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20만의 초미니 국가, 탄생할 수 있을까?
인구 20만의 초미니 국가, 탄생할 수 있을까?
파푸아 뉴기니의 속주 부겐빌, 내일부터 주민투표 실시
실제 독립으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인구 20만의 초미니 국가가 탄생할 수 있을까?
파푸아 뉴기니의 몇몇 섬으로 구성된 한 지역이 독립과 관련한 자신들의 의사를 확인하기 위해 23일부터 투표에 들어간다. 부겐 빌(Bougainville)로 알려진 이 지역은 파푸아 뉴기니 동부지역의 몇몇 섬들로 이루어 있는데 이번 투표에서 파푸아 뉴기니로부터의 자치권을 강화할 것인지, 혹은 실제 독립을 실행에 옮길 것인지의 여부에 대한 주민들의 의사를 확인하게 된다.
투표 결과가 독립으로 확정되고 파푸아 뉴기니 정부의 협조가 순조롭게 이루어진다는 가정 하에, 인구 20만의 초미니 국가가 탄생할 수도 있다. 이 지역의 섬들은 모두 다 합쳐도 면적 1만평방킬로미터에 이르지 못한다.
파푸아 뉴기니 섬 구글지도, 출처=위키피디아
독립여부를 묻기 위한 투표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의 역사는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이 섬을 탐험했던 프랑스의 탐험가 부갱빌(Bougainville)의 이름을 따 그대로 지명이 되었다. 그 후 19세기 말 독일 식민지로 편입되면서 저먼 뉴기니(German New Guinea)라는 이름으로 통용되기도 했다.
1차 세계대전 동안 이 지역은 다시 호주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된다. 2차 세계 대전 동안 잠시 일본의 지배하에 있었던 기간을 제외하고는 그 후 계속해서 호주의 지배하에 남게 된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 지역은 원래 관심을 받지 못했던 지역이었다. 독일은 이 지역을 식민지로 편입하기 오래 전부터 지배해 왔음에도 불구, 1905년 처음 식민지 행정부를 설립하게 되는데, 이는 독일의 지배가 시작된지 21년이나 지난 때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이 지역은 교회와 식민지 정부와는 거의 거래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75년 파푸아 뉴기니가 독립을 하게 되면서 부겐빌은 파푸아 뉴기니의 속주로 편입되었다. 독립과정에서 파푸아 뉴기니가 형성되기 직전, 이 지역에서는 ‘북 솔로몬 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독립운동이 일어나기도 했으나 파푸아 뉴기니와 식민 지배국이던 호주에 의해 철저히 무시당했다. 이후로 이 지역은 부겐빌 외에 북 솔로몬이라는 이름으로 같이 불리게 되었다.
당시 부겐빌의 독립운동은 플랜테이션 식민지 주의에 대한 반발의 의미가 컸다. 세력이 결집되지 못한데다가 정치적 영향력도 미미하여 오래 지속되지 못했던 독립운동이었지만, 불씨만은 꺼지지 않았다. 파푸아 뉴기니가 독립한 이후 이 지역에 대한 지역적 차별과 경제적 착취가 계속됨에 따라 이 지역은 다시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들어가게 된다.
1988년 시작된 이 지역의 무장투쟁은 1990년부터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전쟁이 시작되면서 이 지역 인구의 10%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등 1997년 전쟁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기까지 이 지역이 입은 피해는 심대했다. 1997년 말 세계 여러 국가들의 중재로 전쟁이 마무리되고 1998년 종결된지 7년만인 2005년 이 지역은 부겐빌 평화조약(Bougainville Peace Agreement)에 따라 자치권을 얻게 된다.
평화조약에 따라 부겐빌에는 부겐빌 자치정부가 들어서게 된다. 또한 평화조약 체결 과정에서 한가지 약속을 받아내는데, 이는 이 지역이 자신들의 독립여부에 관한 주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투표결과에 대한 구속력은 보증하지 않는(non-binding) 약속이었다.
부겐빌이 독립을 원하는 데에는 역사적, 경제적, 인종적인 요인이 모두 뒤얽혀있다. 역사적으로는 1990년부터 본격화된 9년 전쟁의 과정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아픈 상처가 있다. 인종적으로도 이 지역의 사람들은 다른 파푸아 뉴기니 사람들과는 차이가 있다. 이들은 다른 대부분의 파푸아 뉴기니 사람들보다 더 짙은 피부색을 갖고 있다. 아무래도 상호간 인종적 이질감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경제적인 요인이다. 이 지역은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지역으로 구리와 금 등 주요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이 지역의 구리는 호주의 식민지 기간 동안 주된 착취의 대상이었다. 9년 전쟁동안 이 지역의 채굴은 거의 중단상태에 이르렀지만, 전쟁 전까지만 해도 이 지역은 파푸아 뉴기니 지역 중 가장 풍요로운 곳에 속했다.
역으로 이같은 천연자원의 풍요로움은 파푸아 뉴기니로 하여금 이 지역의 독립을 꺼려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와 관련, 제임스 마라페 파푸아 뉴기니 총리는 “이번 투표의 결과에 대한 구속력은 없다. 하지만 그 결과에 대해 파푸아 뉴기니와 부겐빌 정부가 함께 숙고할 것”이라고 언급함으로써, 이 지역의 독립을 쉽게 용인할 수 없다는 뜻을 내비친 상태이다.
게다가 부겐빌의 독립을 인정하게 될 경우, 현재 20여개가 넘은 다른 주들 역시 분리를 요구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도 파푸아 뉴기니로서는 쉽게 독립을 인정하기 어려운 요인이 되고 있다. 독립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더 많은 자치권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파푸아 뉴기니 정부는 이번 국민투표와 관련한 지원을 유보한 상태이다. 1998년 평화조약 체결에 도움을 줬던 버티 애른(Bertie Ahren) 전직 아일랜드 총리가 이번에도 투표를 주관했고, 호주 등 몇몇 관련국가들이 투표과정에 지원을 하고 있는 상태이다.
어쨋거나 독립을 위한 첫 발은 내딛어진 상태이다. 작은 섬들이 많아 투표는 23일부터 12월 7일까지 약 800여개 장소에서 나누어 치루어진다. 결과는 12월 말 쯤 나올 것으로 보인다. 독립 지지표가 더 많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그 이후의 진행에 대해서는 누구도 전망을 내놓기 어려운 상태이다. 실제로 독립이 되어 또 하나의 미니 국가가 탄생할지, 이번 투표가 자치권을 한층 더 강화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말 것인지, 혹은 파푸아 뉴기니와 부겐빌 사이에 새로운 분쟁국면의 불씨가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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