삶이 귀국 후에도 간단치 않다”면서 자신은 이들 이웃들에게 레바논 현지의 학대와 열악한 작업환경, 급여삭감 등에 대해 이해시키려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귀국 후의 삶도 순탄치 않아
귀국여성들의 일부는 자신을 치유하면서 미용기술 등을 배워 자활해 나가는 경우들도 있다. 하지만 빈손으로 돌아와 가정으로 돌가아기 어려운 처지의 여성들 중에서는 윤락 등의 극단적인 직업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 몇 년 씩 리비아에 체류하면서 귀국하지 못했던 여성들의 경우 성장기의 자녀들과 격리된 삶을 살면서 겪는 심리적 고통도 심각한 상태이다. 할리마씨의 경우도 에티오피아에 세 자녀를 두고 있는데, 10년동안 자녀를 보지 못했던 상태이다. 이들 자녀들은 인포 마이그런츠와의 인터뷰에서 “그들이 우리 엄마를 빼앗아 갔다”면서 자신들의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에티오피아의 십대 소녀가 자신의 엄마를 십년 동안 보지 못했다고 호소하고 있다.[사진=인포 마이그런츠 동영상 캡처]
레바논의 경제는 갈수록 나빠지고 있어 현지 에티오피아 근로자들의 어려움도 쉽게 해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쫒겨가는 근로자와 도망치는 근로자가 엉켜있는 상황이어서 현지 근로자의 “거대한 감옥”이라는 표현을 문자 그대로 실감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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